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만 나면 밖으로 나가는 남자와 밖에 나가는 걸 시어머니 댁에 가는 것마냥 싫어하는 여자가 있다.
이렇게 사람은 두 부류로 나눠진다고 한다.
물론 두 가지를 적절하게 섞은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적당한 사람들보다는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본다.
나는 집안에서 뭐든 하는 여자다.
휴일 날 친구들이 불러내도 나가기 싫어해서 친구들이 날 불러내질 않는다.
이러다가 더 나이먹게되면 외따로 떨어진 산속 집이 될것같긴하다.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밖에 나가지 않고 안에서 뭐든 한다.
책 읽기를 좋아해서 밤새 책을 본다.
책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전국을 걸어 다니고 해외를 안가보곳이 없다.
남극도 걸어서 가고 아프리카를 자전거로 돌아다녔다.
하도 책을 보니 밖에서 푸는 남자는 내게 이런 질문도 했었다.
“책에서 돈이 나와, 사랑이 나와?”
화초를 많이 키워봤다. 서양 꽃부터 들꽃, 허브까지 죽였다 살렸다 한다.
겨울엔 싹이 난 고구마도 넝쿨식물처럼 키우고 무도 싹을 내서 꽃도 피워봤다.
가지각색 꽃을 키우며 그 가운데 앉아 차를 마시며 혼자 고독을 만끽한다.
밖에서 푸는 남자는 오이지 같은 얼굴로 물어봤다.
“청승 떨고 있네.”
그러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보는 밤시간에 컴에 붙어 글을 쓰면서 속을 풀어냈다.
울면서 쓰고, 웃으면서도 쓰고, 화가 나서도 쓰다 보니 컴진드기는 여기서 많이 행복했다.
밖에서 푸는 남자는 의심을 잔뜩 품고서 물어봤다.
“내 흉 보는거아냐?”
밖에서 뭐든 푸는 남자는 날 집순이라고 부르게 되고, 나는 그 남자를 방랑자라고 불렀다.
밖에서 뭐든 푸는 남자는 집에 있으면 답답하다고 했다.
차를 끌고 소 갈대 말 갈대 안 가본 곳이 없다고 자랑을 해댔다.
안에서 푸는 여자는 물어봤다.
“그런데 왜 길치야?”
방랑자는 도박을 좋아한다. 지나치게 많이 사랑하다가 그 사랑에 푹 빠져 죽었다.
집도 바치고, 월급도 고스란히 줬다. 결혼시계도 반지도 바쳤다.
시간도 바치고 세월도 바치고 결국엔 집도 절도 없는 방랑자가 되었다.
집순이가 물어봤다.
“ 후회는 안 해?”
방랑자는 술도 참으로 좋아했다. 밤새 술을 먹고 또 먹다가 운전을 하고 구치소에 들어가고
면허가 정지되고 면허를 따고, 다시 술을 먹고 밖에서 잠을 자는 건 셀 수 없이 많았다.
밖에서 남자의 별명은 술독이었다.
집순이는 또 질문을 해 본다.
“술하고 결혼하지 왜 나랑 결혼했어?”
그로부터 이십 년 세월이 흘렀다.
안에서 푸는 여자는 책만 보고 꽃만 키우고 집에만 붙어있는 답답한 여자로 살고 있다.
벗어나려고 했지만 청승맞다는 말이 듣기 싫어 반대로 살려고 했지만 여전히 안에서 뭐든 한다.
노후에도 나는 이렇게 살게 될 것 같다. 이게 내 인생이고 타고난 태생인데 어쩔 수 없다.
누구나 생긴 대로 살아야지 내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어도
결국은 제자리로 안주하며 안심의 숨을 쉬게 되었다.
밖에 나가면 난 힘에 부친다. 사람들의 말소리에 휘청거리고,
대부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난 확실히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것 같아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안에 있으면 포근하고 행복하다.
아기자기한 소품 가구들과 책, 그 위에 있는 초록식물들이 날 안아주면
이 안엔 시기할 무엇도 없고 질투와 욕심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생기지 않는다.
난 허무주의자이며 몽상가이기도 하며 투덜이기도 하기 때문에
집안에서 조용히 사는 게 확실히 맞다.
방랑자인 남자는 이십년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주말이면 자꾸 날 불러낸다. 같이 놀자고.
타인과 놀려고 그리 핑계를 대던 남자가 이젠 나와 놀려고 한다.
담배도 끊었고 술독도 깨버렸고
도박이란 귀신과 사랑에 빠져 헤어나올 줄 모르던 사람이 내게로 돌아와 미안해 배시시 웃었다.
난 이 남자를 용서하진 않았다. 다만 불쌍한 얘들 아빠로 보게 되었다.
한 달에 두어 번 얘들이랑 같이 만나 맛있는 밥도 먹고 공차도 마시고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간다.
원래 착한 성품을 지닌 남자라 내가 잔소리를 하든 성깔을 부리든 다 받아주고
화가 나도 오분이면 콧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다 보니 싸움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돈이 생기면 나와 자식을 위해 쓰려고 한다.
다만 지금 돈이 별로 없다는 게 문젯거리인긴 한데.
뭐 별수 없다 돈복도 그 팔자 내 팔자려니 한다.
외롭다가도 책을 펼치면 세상 어디든 여행할 수 있고,
힘들다가도 꽃을 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눈이 시원해진다. 수다를 떨고 싶으면 글을 쓰면 된다.
집순이라도 여행은 좋아한다. 그럴 때면 방랑자를 불러 아이들과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가다가 휴게소에 들려 각자 먹고 싶은 걸 골라 나눠먹고,
들꽃이 많이 핀(내 주장이 쌔서 내 가고 싶은 곳이 목적지가 된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같이 거닌다.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외롭지 않다.
그 옛날엔 서로 딴 곳을 바라봤지만 지금은 같은 곳을 본다.
후회를 한들 뭘 하겠나, 떠나 버린 돈을 쫓은들 날 찾아오지 않는다.
뭐든 한 때인 걸, 뭐든 때가 있는 걸.... 뭐든 내 맘대로 되는 않는 게 인생인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