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들러서 도시락 가방을 대충 정리하고 아들이 기다리는
**경찰서로 가기 위해 택시에 올라탔다. 하늘이 대신 울어주는 것처럼
비가 잦아드는 듯 다시 퍼붓기를 계속했다.
택시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경감으로 경찰 복무 중인 남동생 번호가 찍혀 있었다.
아들이 결국 연락을 한 모양이네...짐작하며 전화를 받았다.
”누나. 밥 먹었어?“
”응. 너는 먹었어?“
”...먹었지. 별일 없지?“
”응, 별일 없어.“
동생은 나의 눈치를 살피는 듯했고 나는 동생이 어디까지 알고 전화를
한 건지 염탐하듯 서로가 선뜻 용건을 꺼내지 못했다.
”누나... 아빈이 연락 왔어?“
”응. 왔어.“
”뭐래?“
”경찰서라고 와달래.“
”뭐?! 여자친구 상황 얘기해?“
”응. 지금 택시 타고 경찰서 가는 중이야.“
”참나... 나한테도 전화했는데 방법이 없어. 혼인신고 안 했어도 함께 살았으면
사실혼 관계지. 제일 먼저 의심받을 수밖에 없어. 한동안 참고인 조사 받을 텐데,
사실대로 신중하게만 말하라고 조언했어. 내가 관여할 수는 있는 부분이 아니야.“
”알았어.“
”누나한테 와 달라고 했다니...어이가 없네. 친가 쪽에 말 안 하고 결국...찾은게
엄마라니...누나가 안 갔으면 하는데 꼭 가야 한다며 여자애 가족들이 뭐라고 해도
맞대응하지 말고 미안하다면서 저 자세로 듣기만 해. 같이 죄인 취급 받겠지만
어쩌겠어...괜찮겠어?“
”응.“
조카 일이니까 마음은 쓰였겠지만 말하는 내내 괘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듯했다. ‘우리 짐작이 맞았지?’ 입 밖으로 꺼낸 적 없는 남동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들에 관련된 부분 앞에서 언젠가부터 나는 발가벗겨진 듯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숨어버리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아들과 인연을 끊었던 이후
영혼 없는 로봇이나 빈 껍데기처럼 2~3개월을 보내고 있을 쯤.
횟수는 잦아 들었지만 여전히 문득문득 아들과의 그날이 떠올랐다.
혼자 있을 땐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유투브나 tv에 정신을 쏟았다.
그쯤에 당시에는 경위였던 큰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아빈이 전화번호 바뀌었어?“
”...왜?“
”가족사진 찍기로 했잖아. 모두 모일 수 있는 시간을 잡아야 하니까
언제쯤 시간 되는지 물어보려고 전화했는데 없는 번호래. 아빈이 연락처
알려줘.“
동생을 통해서 아들의 연락처가 바뀌었다는 것을 듣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알량한 자존심이 허울뿐이라도 엄마와 자식들의 관계가
둘도 없는 돈독한 사이로 보여지길 바랬다. ‘그 씨, 그 종자’ 키워봐야 공이
없다는 친정의 만류에도 고집스레 이끌어 왔던 나의 분신들이었다.
동생이 보챘지만 뭐라고 말을 해야만 내 얼굴에 침이 덜 튈까.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
”여보세요, 누나? 나 바빠. 전화번호 빨리 알려줘.“
동생이 공무 중에 짬을 내서 전화한 듯 다급하게 보챘지만
입이 좀 채 떨어지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고 전화했던 엄마에게 그동안,
‘밥은?’으로 시작됐던 말이 ‘아빈이는 직장 잘 다녀?’‘아영이는 학교
잘 다니지?’‘별일 없지?’로 마무리 짓던 엄마의 점검 속에서
‘먹었지.’‘잘 다녀.’‘별일 없어.’ 모범적인 대꾸로 숨기려 했지만 똑같은 나의
답변에도 엄마는 딸의 한길 마음을 꿰뚫는 듯 불편한 내 감정을 간파하곤
했다.
”아냐! 뭔 일 있네, 있어. 귀신을 속이지, 엄마를 속여? 뭔 일이야.“
기가 막히게 알아챘던 엄마에게
”피곤해서 그래...요즘 체력이 떨어지나 봐...“
얼버무렸었다. 할 수만 있다면 끝내 감추고 싶은 일이었다.
최대한 늦춰서 하고 싶은 고백이었다.
”아냐. 너 뭔 일 있어...말 하고 싶을 때 말해...“
한발 물러나서 기다리셨지만 그런 배려가, 잦은 연락이, 고통스러웠다.
동생의 막다른 질문 앞에서 더는 감출 수가 없었다.
”누나, 바쁘면 아빈이 연락처 문자로 남겨.“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지 동생이 조급하게 말했다.
”연락처 몰라. 내가 인연 끊자고 했어.“
”뭐라고?!... 우선은 알았어. 이따 전화할게.“
간결하고 급한 답변을 남기고 동생이 전화를 끊었지만 당황스러움을
감추지는 못했다. 그런 동생에게서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연락이 왔다.
”인연을 끊었다니 무슨 말이야.“
나와 똑 닮은 성격의 동생이 거두절미하고 물었다. 목소리는 내 눈치를
살피는 듯 조심스러웠다.
”내가 제게 상처를 줬대. 자살하려던 나로 인해서 상처 받은 건 맞지...자신은 아빠에 대한 나쁜 기억이 없대...“
침착하게 말하려 노력했으나 목소리가 주책없이 울먹였다.
