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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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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일지(175) : 지금 창밖에는....


BY 평화 2002-06-25

강제차량2부제와 8시 출근이 실시되는 오늘.
창밖에서는 월드컵 준결승 12시간 전부터 와서 보도에 줄지어 앉아 ‘대-한민국’을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장마철이라 비로 인해 수중전이 될 것이라 예상했던 기상대의 예보는 빗나갔다.
공기는 어제 내린 비로 인해 깨끗하고 하늘은 뭉게구름으로 상큼하다.
늦게 잠든 탓인지 꿈속에서 밤새 일하다, 응원하다 일어났더니 영 머리가 맑지 못하다.

어느 인권단체에서 이번 우리나라의 월드컵 거리 응원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였다.
‘월드컵 열기에 나라가 온통 미쳐 돌아가고 있다’
‘붉은 악마 현상에는 국가주의와 맹목적 애국심이 있을 뿐이다’
‘붉은 악마 현상은 파시즘을 가능케 하는 병적인 현상이다’
‘붉은 악마 현상은 결코 자발적인 것이 아니다’
‘거대 매체가 국민에게 부추기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현상이 가능 하겠는가’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 속에 국가주의의 유령과 싸우면서 이 사회의 인권을 실현해 나가야 할 우리는 월드컵과 붉은 악마가 이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10년 이상 정체시켰다고 주장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더 이상 부추기지 말라.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필승이 아닌 인권이다’

이 단체의 논평에 대한 반응은 내용만큼이나 극단적이다.
이 논평을 반긴다는 어느 교사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한국의 경기를 일부러 보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했다가 ‘매국노’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획일화에 대해 탄식하였다.
다른 독자는 애국심이 아니라 유행이고 축제일뿐이라고 하였다.
아폴론적 질서만 말해지던 우리 사회에 디오니소스적인 영감이 넘친 풍경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출근하며 아예 ‘Be the Reds' 빨간 티셔츠를 입고 나온 나 같은 사람은 누가 무어라 해도 이 광경들이 좋다.
철학적이고 사회적이고 비판적인 논조를 다 떠나 그저 흥겨워하면 어떠한가.

오랜 식민지 통치와 비극적인 6․25전쟁, 좀 살만 하니 밀어닥쳤던 IMF 경제난,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하지 못하고 지냈던 우울한 시절들, 그리고 전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분단국가...

그동안 사람들이 거리거리로 뛰어나왔던 것은 잘못된 것을 고쳐보자고 더 이상 이렇게는 안살겠다고 개인적인 희생을 각오하며 뛰어나왔었고 그리고 많은 희생들이 따랐었다.

그러나 단지 좋아서 평소 잊고 지냈던 ‘대-한민국’과 ‘아리랑’과 ‘오 필승 꼬레아’를 외치기 위해 거리거리마다 넘쳐나는 이 축제가 얼마나 좋은지.

오늘이 반세기 전에 있었던 그 6․25이다.
아무 사심 없이 ‘대-한미국’과 ‘아리랑’과 ‘오 필승 꼬레아’를 마음 놓고 거리거리에서 외치게 된 오늘의 모습이 오래 고단하게 살아온 이 민족에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하는 내가 지나친 것인가?

Pray continually.
(쉬지 말고 기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