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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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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이민 가정 1.


BY 은웅택 2006-03-23

미국에온지 2년쯤 이었다.

지역신문에 어떤 사진이 나왔는데 새로온 학생 아이의 사진이고

아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어른이 태권도 하는사진도나왔다.

전에도 교통사고가 있었는데 영어를잘못하는여자가가 사고로 많이다쳐서

큰마을에 있는 병원으로 옮긴다는 기사를 적이 있는데

우리마을이 아니고 우리집에서 차로30분쯤 가는곳에 있는마을이다.

우리마을보다 작은마을 이다.

이것은 무슨일인가 싶었다. 알길은 없었다.

그러나 조그만 동네이고 하니 그저 한국과 관련되기만 하면

사람들은 무조건 알려 주려고 한다.

주변의 도움으로 연락이 되었다.

전화를 해보니 한가족이 아니고 두가족이 있단다.

당장 만날 약속을 하였다. 장소가 어디 있겠나?

우리집으로 오시라고 하였다.

처음 만났지만 같이 김치를 놓고 먹을수 있다는것이 보통 인연인가?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하고 서로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가족은 서로 친척으로서 A씨댁이 먼저 왔고

B씨댁은 온지 얼마 안되었던 것이다.

모두들 이곳에서 한국사람을 만날줄 몰랐다고 한다.

한국사람들을 많이 찾았단다.

 

A씨댁은 아저씨가 닭공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하루에 2만마리를 잡는 일이란다.

영주권을 얻기위해 단순노동자로 이곳에 오신것이다.

처음에는 동부로 왔다가 그곳에 자리가 안나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단다.

그분 말씀이, 전에도 어떤 한국사람이 와서 일하다가,

영주권을 따서 간적이 있단다.

당신들도 영주권을 따면 바로 동부에 있는 큰도시로 나갈거란다.

아줌마도 열심히 일하면서 사셨는데,

아줌마가 바로 교통사고가 났던 당사자였던것이다.

미리 알았으면 도움이될뻔 했는데……

닭공장은 주로 멕시칸들이 와서 일을 한다.

아줌마 말씀이 멕시칸들이 아줌마가 사고가 났을때

모두들 아저씨한테 와서 묻더란다.

필요한것 없냐고, 있냐고….(아줌마가 아파서 일을 못해 돈을 못버니까)

모두들 계란 한줄, 식빵 한줄, 깡통에 들어 있는 음식들을 갖다 주더란다.

우리 어렸을때 동네에서 십시일반으로 도와 주던것 처럼 말이다.

결국 우리가 알게 된지 얼마 안있어서 그가족은 동부로 떠났다.

영주권을 쥐고 꿈에 부풀어서….

 

B씨댁은 우리가 처음 만날 당시는 내외가 아무일도 하지를 않고 있었다.

닭공장에 아직 자리가 났단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오셨단다.

근데 문제는 닭공장에서 일할 사람이 아저씨가 아니라

아줌마였던 것이다.(아줌마 이름으로 신청했기 때문에)

내가 걱정이 되었다.

보아하니 한국에서 곱게 사시던분 인데 어떡하나 하고

그러나 아줌마는 일자리가 나서 일을 시작했을때 씩씩하게 시작 하였다.

! 대한민국의 씩씩한 엄마들이여, 자식을 위해 무엇은 못하랴

2만마리나 되는 닭을 빙빙 돌아가는 컨베어에 거는 작업이라 한다.

냄새를 참아 내기도 힘들고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

다른사람들과 보조 맞추기도 힘들고…………..

그래도 착한 멕시칸들이 많이 참아주고 도와줘서 견뎌냈다고 한다.

다행하게도 일을 시작한지 7개월이 되지 않아

영주권을 손에 쥘수 있었다.

몇년이 흐른 지금도 가족은 닭고기를 안먹는다고 한다.

그렇게 아내가 고생을 할때 남편 되시는 아저씨의 마음은 어땠을까?

가족에게는 참으로 힘든 세월 이었다.

그래도 그와중에도 우리 가족과 그가족은가끔 만나서

고기도 구워먹고 소주도 한잔 하면서 회포를 풀었으니….

그아저씨와 우리남편은 서로 죽이 맞았다.

그분들이 우리보다 조금 위이시기는 하지만 크게 차이나지 않았고

천성이 순하고 착하신분 들이기에 서로 도우면서 잘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영주권을 받자 한달도 안되어서

가족도 동부에 있는 큰도시로 떠났다.

아저씨, 아줌마의 마음이 이해되지만 몹시 아쉬웠다.

떠나기 전날 우리집에서 삼겹살과 소주파티를 하면서

남자분들의 진한(?) 포옹과 여자들의 눈물 속에서….

그다음날 오지 말라는소리에 나는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지 못한것이

지금도 아쉽기만 한데, 떠나간지 2 7개월만에 그가족은 고향을 찾듯이

다시 한번 우리집을 방문 해주었다. 무려 12시간을 운전해서

아저씨말씀이 넓은 미국땅에 와서 있는 집은 우리집밖에더라고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고맙기도 하고 의미심장 말이다.

한국사람 들이 많은 그곳에서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란다.

그럼 그렇지,내가 자란곳 만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내고향, 어릴적친구,가족, 친척

객지가 그렇지 .

 

작년에 그댁은 그곳에서 집을 사서 이사를 했다고 한다.

올해는 우리가 그댁이 있는 동부로 휴가를 가볼까 한다.

미국에 있는 친척집으로,

12시간을 운전해서

미국에서는 그것도 가까운 거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