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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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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BY 정빈 2002-10-10

해방후의 서울거리는 테러 정치 싸움으로 얼룩이 졌다. 이름 모를 국호와 정강정책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온갖 삐라가 거리를 어지럽혔고 각종 유언비어가 나돌기 시작했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한심한 한편 착잡하였다. 이것이 그리웠던 조국의 해방인가? 한숨만 나왔다. 나는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해방된 조국이 나아갈 길을 인도하소서.......

1945년 8월16일, 중앙에 건국치안대가 조직되어 장 권 씨가 책임자가 되었다. 학생 2000여명이 전 시내에 넓게 퍼져 치안을 맡았다. 치안본부는 안국동에 있는 풍문여고 교사를 임시로 사용하였다.
숙부님 지도 하에 있던 청년동지들 삼사십 명은 휘경동에 있는 태창직물공장 기숙사에 터를 잡고 건국청년운동을 하였다. 몽양 선생도 수시로 들렸고 때로는 수일간씩 머무르다 가곤 하였다. 나는 열심히 숙부님의 일을 도왔다. 내가 하는 일이 조국의 앞날을 밝힐 원동력이 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런 믿음은 나뿐만 아니라 거기 모인 모든 동지들의 믿음이었을 것이다.

구월육일 밤 열 한 시경이었다. 박승환과 문용채 두 중위가 십여명의 장교를 대동하고 몽양 선생님을 호위하여 들어왔다. 그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 우리들에게 말했다.
"동지 여러분들. 우리 축하합시다. 오늘 몽양 선생님께서 우리 조선인민공화국 부주석으로 추대되셨소. 동지들 힘차게 환영 축하합시다.

누군가가 박승환 중위에게 물었다.
"부주석으로 추대되시다니오?"
"오늘밤 일곱시에 경기여고 강당에서 전국인민대표자대회가 열려 천 여명의 대의원들이 조선인민공화국을 수립선포하고 주석에는 이승만, 부주석에는 여운형 선생, 국무총리에는 허 헌을 각각 추대하였소. 지금부터 더욱 철저히 경비에 임해주기 바라오"

"네 잘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경비하겠습니다"
그러나 대원들 간에는 허전하고 불안하며 씁쓸한 기운이 흘렀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이렇게 쉽게 나라가 탄생하다니,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여러 동지들과 광화문과 종로거리를 걸어보았다. 과연 조선인민공화국이 탄생하였는가? 하는 기우심에서였다.

거리마다 조선인민공화국의 탄생을 알리는 벽보가 붙어있었고 삐라와 호외가 깔려 있었다. 반면에 인민공화국을 반대하는 단체들의 비난의 벽보와 삐라도 거리 가득 살포되어있었고 상호 비방의 확성기 소리가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거리를 걷고 있는 내 마음은 한없이 착잡하였다. 과연 이 나라가 질서가 서고 참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민주국가 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며칠 후 그간 연락이 두절되었던 이호재 동지가 찾아왔다.
"아! 얼마만이야. 호재동지가 아니야? 어서 와. 이제 찾아오다니..."

"그간 별고는 없었나. 김 동지. 얼마나 수고하고 있는가? 김 동지 소식을 물으려고 각 방면으로 연락하여 친구들에게 문의하였었네. 하지만 알 길이 없었네. 그래서 삼일 전에 봉안에 가서 아버님을 찾아뵈옵고 이곳에 있는 것을 알고 이렇게 찾아왔네"
우린 반가움의 악수를 나누고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방이 된지 며칠이 되었다고 갑자기 조선인민공화국이 수립되다니 될 법한 일인가?"
"나도 공감하네. 절차는 거쳤어야지. 나라를 세우는 일인데. 좀 섭섭한 감이 있어..."
"그래 너무도 성급하게 나라를 세웠다고 발표를 했어."

"자고 나면 우후죽순처럼 정당 및 국호가 생겨 난립하고 사회질서는 갈수록 혼탁하여 가니까. 더 큰 혼란이 오기 전에 나라를 세워 질서를 바로 잡아보자는 뜻이었겠지."
"그러하겠지. 정빈 동지는 이곳에서 건국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현실을 나보다 더 잘 알고 파악하고 있겠지. 그러나 나 개인 소견으로는 상해임시정부도 들어오고 평양의 조만식 선생, 미국의 이승만 박사 그 외 해외의 독립애국인사들이 다 들어와서 한자리에 모여 뜻을 합하여 적법한 절차를 따라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순리라 생각되네. 물론 과도기란 것도 있겠지만.... 삽심팔도선을 경계로 하여 미군은

남쪽을 소련은 북쪽을 각자 점령한다는 등 또 소련군대가 내일 서울역에 입성한다는 등 여러 가지 예측 못할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민심이 혼란한 차제에 과연 하루 밤에 급조된 인민공화국이 나라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생각할 때 참으로 앞날의 정국이 걱정스러워지네 안 그런가?"
"그러한 점에 나도 동감하네. 그러나 종로 네거리를 나가보게. 하루 밤 자고 나면 나라가 하나씩 생겨나네. 여북 했으면 인민공화국이 선포되었겠나. 모두가 지도자들의 책임이지"

