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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창


BY 김덕길 2007-09-24

소설: 탄창

제 1부: 2억 만들기

1편: 탄창

탄창: 총의 보충용 탄환을 재어두는 통

1995년 5월 정읍 잔다리목 재래시장으로 아침햇살이 튕겨져 나왔다. 기지개를 켠 햇살이 총총걸음으로 떠오르지 못하고 엉거주춤 구름 속에서 물풍선마냥 부풀어 오기만 할 뿐 쉬이 그 화려한 자태를 다 뽐내려 하지 않았다. 길가 전신주에는 일수광고가 덕지덕지 붙었다. 사람 눈에 제법 잘 보일만큼의 높이에는 교차로 신문 거치대가 쇠사슬로 꽁꽁 묶여있었다. 여기저기 길바닥엔 나이트클럽 전단지가 널브러져있고 신문 쪼가리도 이에 질세라 점포임대 써진 상점 문 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날짜지난 신문들은 이슬에 흠뻑 젖어있었다.

신문에 쌓인 이슬이 스르르 말라갈 즈음 햇살은 중천에 떠올랐다.
재래시장의 문이 활짝 열렸다. 하루 생활의 피를 말리는 전쟁은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얼기설기 엮어진 시골 시장이 북적거렸다. 콩나물과 두부를 파는 꼬부랑 할머니도 벌써 나와 진을 치셨고 과일을 파는 청과물 아주머니도 전투준비에 여념이 없어보였다. 시장안은 저마다 상인들로 북적거렸지만 물건을 사러 나오는 손님들은 거의 없었다. 전투 준비를 다 마친 상인들은 오가는 손님들이 없자 다시 풀이 죽었다. 등받이 없는 의자에 구부려 꾸벅꾸벅 조는 수염이 난 할아버지의 볼따구로 파리 한 마리가 징징거렸다.
연신 손사래를 쳐 파리를 쫓아보지만 파리는 막무가내로 할아버지의 볼을 공격하였다. 오후 2시가 넘어가도 잔다리목 시장에는 손님이 없었다. 아예 과일 옆에서 드러누워 칼잠을 청하는 아줌마도 계셨다.
잠시후, 난전에서 콩나물을 파는 할머니가 잔다리목 정류장근처를 돌아보며 혼잣말을 하였다.
‘노망든 그 할망구 올 때가 되었는디.’
할머니는 한 손을 이마에 올리며 태양빛을 가리고 정류장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아니나 다를까 버스정류장 근처에는 누더기를 덕지덕지 걸친 할머니 한 사람이 꾸역꾸역 시장 안으로 기어오고 계셨다.

할머니의 행색은 거지나 다름없어 보였다. 얼마나 세탁을 하지 않았는지 헤어진 몸배바지로 땟물이 흥건하게 묻어있었다. 다리는 관절이 나가서 쓰지도 못하는지 손과 허리에 다리를 의지하는 듯 힘없이 몸뚱아리 가는대로 다리가 질질 끌려왔다. 그 할머니는 어제도 기어 다녔고 일주일 전에도 기어다녔고 한달 전에도 어김없이 이 시장바닥을 청소하려는듯 그 몸뚱이를 바닥에 쓸고 다녔다. 그리고 오늘도 시장바닥을 기어 다니려나 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벌써 한 달째 시장바닥을 기어 다니며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혼자서 중얼거렸다. 할머니의 한 손에는 탄창을 들고 계셨다. 할머니는 탄창을 땅에 지익지익 끌었다. 얼마나 바닥에 탄창을 끌었는지 반은 이미 닳아있었다. 콘크리이트 시장바닥에는 탄창에 긁힌 시멘트 부스러기들이 수류탄 파편처럼 흩어져있었다. 할머니의 이동경로를 따라 탄창 긁힌 자국들이 길게 이어져있었다. 한참 낮잠에 취해있던 슈퍼아저씨가 시끄러운지 벌떡 일어나 할머니의 탄창을 빼앗으려 하였다. 그러자 할머니는 발악을 하며 뺏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리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녀! 우리 아들이 그럴 사람이 아녀! 내 아들이 얼마나 효자인데 절대 아녀! 생사람 잡지 마! 아이고 민수야! 내 아들 살려내! 민 수 야!”
할머니는 바닥에 앉아 탄창을 짓찧으며 오열을 하였다. 순대를 팔던 노점상 아줌마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아이고, 저 할머니 불쌍해서 어쩌쓰까? 다 죽어가는 엄니를 아들이 살렸다고 좋아했는데 아이고 불쌍해서 어쩌쓰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잔다리목 시장 앞으로 차량 한대가 멈추었다. 차에서 처음 보는 여자가 내렸다. 그녀는 가녀린 어깨에 고개 숙인 모습에서 그 어떤 표정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핏기 잃은 모습으로 시장 안을 서성거렸다. 잠시 후, 그녀는 탄창을 짓찧으며 오열을 하는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할머니! 민수씨 어머니 맞죠? 민수씨 보러가요. 어머니!”
“민수? 민수 알아? 정말 알아?”
“예, 어머니 제가 알아요. 제가 안내할게요.”
민수라는 말에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왔는지 할머니는 순순히 그녀의 차에 올라탔다.
“근데, 처녀는 누구여? 우리 민수를 어떻게 알아?”
“친구예요. 어머니.”
차는 서서히 내장산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내장산을 거쳐 백양사 쪽으로 한참을 향하던 차는 산 중턱쯤에서 시동이 꺼졌다.
그리고 할머니를 내려드렸다.
“민수 어딨는겨? 응? 어디 있냐고?”
그녀는 구부러진 산길로 조금 올라가더니 멈추었다. 그리고 손으로 소나무 아래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새로 만든 무덤 하나가 잔디도 나지 않은 썰렁한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오래된 무덤 하나가 듬성듬성 돋아난 잔디를 마치 머리가 반 정도 빠진 사람처럼 앉아있었다.
“저게 민수여? 저게 우리 아들 민수여? 왜 자가 저기 있어? 응? 왜?”
“어머니 민수씨 죽었어요. 한 달 전에 ……. 그 충격으로 어머니는 정신을 잃어버린 거구요.”
“아녀! 아녀! 우리 민수가 왜 죽어 저 착한 것이 왜 죽어 거짓말 마 이년아!”
“어머니! 앞으로 민수씨 보고 싶으면 언제든 말씀 하세요 제가 모시고 올게요.”
그녀의 얼굴에선 이슬방울 같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민수야! 아이고 민 민수야!”
무덤을 부여잡고 대성통곡을 하시는 할머니의 눈에서는 눈물이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울었으면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것인지 진희는 그런 민수 어머니가 가엾어서 미칠 것만 같았다.
할머니는 갑자기 껄껄껄 웃었다.
“야 이년아! 너 이게 뭔지 아냐?”
“이게 바로 탄창이란 거여. 이걸 총에 쑤셔 박고 우리 민수 죽인 놈들 향해 탕탕탕 쏘면 홱 하고 자빠져불지 너도 한번 죽어볼래?”
할머니는 갑자기 진희의 가슴에 지팡이를 대고 탄창을 잡는 시늉을 하더니 사정없이 총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타타타탕! 타타타타탕!”
내장산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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