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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계신 곳도 봄비가 오우?


BY 어수리 2003-03-14

아버지...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라더니,
우리 아버지,
이제 아무리 막내딸이 당신을 목놓아 불러도
아무 대꾸가 없으시구려.....

아버지, 지금 어디 계시우?

할아버지,할머니 곁에서 재롱떨며 그리 계시우?
꽃과 나비가 노니는 언덕에서 한가로이 거닐고 계시우?
당신 계신 곳 어딘지 정녕 알 길 없으나
틀림없이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 같으우.
사시사철 알맞게 따뜻하고 먹을 것 풍족하고
당신 해하지 않는 선량한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곳,
꼭 그런 곳으로 가시었지요?
아님, 부잣집 아들로 다시 태어나 부족함없이,
귀여움 받으며 사시게 되었음 참말 좋겠수.

아버지, 여기는 봄비가 사부작사부작 내리고 있다우.
어찌나 봄비다운지
내리는 소리가 여간
가볍고 잔잔하고 경쾌하지 않으네요.
소리없이 흘러내리는 내 가슴속 눈물자락같기도 하고요,
아버지 수의 입혀드릴때,삼베 수의자락 사그락거리던
소리같기도 하네요.

아버지,자식이 할 소리는 못 되지만
그렇게 하얀 복을 입혀드리니 여간 곱지가 않으시대요.
가시기 전에 그렇게 몹쓸 병마로
온몸의 진을 다빼어내고 가실 정도로,
앙상하게 뼈만 남을 정도로, 고생하다 가시었는데도
어찌 그리도 자는 듯 편안해 보이시던지
졸도할 지경으로 울부짖다가
문득 뵈온 아버지 그윽한 모습에
순간 눈물이 멈추어지대요.

아버지,
참 말 안듣는 것들이 인간이지요.
이 사람이라는 족속들이 틀림없이
부모 살아계실제 효도하라는 경구를
귀가 따갑게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꼭 가신 다음에야 애통해하고 땅을 치며 후회를 한답니다.
가시고 난 다음에야 후회해도 소용없음을 알면서도
참 느긋하고 태평했었지요.

우리 아버지, 내 뜻대로 일년,아니,진달래가 온 산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계절까지만이라도 살아주실 줄 알았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리실줄 누가 알았나요...
그리 가실 줄 알았으면
내 간이라도 내어 녹여 드릴것을,
온 팔도에 맛나다는 음식 죄 구해다 드릴것을,
가시고 싶은데 있다시면 모셔다 드릴것을,
이제와 정말로 후회로 몸살을 앓아도
아무 소용이 없구려, 아버지.

아버지, 그래도 그렇지 왜 그리 서둘러 가시었수?
조금만 아주 조금만 기다려주시다 가시지,
뭐 그리 바쁜 일이 있어서 그리 황천길을 재촉해 떠나시었소?

나 시원하게 사는 모습좀 보고 가시지,
허구헌날 고만고만하게 사는 막내딸 살림이
미덥지 않아서 다른 딸들에게 얻은 용돈,
먹지도 입지도 않고 모아두었다가
나만 가면 몰래 쥐어주시기 바쁘셔잖아요.
이제 나도 당신 용돈 생색내며 드릴 처지가
되었는데 그새를 못참고 그리 가시면 어떡하라구요?
그동안 못해드린게 너무나도 많은데,
이 막내년 가슴에 한되게 하실려고 그리 가시었소?
얼마나 철없고 못되게 구는 딸이었는지 아시면서,
조금만 기다렸다가 철나고, 사람답게 굴거들랑
머리한번 쓰다듬어 주시고 가시지 말이요.

아버지,
평생 허리 한 번 펴질 못하고
좋은 구경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맛난 음식 자식들에게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모진 소리,가족들에게 들어가며
그렇게 살으셨는데, 그리 눈감고 훨훨 날아가니 좋으시우?
보기싫은 자식들, 철 안난 자식들, 이제 안보니 좋으시우?
좋으신것 같습디다. 편하신것 같습디다.
당신 먼 세상 떠난 얼굴이 자는 사람마냥 고요하고 편안해보입디다.
그렇게도 모진 병마와 겨루다 가시었는데,
가시는 그 순간까지 고통으로 몸부림 치다 가시었는데
다 떨구고 가시는 길이 좋으시기도 하셨겠지요.

아버지, 우리 둘째 업고 친정집 감나무 아래를
거닐던 모습이 이렇게 눈에 선한데,
가을이면 주먹만한 홍시를 따다가 딸들 올 적마다
들려보내는 재미에 사신 당신인데,
이제 그 붉은 홍시는 누가 따두고 누가 거두어줄까요?

이빨 썩는다고 사탕 주지 말라는 딸들 핀잔에도
허허 웃으시며 손주들에게 몰래 군것질거리 쥐어주시던 아버지,
생전 호통한번 자식들에게 칠줄 모르고
마누라에게조차 큰소리 치며 사시지 못하고
그렇게 없는 사람마냥 작은 모습으로 살다 가시었는데
아버지 없는 자리가 왜 이리 클까요?
가슴속이 온통 뚫린 것 같고
세상 천지가 너무나 허허롭네요.

이런 내 마음새를 알고 하늘이 단 비를 내려 주시나 봐요.
날마다 울어대 이제는 눈물 마른 마음 자락 적셔두라고 말이지요.

게다가 당신 덮은 마른 흙이 모양을 잃고
자꾸 떨어져 내리던 것이
마음 쓰였는데 이리 비가 와서
흙을 굳게 하고 마른 잔디에도 단 물을 주게 되었으니
여간 좋지가 않네요.
억세게도 내리지 말고 이렇게만
가만가만 내려서 우리 아버지 계신 곳,
이쁜 집 무너지지 않고 고운 풀 돋아나서
아버지 잘 지켜내어 주라고
하늘이 이렇게 단 비를 내려 주시나 봐요......

아버지 , 비오는 소리 참 좋지요?
참 좋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