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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호스 아줌마의 신문읽기 29 - 조선일보 김주옥씨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소감


BY 닭호스 2001-01-01

[소설 당선소감]-김주옥씨, 마흔 넘긴 여인의삶 반추 어려웠다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마지막 강의에 제출할 리포트를 쓰고 있었다. 친구들 모두 취업을 하고, 대학원을 가고 쓸쓸해진 교정이 자꾸 넓어 보이는 겨울이었다. 글을 쓰겠다고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둘 만큼 무모한 12월이었다. 모두가 더 빠른 속도로 내달리는 시절에 언어가 품고 있는 느릿함에 빠져드는 것은, 그렇게 뒤로 걷는 것은 차라리 운명이었을 것이다. 그저 두 번째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몇 번이고 ‘정말요?’하고 되물었던 것은 응모 사실마저 잊고 지낼만큼 욕심내지 말자고 다짐했던 탓이다.

아직 덜 여물은 나이에 마흔을 넘긴 여인의 삶을 반추하기란 어려웠다. 뒤로 갈수록 써나가는 속도가 더뎌졌다. 그저 또래 눈높이가 아닌 다른 글쓰기를 해보잔 심사였으나 써 갈수록 역부족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자꾸 읽을수록 행간의 틈새가 보인다. 심사위원 선생님께서 더 정진할 수 있으리란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주신 것 같다. 작년 이맘때쯤 대학문학상을 탔을 때 이인성 선생님께서 지적하셨던 ‘나만의 카메라’를 갖기 위한 노력이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아마조네스처럼 건강한 여류작가가 되라고 다독이던 우한용 선생님, 내 삶의 지표가 되어 주시는 오생근 선생님, 타협하지 않는 치열한 작가정신을 일깨워 주셨던 이광모 감독님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내가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한 부모님과 언니와 동생에게 사랑한단 말을 하고 싶다. 자신 일처럼 기뻐해주던 서울대학교 대학신문사 선후배 기자들 및 친구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약력

1977년 경남 진주 출생 서울대 국어교육과 졸업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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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부터 시작된 설행사가 서둘러 끝나고 남편의 시험공부를 핑계로 정월 초하루 아침부터 시댁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남편 점심을 해 먹이고 그가 서둘러 책들과 옷가지를 싸들고 나간뒤 잠이 와 연신 울며 보채는 딸아이를 오랜 씨름끝에 재우고나자 한가한 시간이 났다. 졸린 눈을 비비며 신문을 펴 들었다.

앗! 신춘 문예에 관한 기사가 났다.

오늘이 1월 1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아까 어머니께서 예상치 못한 거액을 세뱃돈으로 건네주셨을 때에도 의식치 못하다가 이제서야 펏뜩 들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외적인 큰 상은 아니더라도 교내에서 열리는 감상문 쓰기나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솔찬히 챙겨오던 나를 보며 엄마와 아빠는
"저게 나중에 자라면 뭔가 한몫은 톡톡히 할것.."
이라며 내심 기대를 늦추지 않으셨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가도 한참을 빗나갔다. 나는 남편 병규를 만나 살림을 차린지 딱 일년만에 백일을 눈앞에 둔 딸아이의 엄마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아줌마라 하여도.. 그리고 그보다 더한 애엄마라 하여도 신춘문예나 어디서 하는 작품 공모에의 소식을 접할 때면 나의 두눈은 먹이를 찾는 사흘굶은 독수리의 그것마냥 반짝였다.. 그리고 그런 날은 여러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 떠오르지 않는 시상을 원망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가 일쑤였다.

인간은 내가 그렇게 허무하지 않다는 것.. 나도 나름대로 똑똑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글을 쓰며 그것은 좋은 작품을 양산해내는 훌륭한 추진제 역할을 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집에서 살림이나 하는 여자.
거기에다 한술 더 떠 집에서 살림이나 하기에 딱 맞을만큼의 지방 삼류대학 비인기학과라는 학벌을 지닌 여자...
라는 꼬리표가 진저리나던 시간들의 사이사이에 나는 소설이라고 이름붙인 유치한 글들을 끄적거렸고.. 그런 소설들의 말미에는 항상 내가 신춘 문예나 작품 공모에 당선되었을 때를 대비해 내가 끄적거린 소설보다 백배 만배 유치한 당선소감마저 준비해두었다.

-내가 무언가 큰 인물이 될거라고 믿으며 오랜 인내의 세월을 사셨던 우리 두 부모님께 작은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재밌어? 라는나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나의 유치한 작품들을 밤새워 읽으며 충실히 몰모트 역할을 해준 남편 병규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싶습니다-
라고...

하지만..
불행히도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올해 그 영광의 당선자들의 소감을 읽으며 나도 짧은 당선소감을 새로 준비했다.

-비록 생모찾아온다.. 애 데리고 이민가라.. 소리를 들을만큼 나랑은 안닮은 딸이지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분신 달이와도 이 큰 기쁨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라고...

그리고 앞으로 내가 산 인생의 년수만큼 매년 1월 1일 신춘문예 당선작이 각 신문지상에 발표된 그날 밤에 시작되어 한달을 채 못넘기고 마무리지어지지도 못한채 내 컴퓨터의 은밀한 방에 방치된 소설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것들 중 한편도 마무리지어지지 못하고 작은방 고물 컴퓨터안에서 나와 더불어 생을 마감하게 될지라도 그것은 최소한 내가 무언가에 매진하는 삶을 살았다는 증거이므로 나는 자랑스러워 하려한다.

오랜세월 신춘문예 당선의 꿈을 안고 사셨던.. 그리고 오늘에야 그 기쁨을 자기것으로 가진 당선자와 그보다 더 힘든 세월을 가졌으며 그리하여 더 큰 기쁨을 가질 그 가족들에게 축하를 보내고 싶다..

축하합니다..그리고 기다려주십시오..

딸그닥 딸그닥 열심히 쫓아가는 닭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