”그 새끼 정말 미친놈이네. 지네 엄마가 혼자서 저희 때문에 고생한 걸
몰라서? 아, 진짜...앞에 있으면 한 대 쥐어팼으면 좋겠네!“
”그 새끼...내 새끼야. 나를 욕하는 거야... 상황이 어찌 됐건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을
고스란히 보였으니까... 그때는 내 감정에 치우쳐서 애들 감정까지 살피지 못했어.
지금 벌 받는 거야. 내가 자질이 부족한 엄마라서...그 상처 풀어 줄 능력이 없어...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으려면 차라리 안 보는 게 낫지...집에는 아직 알리지 마.
말 해도...내가 해.“
”걔 여자 있는 거 아냐?“
”여기서 여자가 왜 나와?“
”...알았어...우선은 마음부터 추슬러. 건강이 우선이야.“
동생이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지만 참아주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서 모였던 자리에서 아들
얘기에 대해 함구해 주기도 했다. 공식적으로는 바빠서 참석하지 못하게 된
아들만 빼고 모두 모여서 가족사진을 찍게 되었다.
얼마후 나의 걱정의 근원을 캐내시려는 엄마께도 아들과의 상황을 말씀드렸다.
씩씩대셨다. ”네 아빠 알면 큰 일이다.“ 걱정하셨다.
어김없이 시간은 흘렀고 몇 개월이 지났을 무렵. 농번기에도 한 번 내려와서
돕지 않는다는 이유로 손주에 대한 불만으로 역정을 내시던 아빠에게도
결국 털어놓게 되었다.
”내가 뭐랬어. 그 씨 닮아서 사람 새끼 아닐 거라고 했지? 그 개놈의 새끼!
그 새끼 호적에서 파버려. 그놈 호적에서 빼지 않으면 너한테 돈 한 푼도
안 물려 줄 거야! 너한테 돈 들어가면 결국 그놈 밑으로 들어갈 텐데. 못줘!“
입에 거품까지 품으며 술을 드시던 아빠가 이어서 말씀하셨다.
”그 놈이 먼저 내려왔을 때 선물이랍시고 신발을 주길래 밥 사 먹이고
터미널에 데려가는데 나보고 차를 사달라더라. 돈이 어디 있어서 할아비가
차를 사주냐, 니가 사줘야지, 하고 돌려보냈어! 음흉한 놈의 새끼!“
당시 아들이 면허증을 취득하고 나서 지인이 팔려고 하는 중고차를
구입하고 싶다며 내게 3백만원을 요구했던 적이 있었다. 그럴 돈이 없다고
하니 외가에 부탁해보라고 했다. 거침없이 쉽게 말하던 아들에게 단호하게
말했었다.
”너희 어렸을 때야 방법이 없어서 때마다 할머니 찾았지만, 너도 이제
성인이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늙으셨어. 지금껏 1년치 식량 대 주시는
것만도 감사 드려야 할 판에. 돈 얘기는 절대 안 돼!“
”알겠어요. 알아서 할 게요.“
그렇게 일단락 짓던 일이 있었다.
얼마후 아들이 상품권이 생겨서 할아버지 신발을 샀다면서 다녀오겠다는
기특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에 결국 제 고집대로 제 할아버지에게
마저 차 얘기를 꺼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들의 갑작스러운 퉁명함은 어쩌면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뒤늦은 생각이 들었다.
”그놈 여자랑 있는 거 아냐?!“
”아빠! 그 손주 놈이 제 아빠 피만 받은 거 아니잖아. 내 피도 받았어.
여자 때문에 나한테 그럴 놈 아냐! 아빠가 얼마나 돈이 많아서
물려 주려고 하는지 모르지만 아빠 돈 받자고 아들놈 호적까지
팔 생각 없으니까 안 줘도 돼.“
뜨거운 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온몸이 후끈거리는 부끄러움으로
면목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억지성 추측까지 하시는 말씀을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다. 오만함으로 버텼지만 결국 실패했다.
이혼 후에도 혼자 아이들을 떠안은 딸에게 아빠는 ‘그 씨’ 자식들도
씨도둑 못 한다며 줘버리라고 했다.
무책임한 사람에게 애들을 보낸다는 건 길바닥에 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고집껏 끌어안고 키워온 자식이건만 그마저도 인연을 끊었다고 했으니
결국은 부모 말씀 어긴 딸이 삶마저 걱정 대로 이뤄지고 말았으니 나는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었지만 아빠 입을 통해서 나오는 내 자식의 험담은
듣고만 있기가 불편했다.
아들과 연을 끊고 지내는 동안 아들이 제 아빠와 왕래하며 지낸다는
사실을 전해 듣게 되었다. 천륜이니 당연하다, 여겼다. -딸에게도 아빠와
연락하고 지낼 것을 여러 번 권유했다. 자신은 아빠가 없다던 딸이
언젠가는 몰라도 당장은 아니라며 지금껏 보지 않는 것이 편치만은
않다-
해가 거듭될수록 아들의 무소식이 오히려 잘 지내고 있는 듯하여 다행이라
여겨졌다. 괘씸한 놈이지만 잘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출근 전 새벽마다 기도했다.
불쑥 아들에게 연락이 온다면 좋은 소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때마다 고개 젓고 털어버렸다. 차라리 연락 없이 쭉 잘 살길 바랬다.
”엄마, 저에요...“ 아들에게 6년 만에 들었던 첫마디에 그래서 나의 심장이 내려
앉았는지도 모른다.
-보살님은 태어나서 해 놓은 것이 무엇인가요?-
내게 예전 큰스님이 해주신 질문으로 인해서 죽음만 생각했던 것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그 깨달음이 험난한 세상 밖으로 꺼내 놓은 나의 자식들에겐
책임을 다하는 엄마가 되어주자, 용기를 갖게 했던 원동력이었다.
경찰서에 도착해서 시간을 확인하니 밤 8시가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