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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이 그립다.


BY jin7533 2004-10-26

                                           그 옛날이 그립다.


                 약혼                                  결혼                                 신혼

지금 깊어가는 가을의 끝자락에서 그 옛날 어설프게 살아왔던 신혼을 그리며 아주 옛날로 돌아가 본다.

사연도 많고 많은 우리 노총각 노처녀는 어느날 사랑의 늪에 걸려 혜어나지를 못하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의 사랑은 드디어 열매를 맺어 1965년 가을에 약혼을 하고, 다음해 꽃 피는 사월에
결혼을 했다.

약혼을 하고는 4월까지 기다리기가 지루해서 날마다 달력에 하루하루 지나면 X표시를 해나갔다.

달력 5장이 X표로 채워지는 날 우리는 결혼을 했다.

그때는 빨리 결혼만하면 세상을 다 얻을 것 같은 부푼 꿈으로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막상 결혼을 하고나니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대대장손에 6남매의 맏이로 들어갔는데 나는 직장을 다니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해나가야하니 고달펐다.

6남매에 부모님에 나까지 9식구에 시골에서 더부살이 친척이 몆명 더있어 우리집은 언제나 북적이며
식사 시간에는 식당을 방불케하는 웃지 못할 장면들이 많았다.

그래도 우리 어머님은 잘도 해내셨지만 나는 항상 뒷전에서 어설픈자세로 거들었다.

일에 익숙지 못하고 직장을 다니다보니 적응하기가 쉬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따스한 보살핍으로,동기간의 우애로 견디며 결혼이란게 이런거구나 하고는 견디었다.

그런데 못견디게 어려웠던 일은 잠이 부족한거였다.

다 그만두고 잠을 실컨 자보면 원이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다 그 시절엔 물이 부족해서 수돗물을 하루종일 사용할 수가 없고 밤에 받아 놓았다가 낮에 쓰는 것이다.

그래서 집집마다 큰 항아리가 있었고 밤에는 물을 받아놓아야 했다.

김장을 할 때는 새벽 3시쯤 배추를 씻기 시작하는데 식구가 많으니 배추포기수도 많았고 왜 그렇게 추웠는지, 지금 생각하면 잊혀지지 않는 일중에 하나며,두 번째는 연탄불을 이방 저방 옮기는 일이다.

어머님이 워낙 절약을 하시기에 추운 겨울에도 방바닥이 차지만 않게 몇 시간씩 옮기는데  우리 신혼방은 2층이었고 어찌나 추웠는지 둘이서 안기지 않으면 잘 수가 없어 신혼에는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위에 떠다놓은 주전자 물은 얼어 붙어있고 걸래는 동태가 되어있고 호마이카장은 추위에 약해 금이 쩍쩍가고,입에서는 김이 모락모락나는 그런 신혼을 보냈다.

설상가상으로 대대 장손이다 보니 제사는 왜 그렇게 자주 돌아오는지, 일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어머님께 더러는 꾸중도 들었지만 당연한 건데도 왜 그렇게 설러웠는지 마당 모퉁에서 눈물도 짯다.

그 시절엔 장남은 분가하면 큰일나는 것처럼 생각하던 시절이었고 감히 생각지도 못하고 하루하루 적응을 해나가는데 익숙해 졌다.

내가 부족해도 감싸주시던 시부모님과 따뜻한 애정속에서 알뜰한 절약도 배웠고,모든 약점도 눈감아 인정해주던 동기간들의 우애도 배웠고,표현력은 부족해도 변함없는 애정과 청빈함이 배어있는 남편의 곧은 생활방식도 배워가며 나의 신혼은 영글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자주 돌아오던 제사도 아버님이 좋은 날을 잡아 합동으로 모아지내게 해 놓고 돌아가셨다.

인제는 그렇게도 어려웠던 신혼생활의 제사도 년 3번으로 많이 가벼워졋고,물 걱정도 없고 추위걱정도 없고 그때에 비하면  여유로운 생활을 하다보니 그때  그 신혼생활은 잊을 수 없는 옛날이야기로 남게 되었고, 그 북적이며 아웅다웅 살던 그 옛날이 그리워진다.

그런 신혼을 잘 견디었기에  지금 이 황혼에 옛말하며 등따스하게 지내고 있음을 감사하며,
그 당시는 누구나 격는 일로 고생인줄도 몰랐지만 지금 모든 물질이 풍부하고 편리한 생활을 하다보니 그 시절에 고생스러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입에 쓴 것이 약이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