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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화단


BY 그대향기 2011-12-06

 

 

 

 

첫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옥상의 화분들을 하나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몇년전부터 나름 꽤를 내기 시작한건

노지월동이 가능한 꽃들을 키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로 야생화쪽으로.

 

수은주가 바닥을 치고 땅 속에 묻힌 수도관이 혹한에 얼어터져도

지붕이 잠길만큼 몇 십년만에 처음왔다는 폭설이 녹아

추녀끝에 마~알갛게 시리고 투명한 고드름 커텐을 만들어도

방한복 한벌없이 벌거숭이 맨몸으로 한뎃잠을 자고서 살아남아 내년 봄에

파릇한 새순을 틔워줄 야생화들로만 키우기로 했다.

 

안으로 들여놔야 하는 꽃들은 솔직히 너무 버거웠다.

플라스틱 화분에 꽃을 키우는건

사람이 옷을 입을 때 순면이나 다른 자연섬유를 안 입고

안팎으로 화학섬유만 입는 것 같아서

시장에서 사올 때는 플라스틱 화분이지만

집에와서는 거의 대부분 화분갈이를 해 준다.

옹기나 다른 토분으로나 아니면 돌에 이식을 하거나.

 

플라스틱 화분에 심기웠을 때 보다는

토분이나 옹기에 옮겨 심으면 꽃들이 훨씬 싱싱하다.

숨을 쉬는 그릇들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땅에 심으면 가장 좋지만 아직 내 마당이 없는 관계로.

나중에는 마당이 너른 집에서 욕심껏 꽃들을 심으리라 다짐을 한다.

 

그러다보니 늦가을에 접어들면서부터 나는 슬슬 겁이 난다.

저 무겁고 많은 화분들을 어디다 다 들여놓냐??

월동이 안되는 열대성식물들은 거실이며 베란다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빼곡하게 포개다시피해서 들여 놓는다.

집에 들이다 들이다 장소가 부족하면 수련회로 사용하는 건물동의 복도에까지

내 화분들이 진출을 하게 된다.

열매가 달리는 식물들은 아이들이 죄...따 버리고

속 상했던 적이 여러번 있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그 열매 몇개 보려고 애지중지 영양제 줘 가며 키워 놓은 걸

아이들은 호기심에 뚝....따 버린다.

먹지도 못 할 걸...

덩치가 너무 큰 꽃나무들은 베란다에도 거실에도 못 둔다.

밀감이며 한라봉도 어렵게 어렵게 제주도에서 비행기로 공수해서 키웠는데

아이들은 주먹만한 한라봉이 노랗게 주렁주렁 달려 있으니까

재미로 호기심으로 가지까지 꺽어버렸다.

 

그 때 그 애석한 마음은 울고 싶을만큼 컸었다.

누군지 알아야 혼내든지 변상(???)해 달라고 하지.....

그 장소에 둔게 순전히 내 잘못이다 싶어서 그 다음부터는 아예 갖다 두는 걸 포기했다.

그 대신 노지월동이 가능한 야생화쪽으로만 가기로 했다.

올해는 남향의 베란다에 몇번만 나르고나니 나를게 없었다.

주로 수생식물종류와 관엽식물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마른가지며 잎이 시들은 화분들을 정리하고 골라서

볕이 잘 드는 남향베란다에 두고 혼자서 허리를 툭툭 치며 웃었다.

바쁜 남편한테 아쉬운 소리로 애교를 안 떨어도 되고

겨우내 간수하느라 노심초사 안해도 좋다.

다육이선반도 중고시장에서 스테인레스재질로 하나 구입했다.

흠집 하나 없고 거의 새것 같은데 아주 근사하다.

 

자잘한 토분에 담긴 다육이들을 따뜻한 창가에 두니 이쁜 꽃도 피워준다.

햇살이 좋으니 다육이 잎이 알록달록 고운 단풍도 들고..

꽃이 드문 겨울에 다육이들이 꽃보다 더 곱다.

오늘도 상록초들을 몇개 사서 엉성한 분경을 정리하고

마른 잎들을 골라내고 애란을 포기나눔으로 이식했고

수련의 죽은 잎들을 가위로 잘라주는 작업을 했다.

 

따스한 오후시간에 서너시간을 그리하고나니 옥상도 베란다도 훤하다.

내년 봄에 새롭게 올라 올 아이들을 기다리며

영양제라도 좀 더 얹어주어야겠다.

꽃들은 손이 가면 가는만큼 이쁘게 인사하는 정직한 애들이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배신을 모르는 충직한 강아지처럼

더 큰 위로와 즐거움을 주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