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6.25.전쟁의 비극 일천구백오십년 사월중순경 서울의 숙부님으로부터 급히 상경하라는 전갈이 왔다. 서울에서 같이 장사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 때 숙부님은 운혁 아저씨, 박성복, 표광열과 함께 멸치 도매업을 하고 있었다. 학교를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장규익 목..
8편|작가: 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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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계몽운동 1948년 7월 첫 주일에 문호 교회에서 봉안, 용진, 양수, 삼봉, 문호, 정배 여섯 교회 청년들이 모여 기독청년 연합회 모임을 가졌다. 이날 우리는 지역 농촌을 복음화하고 계몽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의하였다. 사업 내용은 이러하다. 첫째 8월..
7편|작가: 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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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할머니는 나를 껴안고 한없이 흐느껴 우셨다. 나도 감정이 복받쳐 울고 말았다. 내 얼굴은 멍으로 얼룩이 져 있었고 제대로 앉을 수 없을 만치 온 몸이 아팠다. 테러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그 날 밤 할머니..
6편|작가: 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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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해방후의 서울거리는 테러 정치 싸움으로 얼룩이 졌다. 이름 모를 국호와 정강정책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온갖 삐라가 거리를 어지럽혔고 각종 유언비어가 나돌기 시작했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한심한 한편 착잡하였다. 이것이 그리웠던 조국의 해방인가? 한숨만 나왔다. 나는 날..
5편|작가: 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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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공한지에는 어디고 땅 한 평 남기지 않고 피마자를 심어서 기름을 짜 생산하여 출하해야했고 큰 소나무 뿌리를 태워 뿌리에서 기름을 짜내는 송탄유도 만들어내야 했다. 송탄유는 오래된 노송에서만 생산되므로 노송이 별로 없는 우리 마을은 책임량을 다 할 수 없어 애를 먹었다...
4편|작가: 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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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운혁 아저씨와 나도 다른 사람보다 먼저 승차하려고 애를 썼으나 밀고 당기는 사람들 힘에 밀려 함께 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내 옆에선 일본군 중위 한 사람이 옆 꾸리에 긴 일본도를 차고 한 손엔 큰 보따리를 든 체 승차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군인이라고 해서 나..
3편|작가: 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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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첫 부임지 1940년 3월 8일 나는 경성상업실천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처음 얻은 직장이 동두천금융조합이었다. 내가 맡은 일은 식산계의 산업육성지도 였다. 오전엔 내무업무를 보고 오후엔 대부 신청자들의 재산현황과 토지명기장, 등기부 열람 등을 위해 면과 등기소를..
2편|작가: 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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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본향을 향하여 나는 1922년 10월 22일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수많은 이 땅의 애국지사들이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일제와 싸우다 투옥되는가 하면 이역만리에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피를 흘리던 암울한 시기였다. 혼란스러웠던 출생시기와 짝 맺음 하듯 내 삶은 ..
1편|작가: 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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