오직 내 감정만이 소중했던 젊은 날
늘 타인의 마음을 재단할 날카로운 비수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
상처가 많은 사람일수록
자기 방어와 통제에 강하다면
나는 상처가 많은 게 분명하다.
언젠가 첫 사랑 그를 만나면
미안하다….. 그리고 고마웠다 ….
늦었지만 뒤늦게 깨닫게 된 내 마음을 전하리라 마음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도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었다.
내가 그렇게 떠났어도 ‘너 왜 그랬니’ 질책이든 욕이든 하고
그래서 내게 헤어짐에 대한 변명이라도 할 기회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헤어지고 나서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그는
단 한 마디도 묻지 않고 담배만 피웠었다.
스물 일곱살이 되던 해
결혼한다고 그가 엄마께 전화를 했다.
딸보다 더 믿고 좋아했던 엄마는 무척 속상해 하며
그 소식을 내게 전하던 날
엄마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은 채
\'그 애보다 훨씬 행복하게 살테니까 걱정 마시라’며 화를 냈었다.
이 일은 엄마의 암 발병 이후 나를 많이 후회하게 만든 부분이기도 하다.
20년 만에 메일을 주고 받으며
잘 사는지, 기회되면 골프 한번 하자는 정도의 대화이지만
과연 괜찮은가… 신앙과 양심에 반추할 때마다
‘이 나이에 ...’라는 말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며
멈추고 싶지 앟은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약속날짜를 정하진 않았지만 재회에 대한 기대로
한국 갈 준비가 더 설레일 무렵, 거짓말처럼 엄마가 입원했다.
‘
거짓말처럼’이라 함은엄마의 병은 아주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왔음에도
정확히그와 만나 들떠있던 시기에 맞춰 발견되어
내 마음을 급히 현실로 환원시켰다.
고장난 브레이크로 달리는 자동차처럼
감정의 고리를 풀어 헤친 채 전진하는 나를 제어하고
인간적으로 덜 상처 받도록 엄마를 통해
경고를 주신 건 아닌가 하는 생각때문이다.
그를 만난 2월1일은 엄마가 3차 항암치료를 하기 위해 입원한 날이다.
만나자는 약속을 수 차례 번복하고 취소한 지 5개월 만이었다.
만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가도
약속한 것을 후회하다가 다시 궁금해지고....
무엇보다 내가 옆에 없으면 불안해 하는 엄마를 두고
남자를 만난다는 건
내가 한국에 혼자 머무는 목적을 벗어난 행위라는 가책과
혼자 화장실도 가지 못하는 엄마 곁을 24시간 간병하는 내게
20분 이상 허락되는 시간이 없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간병인을 고용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과연 만나야 하는가, 왜 만나는가…하는
갈등이 호기심을 눌렀다.
그러나 ‘만나지 않겠다’는 결정을 하기엔 아쉽고 허전한…
또 더 이상 미루면 마치 내가 이상한 여자로 변했거나
초라한 아줌마로 전락했을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그와 헤어진 시점의 나는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꿈\'을 꺼내기 조차 녹록하지 않은 현실 앞에서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며 사무실에 나가
억지 시간을 때우는 정신적인 공황상태였다.
그런 내게 그는 피난처이며 수호천사였다.
받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나 남자를 배려하는 마음도 턱없이 부족한
연인을 위한 그의 헌신은 참 눈물겨웠다.
군시절에도 당시 연인들에게 유행하던 목걸이를 만들어 걸어주고
면회를 다녀오는 열차에서 수첩을 꺼내면
갈피 속에 몰래 용돈을 끼워 놓곤하는 등 수 없는 일들로 나를 감동시켰다.
그의 형편이 넉넉했더라면
차라리 지금 내 마음이 홀가분할 게다.
그렇게 빨리 다른 여자와 결혼할 줄 몰랐다.
10년만 기다렸다가 다시 만났더라면
나도 그가 원하는 것, 적어도 그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 있도록
내조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운 상상을 해 본다.
무슨 옷을 입고 나갈까, 화장을 할까 말까.......
약간의 흥분과 설레임 상태였던 아침이 지나고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담담해 졌다.
40대 이후 외모가 통일되는 우리나라 남자들의 외형 구조이지만
몇 년 전 중학교 남자 동창이 \'악\' 소리나게 하던 그 최악의 재현만 아니길 빌며
나도 가장 편한 복장으로 나가기로 했다.
사실은 그를 만날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정장 한 벌을 준비해 왔고 근사한 화장으로 변장을 할까 생각도했지만
인위적인 꾸밈보다 나의 가장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만나기 직전,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호기심에
분명 어딘가 있을 그의 사진을 보기 위해
인터넷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