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목욕을 하고 미장원엘 다녀왔다. 내 꼴에 다녀와 밨자지만 영감은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이발관에나 갔겠지. 사실 머리가 길지는 않았는데....아무튼 시간을 잘 지키는 양반이고, 상견례 시간은 알고 있으니 크게 걱정은 않았다. 미장원엔 약속을 해두었으니... 그러나 의자에 앉아있는 손님이라면 어쩌랴. 공연한 걱정을 하면서 미장원으로 들어섰다.
"무슨 날인데요?"
"어디 좀 갈 일이 생겼어요."
별스러운 사람이 아니니, 금방 머리 손질은 끝났다. 마담은 까달스러운 손님은 머리 손질도 어렵다며 방금나간 손님을 타박 했다. 그렇지 그렇지. 내 의상실 손님도 그러니까.
시내 한 복판의 딸과 사위 감이 고른 한정 식당은 제법 규모가 컸다.
'그렇겠지 처음 만남인데.'
사돈들도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사위 감이 첫 아들이라더니 많이 젊은 분들이셨다. 보아하니 젊은 사돈 댁이 겻 눈질로 나를 자꾸 뜯어보는 것 같았다. 장모 감이 생각보다 맘에 안드는 게야?
악수를 하고 목례를 했으나, 뒷 일이 계속 이어지지를 않았다. 이럴 땐 남자들이 나서주는 거 아니었어?
내 영감도 떠들 위인은 아니었으나 , 사돈 양반도 우리 영감과 같은 과(?)인가 보다. 당췌 말이 없었다.
눈치를 보다가 내가 주책없는 늙은이 인척 먼저 입을 열었다.
"아침에 일찍 나오시고 먼 길 오시느라 힘드셨겠어요"
그댁도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고 남자 사돈은 반응이 없었다. 며느리감이 맘에 들지 않는 걸까?
"은~지예. 지 남동생이 용산에 살아서, 어제 올라와서 자고 아침에 나왔어예 괜찮아예."
"얘기 좀 하시죠."딥딥해서 영감을 쳐다보니 애꿎은 보리차만 비우고 있었다.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자,
"무슨 얘기를 하나. 더우신가 본데 상의를 벗으시죠. 저 상의 좀 받아 걸어라."
딸아이에게 눈길을 보냈으나, 사위 감이 아버지의 상의를 받아 옷걸이에 걸었다.
"우리 딸아이가 나이가 많아서 걱정이셨을 텐데, 쉽게 승낙을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 딸아이는 설흔 여섯이고 , 사위 감은 스물 아홉이었다.
"즈그들이 좋다는데 우짭니꺼. 맘 맞아서 잘 살믄 되지예."
음식이 줄대고 들어오는 바람에 대화는 멎었고, 먹는 동안에도 말이 없으니 분위기가 멋적었다.
암만해도 또 내가 나서야 할 모양이었다.
"큰일 나셨습니다. 아드님 귀하게 키우셔서, 며느리에게 뺏기게 생기셨으니...."
안사돈이 수건으로 입을 얼른 닦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들듯이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안 됩니더. 우리는 아들이라꼬 쟤 하나라예. " 안사돈은 눈을 크게 뜨고 달라 들 듯이 소리를 질렀다.
내가 뭐랬다고 예비 안사돈댁은 등을 다시 꼿꼿이 세우고 앉았다. 내가 한 마디만 거칠게 쏘아붙이면 일어날 행색이다. 입은 웃고 있었으나, 눈에 얇은 핏줄이 섰다. 아마 눈물도 고였지 싶다. 사위가 일어난다.
"새해나 추석에 차례 모실 때면, 한 번은 저희집을 먼저 가고 그다음 한 번은 처가댁으로 가겠습니다."
예비 사돈 양반이 몹시 좋지 않은 표정으로 아들 얼굴을 내리 훑는다. 마땅치 않다는 표현이다. 영감이,
"그건 말이 안 되네." 주변머리 없는 영감이 입을 뗬으나 뒷말이 없다. 그렇게라도 입을 뗀 게 용타.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우리는 아들이 둘이라서, 사위가 제사에 참석하지 않아도 상 앞이 풍성합니다. 사위는 본가로 가서 제사에 참례하게. 처가집은 본가 차례 지내고 와도 좋고 다음 날 와도 좋고."
"본가에 내려갔다가 쉬고 출근하러 올라와서 와도 되네."
영감이 입을 열면 못된 소리는 안 하지. 예비 사돈들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렇게 해. 본가에 내려가면 손 봐드릴 데도 있으면 도와 드리고,우리 집은 천천히 다녀가도 되네."
와~. 영감이 멋지게 마무리를 한다. 사위도 묵은 짐을 내려놓듯이 몸 놀림도 가볍다.
"저~. 예단을 안 해도 서운하지 않으시겠는지요." 조심스럽게 내가 입을 떼자 안사돈이 손을 젓는다.
"우리도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습니더. 살면서 돈 벌어서 효도하라 했십니더."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다.
돈을 벌면 잊지 말고 예단 값을 하라는 말 같아서 좀 찜찜한 걸.
그래도 나이 많은 며느리 탓하지 않고 받아주니 고맙긴 했다.
11월에 상견례를 했으니 꽃 피고 새 우짖는 따스한 봄에 결혼식을 하자 하니, 한 살이라도 더 적을 때 결혼식을 올리겠다고고집한다. 그해 추운 겨울에 결혼식을 올렸다. 벌써 10년이 넘었다. 오늘이 어제 같이 그들은 날마다 깨를 볶는다. 천상 연분이다. 사위의 제 댁 사랑이 그윽하다. 딸아이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저렇게 좋은 걸 이제야 만났을꼬. 내 딸도 그럴 수 없이 남편을 위한다. 휴~. 이제 막내아들만 남았네~.
막내 딸의 상견례를 맟치고 호텔라운지에서. (어디었더라 생각도 안 나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고개를 든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는 시원해서 좋아 죽겠는데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