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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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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쌈말이


BY 은하수 2005-12-02

시어머니 생신 때는 긴장을 하고 손가는 음식도 마다 않고 하였는데

 

친정엄마 생신 때는 어떻게든 손이 덜가고 생색을 낼 수 있는 걸 하고 싶었다.

엄마가 내게 성의를 안 보이니 나도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엄마가 밥과 미역국, 나물무침, 밑반찬, 생선구이, 한치조림을 준비해 놓았다.

동생은 구절판을 진짜 구절판에 담아오고 새우와 동태전, 불고기를 해 왔다.

나는 잡채와 무쌈말이를 준비해 가서 아침에 만들어 내었다.

거기에다 모카케잌까지 하나 사서 얹으니 훌륭한 생신상이 되었다.

 

손주 여섯인데 셋만 왔으니 50%의 참석을 하였다. 이럴 때 빈자리가 커 보인다.

자식이 사위까지 여섯인데 넷이 왔으니 70%가 왔다.

환갑쯤에는 다 모일 수 있을 거라 막연히 기대했었는데...

셋째 사위 공부 마치고 돌아올 때 그 때 집단장을 할 거라고 여태 도배도 안 하고

사셨는데...

세상사가 뜻대로 되질 않지만 그래도 세월을 견뎌야 함을 이제서 안다.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짐을 주신다 하지 않던가...

 

셋째가 전화를 했다.

"못 도와줘서 미안해, 언니."

"너두 있었어야 하는데... 그래, (잘 있어줘서) 고맙다."

 

잡채가 좀 싱겁고 당면이 야채에 비해 너무 많았다.

무쌈말이는 무순, 맛살, 햄, 당근, 피망, 지단, 표고를 채썰어 살짝 볶은 뒤 파는 절임무에

돌돌 싸서 미나리줄기로 허리를 동여매어 소스에 찍어 먹는 것인데

모양도 나고 맛도 있었다. 엄마 왈

"구절판보다 만들긴 쉬울 것 같은데 얕은 맛은 더 있네."

그냥 맛있다고 해도 되는데...

 

다들 맛있게 감사하게 (그래도 이만큼의 행복을 주셨으므로)

먹고 나서 딸 둘이 설겆이를 했다.

둘이라도 되길래 다행이지 하나였으면 설겆이도 제대로 못할뻔 했다.

 

좀 쉬다가

(그래도 환갑 치렀다고 안도한 나머지 대낮에 잠이 들었다.)

일어나서 차 타고 동생 사는 동네 가보고 오니

기차타러 나가기 위해 서둘러야 했다.

 

엄마는 근사한 생일상에다가 맏사위로부터 두툼한 봉투까지 얻었느니

아주 해사한 얼굴로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생각해 보니 내가 돈을 제일 많이 썼더라.

근데 왜 이렇게 억울한 생각이 들까?

엄마는 내게 "니가 맏이라고 다른 아이들보다 나은 게 뭐 있냐"는 소리를 왜 했을까?

엄마는 내게"나는 이 담에 늙어도 너랑은 절대 안 살아, 너랑은 절대..."란 소리를 왜 했을까?

잘 하고도 억울한 맘이 들어서 속상해.

내 마음에 왜 이런 갈등을 심어 주었을까.

오죽하면 사위한테 딸이 봉투를 반으로 깎자고 했을까.

잘 하려다가도 잘 하고 싶지가 않다.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

 

다만, 나이 들수록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엄마가 막내였다는 그 사실이다.

 

이마음 저마음 모두 절임무에 돌돌 싸말아서 

겨자소스에 콕 찍어서

꼭꼭 씹은 후

한입에 꿀꺽 삼켜야 겠다.

 

오늘 저녁 메뉴는 무쌈말이로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