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302

내가 보낸 동창회 초청장


BY 그림이 2012-12-18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그리운 친구들께

 

한해의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한해 한해가 이렇게도 빠르게 갑니까?

창가에 떨어지는 낙엽은 인생의 황혼기를 맞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네요. 언제 또 누가 저렇게 소리 없이 떨어져 썩어 거름이 될까?

세월이 갈수록 우리는 안타까운 소식에 가슴을 쓰라리게 합니다.

회원 여러분들 다 건강하시죠? 이 인사가 첫 번째 인사가 되네요.

저가 알기로 한 해 동안 두 친구를 또 보냈네요.

 

어릴 때 친구 신태섭군 과 배화자양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불과 열 달 전 우리 모임에 와서 칠순잔치를 흐뭇하게 받으면서 퇴원하신 남편이

꼭 모임에 가라고 하셔서 왔더니 역시 잘 왔다고 행복해 하던 배화자, 그 모습이

우리에게 보여준 마지막일 줄이야 앞으로 종종 겪게 될 그런 나이에 와 있습니다.

 

마지막 모습을 고향 친구에게 까지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신태섭군, 문병하러 가려는

친구들을 애원하듯 말리면서 홀홀히 먼 곳을 가 버렸네요. 이렇듯 친구들은 해가 갈수록

우리 곁을 떠나갑니다. 우리의 나이가 그 만큼 많이 먹었다는 증거지요.

 

시간이 갈수록 사라져가는 친구들, 우리는 이렇게 모일 날들이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회원 여러분들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저 살아있다는 그 사실만이라도 얼굴 한번 마주

보며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그 시간에 동참해 주시면 합니다.

 

지금 우리는 출세한 사람도 자식이 잘된 사람도 부자도 아무것도 부러울 나이가 아닙니다.

우리들의 옛날을 기억하면서 그 때의 힘들고 가난했던 그 아픔이 추억이 되고 허연 머리카락

과 움푹 팬 주름, 쭈그러진 얼굴, 그 모습이 그리워 찾아오는 동창회입니다. 나이를 잊은 듯 남녀

구분 없이 서로의 이름을 불러대는 만남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엄마 품을 애타게 그리워하던 내 새끼도 그 자식의 새끼마저도 공부한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주지

 않는 외로운 나이가 우리 앞에 와있습니다. 가끔 손녀에게 전화를 걸어 치킨 사줄게 뭐 사줄게

 하면서 오라고하는 남편을 곁에서 바라보면서 그렇게 살려고 애썼던 젊은 시절,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에게 무심하다고 불평했던 그 남편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손녀까지 불러대며 사람을

그리워한답니다.

 

내가 누구를 찾아가야 한다는 칠십, 불러주는 동창회가 있다는 건 분명 행복한 일입니다.

요번 모임에서는 일 학년에서 삼 학년 때까지 각자가 겪었던 일을 한 가지씩 풀어

놓읍시다. 사학년에서 육학년까지는 다음에 풀어놓고요.

 

팔십까지 모인다고 해도 몇 번 만나겠습니까? 그때까지 과연 몇이나 참석해 줄까요?

그래도 아직은 그런대로 살만한 나이입니다. 부르면 갈 수 있는 기력, 누구에게도

원망보다는 용서를 남에게나 가족에게 너그러움을 안겨주는 인자한 할아버지 할머니

십니다. 손주들이 하는 짓을 보면서 내 할아버지의 인자하시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내가 만들 수 있는 행복함, 그중에서도 어릴 때 친구를 찾아가는 기쁨도 잠깐의 행복을 안겨줍니다.

좋은 음식을 먹기보다도 출세한 친구를 만나기보다 헤어진 고무신을 신던 친구

꽁보리밥 된장이 거의 모두의 도시락이었던 점심식사가 너무 맛있어 하던 친구. 삼베

무명옷을 기워 입고도 불평 않던 우리들의 어릴 때 살아온 그 모습의 친구가 그리워 찾아

오는 곳입니다. 6,25 전쟁중에 입학해 서울말을 하던 혜경이 창호 전쟁 후 살던곳을 찾아

간 친구들도 아련히 떠오르네요. 얼굴 뽀얀 친구를 부러워하며 서울 말을 따라하던

못 먹고 헐벗었던 우리의 지난시절, 또 젊었을땐 이 나라의 초석이었던 산업역군들

광부로 베트남 전쟁터로 살기위해 모진 고생을 했던 우리세대 지금 설모없는 70을 맞는

뒷방 늙은이, 무심코 핸드폰으로 눈이 자주 갑니다. 내 안부라도 묻는 전화를

기다리면서 이렇듯 세월은 쓸모없이 손녀 봐줄 나이도 얼른 지나갑니다.

 

  나는 회장 시키는 대로 이 글을 적어 띄웁니다. 화장 곱게 하고 아파도 억지로라도

꼭 나와 주십사라는 부탁입니다.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올해의 모임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아 있을 때 만나 봅시다. 사진은 말이 없으니까요. 움직이고 말하는 물체가 중요합니다. 죽은 정은

나날이 떨어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마지막 남는 사람에게는 동창회비 다 준다는 규칙을

정했다고 합니다. 꼭 건강 챙겨서 그 회비 갖도록 노력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