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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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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BY 정빈 2002-11-04

계몽운동


1948년 7월 첫 주일에 문호 교회에서 봉안, 용진, 양수, 삼봉, 문호, 정배 여섯 교회 청년들이 모여 기독청년 연합회 모임을 가졌다. 이날 우리는 지역 농촌을 복음화하고 계몽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의하였다.
사업 내용은 이러하다. 첫째 8월 첫 주일 오후에 문호교회에서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농촌계몽운동을 주제로 하는 웅변대회를 개최하기로 한다. 둘째 성탄절에 연합으로 노래

율동 성극등으로 성탄축하회를 갖도록 한다.
웅변대회엔 내가 봉안교회 대표로 출연하였다.
나는 한국농촌의 청년들이 너무도 무기력하고 꿈이 없는 것을 지적하고 우리 농촌청년들도 개척정신으로 비전을 가지고 깨어나 한 알의 밀알이 되자고 청중을 향하여 부르짖었다. 이제 우리농촌청년들이 뒷짐만을 지고 서있을 때가 아니라 두 팔을 걷어올리고 힘차게 일할 때이며 의식주생활을 개선하여 진정한 삶의 행복을 찾을 때라고. 아울러 마을마다 공동집합장소인 마을회관을 만들고 라디오 한 두대씩은 공동으로 설치하여 견문을 넓히고 건전한 복음의 기독교 문화를 개척하여 혼연일체가 되어 황폐한 조국의 강산을 재건하기 위해서 아낌없이 젊음의 정열을 다 쏟자고 호소하였다.

뜻밖에도 내가 일등을 했다. 이등에는 용진 교회 김종식 집사, 삼등에는 양수교회 청년회장이 입상되었다.
일등상으로 받은 고무신을 할머니께 드리니 참으로 기뻐하셨다. 학교에 다닐 때 운동회마다 달리기 꼴찌를 해서 서운케 해 드린 나는 그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죄송한 마음을 가졌다. .

그 해 겨울 12월 28일 밤 여섯시, 문호교회를 비롯한 양평, 양주지역의 많은 교회들이 연합하여 성탄축하의 밤을 개최하였다. 연합성가대의 찬양 및 율동과 {탕자의 비유} 성극 등이 공연되었다. 문호초등 학교 교실을 빌려서 공연을 하였는데 많은 주민들이 모여서 대성황을 이루었다.
그 날 밤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세 번째 사업계획을 구상협의 하였다. 그 자리에서 용진 교회 장규익 목사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제시하였다.

"여러분 이 지역 발전을 위해 이 지역에 성인교육기관을 세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는 적극 찬성하였다.
"네 좋은 의견입니다. 우리 기독청년들이 힘과 뜻을 모아 해 봅시다. 대 찬성입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일의 적임자로 내가 추대되었다.
그런 큰 일을 함에 있어 많은 부족함을 느꼈지만 여러 회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내가 나서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는데 거절 할 수 없었다.

나는 여러 서적, 특히 일본의 하천풍 선생의 입체영농계획서 등을 참조하여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정형편이 어려워 상급학교에 진학 못한 청소년을 위한 학교의 설립목적과 학제 운영에 관한 초안을 작성하였다. 그런 후 용진 교회 장규익 목사와 구체적으로 협의한 후 고등공민 학교설립 신청서를 작성하여 양주군학무과에 신청하였다. 일이 잘 풀려서 1949년 신학기부터 학생을 모집하여 개교할 수 있게되었다.

처음 모집한 학생은 58명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삼 년이 지나서 몇 년 후엔 시집을 갈 연령의 여학생들도 있었다. 이제는 농촌 여자들도 부엌에만 있을 것이 아니라 사회로 진출하여야 한다는 신념으로 입교한 여학생들이었다.
조안출장소장 및 지서주임을 비롯한 많은 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열린 개교기념일 날, 장규익 교장은 다음과 같은 감격스러운 개교사를 하였다.

"오늘 이와 같이 여러 기관장님을 위시하여 여러 유지되는 분들 특히 지역주민 여러분들이 이 지역 유일의 청소년 중등과정 교육기관인 우리 용진고등공민학교 개교에 참석해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저희들은 배우고 싶어도 가난 때문에 배움의 길을 가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 고등공민학교를 세웠습니다. 이 학교는 바로 여러분의 자녀들이 다녀야 할 학교입니다.

그러므로 많이 사랑해 주시고 이웃의 청소년들을 많이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맡아 교육하시게 도리 분은 이 고장에서 나고 자란, 지역발전에 큰 뜻을 품은 김정빈 선생님과 또 비록 이북에서 오셨지만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박애사상으로 이 지역에서 몸을 받쳐 헌신하기로 한 김명진 선생입니다. 두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김정빈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소개받은 나는 떨리는 음성으로 인사말을 하였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와 같이 많이 참석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곳은 어떠한 고장입니까? 세계의 명산인 금강산을 기점으로 해서 동북쪽으로 우리나라 중심부를 흐르고 있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고장이며 갈비뼈와 같이 중추적 역할을 하는 광주산맥이 뻗어 금수강산을 이룬 고장이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역사적 인물로 유명한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의 출생지며 근대사에 와서 민족의 지도자 항일투쟁의 투사이며 선구자였던 문양 여운형 선생의 출생지가 바로 저 강 건너 양서면이 아닙니까? 다 함께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고장입니다. 서울에서 불과 칠 팔십리 밖에 되지 않은 곳인데 이 얼마나 낙후된 고장입니까? 우리고장의 청소년들이 잘 배우고 깨우쳐서 살기 좋은 고장으로 개척해 나갑시다. 그러기 위해서 고등공민학교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해 교육에 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목소리는 감격에 겨워 심히 떨리고 있었다.
어느덧 봄, 여름, 가을을 지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였다. 그간에 학생들이 배운 것을 인근주민들에게 발표하고 동시에 농민계몽운동을 펼칠 요령으로 연극위주의 순회공연을 하였다.

토요일저녁 마다 능내, 진중, 조안, 시우, 삼봉, 양수 여섯 개 리의 마을을 돌며 순회공연을 하였다. 연극이 무엇인지 학예회가 무엇인지 보도 듣도 못했던 마을 사람들이 장면이 바뀔 때마다 박수갈채를 보내며 함성을 질렸다. 다음 날은 온 마을이 학예회와 연극을 화제로 올렸다.
학교에 보내라고 권할 때 못들은 척 하던 마을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내자식도 이제는 학교에 보내야겠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해 신학기에는 입학지원자가 많아 다 수용 못할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