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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의 뇌진탕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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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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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행복


BY hansook83 2003-06-11

점심을 준비하려고 수도꼭지를 트니 물이 안나옵니다.
며칠전 주인아저씨가 수도요금이 밀려있으니 요금을 받아 처리해 달라시며 밀린 청구서를 주고 가셨기에 혹시나 해서 수도국에 알아봤더니
저 아래 아파트 짓는 곳에서 공사중 수도관이 터져 오후 1시 정도나 되야 물이 나올거라 합니다.
다행입니다.

부엌 쪽문을 통해 땅 흙내음이 들어오길래
현관문을 열어보니 비가 옵니다.

비가 조금 오기라도하면
빗소리보다 흙냄새로 먼저 비가 옴을 알려줍니다.
빗줄기가 굵어지면
그 빗줄기가 떨어지는 곳곳마다
조그만 흙구덩이가 패여
빗줄기 만큼의 흔적을 만들어 냅니다.

칡뿌리 냄새 같기도하고
바위틈에 낀 이끼 냄새 같기도하고
잘 발효된 두엄 냄새 같기도한
흙이 움직이며 풍기는 냄새는
어머니의 품을 생각나게 합니다.

남편이 올 시간이 지났길래
살 두 개가 떨어졌으나 우그러진곳 없이 활짝 펴지는
우산을 펴들고 마중을 나갑니다.

골목 저 아래 찻길에서 버스가 한 대 서는 것이 보입니다.
저 버스를 타고 왔을 텐데..

횡단보도가 보이고 길 건너편을 바라보니
몇 년 만에 만난 듯 두 팔 벌려 반갑게 흔드는
남편이 보입니다.
까맣게 탄 얼굴에 그 큰 입이 귀에 걸렸습니다.

비가 와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나왔다며 한없이 행복해 합니다.

똑같은 것을 바라보고도
서로 생각이 다르고 이해 할 수가 없어
오랫동안 자기 주장을 하다
결국에는 언성이 높아 졌던 그날들이
그랬던 적이 있었어 하는
희미한 기억으로 있습니다.

궂이 말하지 않아도
그래 맞아
할 수 있는 지금이 너무 행복합니다.

남편을 바라보며 난 행복이 뭔지 체험하게 됩니다.

비가오면 비가 와서 행복하고
바람불면 바람불어 행복하고
해가 나면 해가 나서 행복해 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에 행복해 합니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나 또한 있는 그대로에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