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일한 친구 셋. 나까지 포함해 고등학교 동창인 우리 넷은 학창시절엔 서로 비슷한 성적과
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오십이 넘은 지금 시점엔 서로 전혀 다른 색으로 살고 있다.
네 가지 삶, 네 가지 색의 인생들을 펼쳐보려고 한다.
유경인 친구들 중 키가 제일 컸고, 하얀 피부를 갖고 있는 피부미인이다.
조용하고 얌전해서 있는 듯 없는 듯 학교 생활을 하던 유경이었는데
남자들 앞에선 백팔십도 변하는 여자임을 알았을 때 우리 셋은 깜짝 놀랬다.
두꺼운 안경을 끼고 광대뼈가 나오고 쌍꺼풀 없는 작은 눈이라서 피부는 고우나
얼굴은 예쁜 편이 아니었다.
근데 유경이에게 반하는 남자들이 꽤 많았다.
남자들이 보는 눈이랑 여자들이 보는 눈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우리가 보는 유경인 여자를 대하는 것과 남자들을 대하는 것이
완전 다른 색다른 끼가 있는 여자라는 것을 남자들이 모른다는 것에 놀라곤 했다.
수많은 남자들 중에 쟁취자인 한남자가 유경이 남편이 되었고,
두 아이를 낳고 살았지만 이혼을 하고 말았다.
어려운 형편으로 아이 둘을 키우기 위해 유경인 카페를 나가게 되었는데
낮에 커피를 파는 그런 카페 말고, 밤에만 영업을 하는 남자들에게 술을 파는 카페라서
친구들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겠지 하면서도
한편으론 성격에 맞으니까 그 많은 직업 중에 그런 직업을 택했구나 했다.
다행이 카페에서 좋은 남자를 만나 재혼을 하고 잘살고 있다.
가끔은 내가 부럽다고 너처럼 혼자 살고 싶다고 하면 난 단호하게 대답을 한다.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줄아냐? 네 얘들 키워주고, 네가 돈 안 벌어도 되잖아. 팔자려니 하고 살아.”
숙희는 본 남편이랑 지금까지 별탈 없이 살고 있는 유일한 친구다.
숙희말로는 벌써 이혼을 했어야 했는데 참고 살았다고
자기 스스로 우리와 다른 완전체라 자부하고 있다.
친구 넷 중에 이혼을 안 한 친구가 숙희뿐이라 자랑해도 될만하다, 인정.
숙희는 학창시절에 유행하는 가요를 유행시키던 친구였다.
남자친구도 제일 먼저 사귀고, 남자친구와 있었던 일들을 연속극 얘기해주듯
자랑과 솔직함과 대담성을 갖고 있는 모든 면에서 선두주자에 섰던 친구였다.
옷도 맞춰서 입고 친구들에게 돈도 잘 빌리고,
잘 갚지도 않아서 반 친구들이 '날라리' 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아이들 어릴 적부터 남편과 함께 맞벌이를 했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편이라서
지금도 숙희는 힘든 일을 하고 있다.
70년대 그 시절 여학생 같지 않게 놀기 좋아했던 숙희가 교회 권사가 되어 마음 씀씀이도 커지고
만남부터 음식점, 잠자리까지 제공해주는 푸근한 친구다.
일을 해도 해도 경제적으로 힘들어할 때면
“일 할 수 있는 건강을 주셨잖니. 다 팔자려니 생각해야지 뭐.”
미진이는 키도 크고 얼굴도 서구적으로 생긴 미인이었다.
명랑하고 활동적인걸 좋아했던 친구였는데
아버지가 미국에서 자리를 잡아서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었다.
그 시절엔 미국에 대한 동경이 대단해서 굉장히 부러웠지만
미국에서 결혼에 실패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9년째이다.
첫 남편 사이에 자식도 없고 사업에 실패하고 남편에게도 실망하던 차에
한국으로 들어오자마자 경상도 산골에서 사는 남자랑 재혼을 했다.
송이도 따고 고사리도 꺾고, 돌작밭에서 복분자도 키우고 호두도 따고
그렇게 9년동안 산골생활을 하다 보니 주머니에 갖고 있는 건 돈이 아니고 골병만 두둑해졌다.
무릎연골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하고, 농사일이 힘들어 대상포진이 오고,
손에 관절이 생겨 손가락이 울퉁불퉁 할머니 손이 되었다.
산골에서 벗어나 다시 친정식구가 살고 있는 미국비행기를 타고 싶어 한다.
여기서 살기엔 너무 고생스럽고, 재혼한 남자는 여자를 위할줄 모르는 남자고,
미국으로 돌아가기엔 또 다른 도망자가 될 것 같아서… 인생에 귀로에 서 있다..
“자식도 낳지 않았고, 미국생활도 한국생활도 다 팔자지만, 네 행복이 먼저니까 너만 생각 해.”
친구 넷 중에 나도 이혼녀로 살고 있다.
두 친구는 재혼을 했지만 난 재혼한적도 없고 앞으로도 재혼할 생각이 없다.
남자 복 없는 년은 이리 뒹굴어도 저리 뒹굴어도 그 놈이 그 놈인 것 같다.
주변에선 위를 올려다보지 말고 아래를 내려다 봐, 너보다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한다.
그걸 위로라고 뚫린 입으로 말하냐, 나보다 못한 사람이 어디 있냐고? 반발하곤 했는데.
친구들 삶을 들여다보면 누구 하고도 바꾸고 싶지 않다.
다 팔자려니 하고 스스로 위로하면 내 삶도 그리 힘들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