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친정엄마의 첫 기일이었다.
오전에는 할머니들을 모시고 부곡 목욕봉사를 마치고
서둘러 친정에 가면 어둡기 전에 엄마가 계시는 선산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가 잠든 선산 큰 소나무 밑 엄마의 묘비가 서 있는 둘레에 심을
남천묘목도 챙기고 호미와 꽃삽도 챙겼다.
겨울비가 이틀이나 내려 언땅이 녹아서 내린 나의 결정이었다.
남천은 생명력도 강하고 다른 묘목에 비해 활착률도 좋은 나무다.
사철 푸른 잎을 유지하고 가을에는 아주 고운 단풍이 들고
겨울에는 어여쁜 빨간 열매도 달고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나무다.
엄마가 꽃을 참 좋아하셨기에 철마다 가지 못함을 남천을 심어 대신하려고 했다.
엄마를 모셨던 오빠네 드릴 갖가지 선물까지 준비해서 막 집을 나서려는데 손님이 찾아왔다.
선공후사.
공적인 업무라 손님을 맞아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꽤 흐르고 말았다.
비 온 뒤라 안개도 많은 날씨에 애시당초 국도를 선택한게 오산이었다.
구불구불 산구비마다 자욱한 안개가 그림은 좋은데 운전길은 위험천만 했다.
어둡기 전에 엄마를 찾아 가려던 계획은 친정에 반도 못가서 포기해야만 했다.
남천을 내 손으로 꼭 심어 놓고 오려던 계획 또한 수포로 돌아갔다.
막내오빠한테 남천을 넘겨 주고 아쉽게 엄마의 첫 기일에 모인 손님들을 맞았다.
엄마의 5남매와 그 짝들이 다 모였고 엄마의 손자들이 다 모였다.
큰댁 오빠 내외도 늦은 시간에 오셨고 우리가 되돌아 와야 했기에 제사를 일찍 모시기로 했다.
큰댁 오빠와 딸인 우리 부부만 교회를 다녔기에 오빠들이 하는 방식을 따르기로 했다.
교회에 나가는 우리 방식도 존중해 주셨다.
막내올케가 정성껏 준비한 갖가지 제사 음식이 가지런히 차려지고 오빠들은 전통방식을 이어갔다.
엄마를 보내고 첫 제사라 정성껏 준비한 정갈한 음식이 차라리 서러웠다.
엄마 살아계실 때 드셨더라면 아주 맛있었을 생선이며 나물들 그리고 엄마가 특히 좋아했던 여러가지 전들...
제사상이 비좁아라 올라 오는 음식들이 흐려졌다.
오빠들의 순서들이 끝나고 철상이 이루어지기 전에 엄마 영전 앞에 내가 섰다.
편지를 읽기 전에 목부터 메어왔다.
\"엄마~~...\"
그 이름을 부르고나니 갑자기 앞이 캄캄하다.
엄마 앞으로 써 온 편지를 읽기도 전에 꺽꺽 꺼이꺼이 북받히는 설움.....
춥지 않냐고~
작년 엄마를 보내 드리던 그 때도 이렇게 추운 겨울이었는데 그 언 땅이 안 춥냐고...
절을 다 끝내고 둘러 서 있던 오빠들과 조카들이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너무 보고싶어 편지라도 읽어드려야 내 그리움이 좀은 풀어질 것 같은데
편지글이 자꾸만 일렁거렸다.
장례식 당일처럼 몸이 떨렸다.
엄마한테 잘 해 드리지 못했던 안타까움이 더 눈물나게 했다.
사진 속의 엄마는 환하게 웃고 있는데 ......
마지막 인사는 \"엄마...너무 보고싶어.\"
그 말을 해 놓고 난 그만 통곡을 하고 말았다.
그럴려고는 안했는데 나도 모르고 터져 나온 통곡이었다.
한번 터진 통곡은 쉬 그치지 못했고 그 말까지 겨우겨우 읽어 낸 나를 남편이 붙잡는다.
그만하고 내려 오라고....
모두가 조용하다.
오빠들도 올케들도.
조용조용 철상이 이루어졌다.
자정이 다 된 늦은 밤 되돌아 내려 오는 차 안에서도 남편도 나도 침묵했다.
누가 옆에서 한마디만 거들어도 내 통곡은 다시 시작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 못해 드렸던게 너무 많이 생각났고 다시 되돌리 수는 없는 시간이다.
내 머릿속에 기억되는 엄마는 늘 가정을 책임져야했던 억척스런 작은 엄마였다.
작은 엄마가 큰 일을 하면서 언제나 힘든 일상에서도 낙천적이었다.
엄마 살아생전에 두 모녀간 한번이라도 오붓하게 같이 여행을 떠나보지 못했던게 두고두고 많이 서운하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엄마생각도 희미해지겠지만 내 가슴 속의 엄마는 오늘도 선명하다.
엄마는 내 머릿 속에, 내 가슴 속에, 내 세포 하나하나에 살아서 선명하다.
작은 체구에 동그란 얼굴 그리고 지칠줄 모르던 생명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