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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22) -- 자영업


BY ps 2002-11-15

더 나은 삶을 찾아서 이민을 오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 있는 자와 없는 자.
언어가 비록 생소할지라도 있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 보다 훨씬 수월하게
새사회에 적응을 한다. 오자마자, 새 차도 사고... 큰 집도 사고...
그러나, 새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이 사람들이 똑같이 겪는 어려움이 있다.
남은 여생을 편히 보낼 수 있을만큼 큰 돈을 가져온 극히 소수의 몇을 제외하곤,
모두 생계수단을 찾아야 하는데, 한국에서의 학벌이나 일 경험을
이곳에선 (미국 주류사회)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이민자가 '단순노동' (없는 자) 이나 '자영업' (있는 자)에
종사하게 된다. 자영업도 자신이 사업체의 주인인 것을 빼면 '돈을 조금 더 버는'
단순노동이긴 하지만.

<보편적인 자영업: 음식점, 세탁소, 동네 슈퍼, 주류(술) 전문점>


부모님이 일찍 우리를 데리고 오신 덕택에, 이곳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미국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던 나는, 일반적인 이민가정의 바람직한
삶을 살고있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애 둘을 낳고 평범(?)하게 살던 나의 주위에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면서, 나의 삶에 대해 조금씩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하루 8시간씩 5일만 일하고, 토요일 일요일 쉬며, 취미생활 여가생활을 하는
편안한 생활이였는데, 왠지 평생 그런 안이한 삶을 살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달리말해 돈에 대한 욕심이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말대로, 자영업을 성공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번다는 큰 돈(내 수입의 서너배) 얘기만 귀에 들어왔고,
그들이 일주일에 70시간에서 100시간 까지 중노동을 하고있다는 사실은,
'돈 쓸 시간이 없어서 그만큼 더 돈이 쌓인다'라고 좋게만 들렸다.

순이와 상의를 했더니, 좋다고 했다.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좋은 사업체를 마련하여, 우선 순이가 맡아서 하고,
나는 회사가 끝난 뒤에 와서 돕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서면,
나는 엔지니어 그만 두고, 사업에 매달리고...
차도 좋은 차로 바꾸고... 큰 집도 마련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분좋은 가능성들.....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마침 속성 사진관(One Hour Photo)을 꽤 잘 꾸려가고 있던 동생의 조언대로
사진관을 하기로 하고, 6개월 간의 준비기간(장소 물색, 자금 마련, 기술 습득, 공사)을 거쳐
살고 있던 동네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가게를 하나 열 수 있었다.

순이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어린 아이 둘과 집에만 있다가, 미국 고객들을 만나며 영어를 배우는 재미도 있었고,
조금씩이나마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매일매일 일 나가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그러나, 새로운 사업체의 95 퍼센트 이상이 5년 안에 문을 닫는다는 통계처럼
우리의 가게도 결코 쉽게 풀려가지는 않았다.

어느정도 자리 잡는데 1년에서 1년 반 정도 걸린다고 알고있어서,
광고도 자주 내고, 오는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하며 열심히 했으나,
처음 5개월 동안 꾸준히 늘던 손님들이 그 이후로는 별로 느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쉽고 깨끗한 사업체인데다가 이윤 폭도 크다는 소문이 나면서,
주위에 경쟁상대도 몇군데 생기고나니, 1년 반 정도로 생각하고 준비했던 잉여자금이
1년이 채 못가서 바닥이 났다.

매달 빨간 줄이 그어진 가게장부를 보며 까맣게 타들어가던 두 마음...
그리고, 우리 둘의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몇주째 계속되는 나의 극심한 소화불량 증세가 혹시 암인가 싶어 종합검사를
받아보니, 스트레스성 위염이니 스트레스를 줄이라는 결과가 나왔고,
55킬로 정도 나가던 순이의 몸무게도 45킬로 이하로 떨어져 주윗사람들이
많이 걱정을 했다.

순이와 둘이서 오랫동안 고민을 했다.
그동안 들어간 돈... 때문에 잃게 될 우리의 집...
그리고 일년 이상 직장과 가게에 매달려 주말도 잊은 채, 매주 80시간 이상씩
공들인 노력... 성공적으로 사업체를 일군 뒤 이루려했던 많은 꿈들...
모든 것이 허망하고 아까웠지만, '빚 쟁이'로 몰릴 때까지 기다려봤자
'시간 낭비', '돈 낭비'라는 결론이 났다.

가게문을 연 지 일년 반만에
5년 계약을 했던 '가게 터'의 주인과 계약파기를 하면서
어느 정도의 보상금을 지불하고...
집을 팔아 은행빚을 갚고.....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조그만 월세 아파트로 이사를 가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순이를 보며 가슴이 답답해져 왔으나, 한마디 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