"일본 놈들도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고, 그들이 시내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해방된 나라인지 의심이 가기도 하네"
호재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였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그러게 말일세. 좀 더 신중하게 현실을 파악하여 대처했어야 하는데. 걱정이 많이 되네"

"삼일운동이 왜 실패하였는지 김 동지도 알겠지. 그 이유
는 정신은 무장되었으나 힘으로 싸울 수 있는 장비가 없었기 때문이지. 현실도 동일한 상황이야"
"그것은 나도 긍정하네. 정신은 무기보다 강한 것으로 아네. 삼일운동 당시의 정황과 오늘의 정세는 다르지. 그 때는 억압 속의 민족적 반항의 울부짖음이었으나 오늘은 대연합군의 승리로 일본이 패망하고 그로 인해 이 나라가 자유를 찾았으니 삼천만 민족이 단결하여 건국을 해야지."

"정빈 동지 명심하시게. 실력 없는 나라는 사상누각이야. 이름만의 독립국가로 경제적 식민지에서 탈피 못하는 강대국의 예속이 될지 누가 아나"
"그러니까 우리 젊은 청년들이 정신을 차려서 건국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나. 독립은 남이 주는 것이 아니고 내가 노력해서 쟁취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젊은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국력을 모아 실력을 키워야지. 요즘같이 혼란이 지속되면 참된 독립국가는 기대할 수 없어. 마치 풀어놓은 망아지같이 분별 없이 날뛰고들 있으니.....

어린 아이들 불장난하듯 경거망동하는 무리들이 많이 있으니 참으로 앞날이 걱정스러워지네"
정말 걱정이었다. 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민족은 또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게 핍박을 받고 착취를 당했던 민족이 아닌가. 이제는 광복의 기쁨 속에서 편하고 안락한 삶을 누릴 때가 되지 않았는가. 우리 민족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었다.
이호재는 진심으로 조국의 앞날을 염려하다가 돌아갔다. 그 후 그와는 연락이 두절되었다. 오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의 생사를 모르고 있으니 영 궁금하다. 어디서 무얼 하는지.

시월초 어느 날 귀한 손님이 온다고 하더니 저녁 여섯시 무렵 응접실로 장구, 북, 가야금, 부채, 화문석 돗자리 등이 들어왔다. 이어 권번의 기생들 몇이 와서 북과 장구를 치거나 혹은 가야금조에 맞추어 춤을 추며 열심히 연습을 하는 듯하더니 아홉 시경 박헌영이 낮선 두 명의 남자와 함께 들어왔다. 몽양선생과 숙부님은 박헌영 일행과 잠시 인사만 나누고 외출하였다. 나는 이날 박헌영의 얼굴을 처음 보았는데 작은 키에 얼굴은 둥글고 날카로운 인상을 갖고 있었다. 내가 아는 박헌영은 변장술이 뛰어나 일본 경찰관원들이 기를 쓰고 잡으려해도 잡지 못했던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보니 기생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누구에 뒤지지 않았다. 나는 그가 노래와 춤을 그렇게 잘 할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이 펼치는 흥겨운 노래와 춤판은 나로선 난생 처음 목격하는 괴이한 광경이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날밤 잠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헉명한다는 사람들이 기생을 데리고 춤을 추며 노래를 하다니. 장차 국정을 맡을 인사들이 이래도 되는 걸까...온갖 근심과 사념이 스쳐 가는 기나긴 밤이었다.
그런 와중에 기쁜 일도 있었다.

아버지께서 신당동 앵구촌에다 나를 위해 집을 한 채 사 주셨고 시골 계시는 할머니께서 오셔서 매일 따뜻한 밥을 지어 주셨다. 할머니와 함께 있으니 얼마나 즐거운지 표현할 수 없었다. 숙부님과, 같이 일했던 신현준 동지도 우리 집 옆으로 나란히 위치한 세 가옥을 한 채씩 매입하였다. 세 집 다 일본본국으로 귀환하는 일인가옥이었으므로 염가로 매수하였다. 모처럼 할머님으로 인해 즐거운 날을 보내는데 어느 날부터 이삼 명의 괴한이 집 주위를 배회하며 우리 집에

출입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는 없었으나 필히 좋지 못한 사건을 만들 인물들이 분명했다. 공포의 날이 계속 되었다. 조심한다고 했건만 어느 날 일을 당하고 말았다. 숙부님으로부터 속히 창신동으로 나오라는 전화연락을 받고 집을 나서 창신동으로 가던 중 동대문 옆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를 당한 것이다. 그들은 등뒤에서 내 팔을 뒤로 꺾어 당기며 위협하는 말투로 귀에다 속삭이듯 말했다.

"아무 말하지 말라. 소리 지르면 죽여 없애겠어. 알겠어?"
그들은 나를 인기척이 없는 집으로 끌고 갔다.
"이 새끼야 꿇어앉아. 어서!"
고함소리와 함께 볼과 턱에 주먹이 날아들어 내 정신을 빼놓았다.
"이 새끼의 틀어막은 입은 풀어주고 눈을 가리운 채 그대로 두어라"
한 놈이 지시를 하니 다른 놈이 막았던 입을 풀어 주었다.
"너 살래. 죽을래. 살고 싶으면 묻는 대로 사실을 말해"
"... ...."

