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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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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유일한 기쁨이를 위해.


BY 꽃씨 2012-01-28

오늘도 이렇게 작은 등을 켜 놓고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으니

눈물이 주르륵 흐를 것 같아 눈을 질끈 감는다.

등 뒤에서 기쁨이는 매일 밤 이렇게 엄마가 무너진 마음을

다잡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천사처럼 새근새근 자고 있다.

열여섯 살 여름, 나는 무작정 고아원을 뛰쳐나왔다.

원장 선생님의 매질이 더는 싫었고,

자원 봉사자만 오면 우리를 사랑하는 척하다가 돌아서는 그 가식에 치가 떨렸다.

또한 예쁜 밥그릇에 오롯이 담긴 따뜻한 저녁밥이 아니라

군대처럼 차가운 철제 식판에 담아 먹는 밥이 지긋지긋했다.

그런 나에게 두 살 많은 언니는 부산으로 도망가

아는 분의 미용실에서 일하면 숙식을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꿈꾸던 부산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배신부터 맛보아야 했다.

언니는 여관에 날 버려 두고는 내 가방에 든 6만 원을 가지고 사라져 버렸다.

나는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그 뒤 찜질방에서 먹고 자며 매점에서 일하던 중 엄마 같은 주방 아주머니를 알게 되었다.

화상을 입어 오른손이 주먹을 쥔 것처럼 일그러졌는데도

그런 손으로 빙수며 라면을 능숙하게 만드는 분이셨다.

집이 가난해 초등학교조차 나오지 못한 게 한이라는 아주머니는

나에게 더 늦기 전에 다시 공부하라고 하셨다.

아주머니 조언대로 나는 매점 일을 그만두고 검정고시학원을 다녔다.

낮에는 편의점, 주말에는 부산역 앞 카페에서 일했다.

가끔 교복을 입은 또래를 보면 치기 어린 질투와 자격지심에

속이 상했지만 힘들다고 고아원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겨우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생활하던 어느 날이었다.

카페에서 알게 된 언니와 함께 살다 그만 전 재산이 든 통장과 도장을 도둑맞았다.

내게 왜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끝없는 원망에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거기서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검정고시학원도 접고 밤 12시까지 일하던 중 카페 사장에게 그만 성폭행을 당하고 만 것이다.

죽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 그때 내게는 하소연할 가족도, 친구도 없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일어나기에 더는 버틸 만한 힘이 없었다.

그런데 세상은 다시 나에게 일어나라고 손을 내밀었다.

인터넷에서 가출 청소년을 보호해 주는 수녀님들의 모임을 알게 된 것이다.

수녀님들은 내 지난 일들을 묵묵히 들으시고, 진심으로 위로해 주셨다.

그렇게 아픈 가슴이 천천히 치유되었다.

다른 곳에서 새로 시작하라는 수녀님의 제안으로, 나는 수녀님의 지인이 농원을 운영하는 상주로 갔다.

나는 농원에서 일하지 않고 월급을 많이 주는 육계공장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종일 역한 냄새를 맡으며 징그러운 닭 내장을 칼로 도려내는 일이 힘들었지만,

사람에게 속고 울었던 지난날보다는 행복했다.

게다가 그곳에서 K라는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 금세 단짝이 되었다.

K는 중3 때 임신해서 집을 나왔다고 했다.

횟집 주방에서 일하며 함께 살자던 남자친구는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연락을 끊었다며 내게 아픈 상처를 털어놓았다.

그 후로 나는 K 집에서 2년 넘도록 함께 살았다.

하지만 마냥 소녀 같았던 K는 견디기 힘든 삶의 무게가 더 있었는지

미안하다는 편지를 남기고 삶을 마감했다.

길 건너편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한 것이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심장이 턱, 내려앉는다.

 

유일한 친구를 잃은 아픔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내게는 K의 세 살배기 기쁨이와 작은 방,

그리고 함께 옷가게를 열자며 마련한 통장 두 개가 남아 있었다.

그때 사람들은 아기를 다른 곳에 맡기라고 했지만

고아원에서 외롭게 자란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기쁨이를 놀이방에서 데려와야 했기에 공장을 그만두고

오후 5시까지만 일하는 의류배송업체에 다니고 있다.

빠듯한 월급으로 놀이방비를 내면, 맘에 드는 옷 하나 살 수 없어 울기도 했지만

어느덧 기쁨이의 엄마가 된 지 4년이 흘렀다.

옷 먼지 속에서 일하느라 기관지 등 건강은 나빠졌어도

내게 유일한 기쁨인 \'기쁨이\' 덕분에 나는 오늘을 이겨 낼 수 있다.

 

기쁨이를 재우고 다시 고등학교 검정고시 책을 볼 때면 세상을 향한 미움이 씻겨지는 듯하다.

내 삶의 유일한 기쁨이를 위해.

올해는 꼭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서 기쁨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