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의 잣대에 많이 부족했던 내가 이집 식구가 되었기에 난 뭐든지 정말 뭐든지 "녜,알겠습니다"였다.
서울의 모든 친척들 경조사 찾아뵙기, 아주버님의 모든 서울 일처리, 서울에 있는 조카들 1년씩 데리고 있다 분가시키기,..
그렇게 무엇이든 명령만 하면 "녜,알겠습니다"하고 기꺼이 뛰어다녔다. 하지만 이젠 녀석을 집에 들어오게 해 함께 할 수는 없었다. 녀석이 들어오면 유학하며 방학에 제 집 찾아오는 내 아이의 방이 없어져야 했다. 내 아이가 제 집에서 제자리가 없어 끼어살게 하다 돌려 보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제 엄마와 살았던 곳에 왔어도 아버지,새엄마는 외부 식당에서 한끼 밥 사주는 것으로 의무를 끝내고 아이는 할아버지 집으로, 자신들은 둘만의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두사람을 위해 직업도 갖지못한 스물일곱의 남자조카를 책임지는게 싫었다.
할아버지가 준비해 두셨던 녀석의 땅까지 다 내다 팔아먹고 녀석을 방치해 버린 아비가 동생이 제 자식 거두어 주지 않는다며 저리 소리를 질러대는거였다.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능력 잃어버린 제 아빠에게 아버님이 자꾸 그 아이 챙기라는 전화를 하시니 아주버님 제게 전화해서 화풀이를 하는 듯 하니 죄송하지만 마음 아프고 답답하셔도 물어보시면 대답드리는 것을 전하시면 안될것 같다고..
아버님과 제가 의논해 가며 살펴보는것이 더 바람직 할 것 같다고...
잠시 잠깐의 공백이 생기더니.
"에미야, 미안하다".... 말씀하신다.
며느리 자리 내게 주기싫어 어렵게 결혼을 승낙했으나 삼년여가 지나도록 외면하고 절도 받지 않으시려 고개를 꼬고 앉아 산처럼 내겐 막막하게만 하셨던 분이 손주가 생기니 그때야 가족으로 받아주셨고 그로부터 이십여년을 살면서 참으로 많은일들이 생기고 부대끼더니 이젠 우리가족이 아버님께 내려가면 누구보다 부엌에 있는 내게 오셔서 춥지 않느냐, 덥지 않느냐며 보일러를 작동시키고 에어컨을 켜 주시며 밀가루를 펼쳐놓고 전을 부치는 내 쪽으로 선풍기를 돌려주는 바람에 하얗게 밀가루가 날려 내 할일을 더 만들어 주어 에구! 아버님!
하면서 함께 웃을만큼 이젠 늙고 외로워져 버리신 내 아버님이 예순이 되는 큰자식 때문에 목소리 꺼져들며 미안타 대신 사과하셨다.
"에미야, 미안하다"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내게 다른 어떤 위안이 필요하겠는가.
아버님과 전화를 끊고 조카에게 전화를 했다.
필요할때만 전화를 받는 녀석이라 또 빈 벨소리만 돌아온다.
문자를 남겼다.
"'bnbm @ paran.com' 으로 네 메일 주소 보내주라. 작은엄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