"우리는 너 같은 쫄따구는 죽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대로만 말하면 된다. 우리가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하면 살아서 나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살아서 가지 못할 것이다. 알겠어? 이 새끼야, 명심해서 택해라. 지금부터 묻겠다. 너희들의 정체는 우리가 다 알고 있다. 너희 대원이 모두 몇 놈이야?"
"일정하지 않소. 적을 때에는 오륙십명 많이 있을 때에는 백여명 이상 있소"

나는 실제보다 부풀려 인원수를 말하였다. 놈들의 기를 꺾기 위해서였다. 놈들의 언어 행동을 보아 정치 테러단인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네 놈들의 총책임자는 누구냐?"
"특별히 총책임자라 할 사람은 없소. 우리끼리 자생적으로 모인 단체이니까"
"이 새끼야 거짓말하지 말어. 책임자 없는 조직단체가 어디 있어. 여운형과 김용기지, 안 그래? 여운형은 늘 그곳에서 숙식하고 있지 않은가?"

"전에는 창신동에서 숙식하셨는데 며칠 전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셨소."
"그러면 옮긴 숙소가 어디냐 말해봐"
"나는 전연 모르겠소"
"여운형이 없는데 백여명씩이나 모여서 무엇을 하고들 있어 이 새끼야!"
"정국이 안정되고 태창공장이 가동되면 직장이라도 구해볼까 해서 사장의 잡역이나 하고 있소"
"네 놈은 김용기의 조카이지"
"그렇소"

"김용기는 지금 어디 있는가?"
"몽양 선생과 같이 계시는데 지금은 어디 계신지 나도 잘 모르겠소"
"이 새끼야 숙부님 있는 곳도 몰라. 바른대로 말해.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여운형과 김용기가 숙식하는 곳과 창신동에 출입하는 사람들의 정체를 알고자 하는 것이다. 어디 있느냐? 이 새끼 어서 말해봐"
또 다시 정강이와 앞가슴을 무자비하게 발로 걷어찼다. 두려움과 고통이 극에 달하였으나 나는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옛 속담을 기억하고 안간힘을 다해서 정신을 차리려했다.

"네 놈들은 청년건국운동을 한다면서 모여서 정치 테러하는 악질적 테러단체이지 안 그래?"
"무엇을 보고 정치테러단이라 하오"
"네 놈들이 그 넓은 집에서 백여명씩 모여서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단 말이냐?"
"음모를 하고 있다뇨?"
"여운형은 정치테러단의 두목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요. 테러 두목이라 하다니? 오직 그 분은 민족과 국가의 독립을 위해서 일평생을 일본제국주의와 싸운 애국투사로써 오늘날까지 조국건설을 위해서 헌신하신 민족의 태양과 같은 민족의 지도자 되시는데 어찌 오만불손하게 정치테러단의 두목이라 하는 것이요"

"이 새끼 봐라. 아직 정신 못 차리고 함부로 지껄이고 있다. 태양과 같은 민족의 지도자?"
또 뺨과 옆구리에 주먹이 날아왔다. 너무 아파서 호흡이 끊기는 듯 했다.
"김용기는 어디 있어. 배신자들. 개새끼들. 어서 말해"
나는 그들이 말하는 배신자라는 말에 주목했다. 배신자라.... 오늘날까지 그 누구도 배신한 일도 없고 그럴 일도 없었는데 배신자라니, 나 뿐 아니라 몽양 선생이나 숙부님도 누구를 배신할 분이 아니었다. 과연 무엇을 보고하는 말일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보았다. 그러다 문득 총독부 경찰국의 고등 밀정원 오병철이 떠올랐다. 해방이 되자 소위 건국청년회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던 그는 몽양 선생과 숙부님을 찾아와 기용해 줄 것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숙부님과 몽양 선생이 어떤 분이신가, 자중하고 있으라는 말로 냉정히 거절하였으니 적개심을 품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혹시 오병철의 사족이 아닌가 생각하자 내가 죽더라도 두 분의 거처를 말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 지금 여운형, 김용기 어디 있고 거처하는 곳이 어디야?"
".... ....."
"누구보다도 네 놈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터인데..."
".... ....."
"네 놈들이 여운형의 신병을 보호하고 있지"
".... ....."

"우리를 배신한 놈들은 용서 못해. 네 놈이 살고 싶으면 어서 말해봐"
내가 입을 굳게 다물고 한 마디도 안 하자 그들은 인정 사정없는 구타를 해 댔다. 나는 매에 못 이겨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한참 후 정신을 차려보니 그들은 도망가고 없었다. 다리를 절며 이슥한 밤길을 걸어 집에 오니 할머니께서 사색이 되어 눈물을 흘리며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내가 실종된 걸 안 창신동 본부에서 여섯 시경에 파출소에 실종신고를 하고 할머니께도 연락을 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