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 10분 전쯤에 빨리 와 달라고 보챘던 아들에게 곧 도착할 거라고
알려줬다. 연미오빠랑 얘기 중이라던 아들이 알겠다고 했다.
도착했을 때 아들이 입구까지 나와 있으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아니 다시 집 밖으로 나서기 전까지 아들과
몇 번에 걸쳐서 통화했다. 경찰 탓인지 연미 가족들 탓인지 ”잠시만요, 다시
전화할게요.“ 급히 끊던 전화가 다시 걸려오곤 했다.
어느 모텔에서 경찰에 위해 발견됐다는 연미는 똑바로 누운 자세로 머리에
비닐을 쓰고 있었다고 했다. 현재 경찰서에는 연미의 부모님과 오빠 내외,
고모가 와있다고 했다.
연미의 소원은 죽기 전에 치아 교정을 받아 보는 거라고 했단다. -치아가 크고
돌출되긴 했지만 정도가 심하지 않았다. 흉하지 않아서 콤플렉스였는지 몰랐다.-
연미가 자신의 아빠와 오빠에게 치아 교정을 위해서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냉랭한 소리만 들었다고 했다. 그 후 연미마저 가족과 연락을 끊고 지냈다고 했다.
그 소원 들어주기 위해서 아들이 병원에 데려가서 교정을 시켜줬단다. 치아 교정이
끝 난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처럼 좋아했던 그 아이와 동행하여
증명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그리고 아들이 말했다. 연미와 자신에 대해서 걱정했던
엄마의 말들이 무서울 정도로 모두 들어맞았다고. 그래서 더 잘 사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서 노력했다고 했다. -나의 미래에 대해서 예견했던 부모님께 내가 지녔던
마음으로 살아 낸 것처럼 아들 역시 되물림한 심정으로 지낸 듯했다.- 연미는
순했다가도 갑자기 자신이 한 적 없는 말을 했다며 억지를 부리거나 기복 심한 감정을
이유로 정신과를 다녔다고 했다. 그 정도가 점차 심해져서 좀 더 큰 전문병원에
예약해 놓은 상태라고도 했다.
흥분해서 폭력성이 나타날 때면 그 작은 체구에서 괴력이 나오기도 했단다. 살던
집안 벽면에 구멍을 내서 보수한 적이 있다고 했다. 초반에는 바로 잡고 싶어서
자신도 함께 폭력으로 맞대응했지만 개선되기보다 악화가 되기에 오히려 때리면
맞았다고 했다. 개선을 위해서 둘이 경어를 사용하며 지냈다고 했다. 내게 캡쳐해서
보낸 둘의 메시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 중년의 사이좋은 부부가 주고받은
것 같은 존중 적 대화체가 담겨 있었다.
둘은 좀 더 큰 평수로 이사를 앞두고 있다고도 했다. 전세계약을 마쳤고 대출도
받아놓은 상태라고 했다. 연미의 남아있는 교정기 할부를 비롯해 몇 개 안 되는
명품 가방, 그 외 선물이나, 해외여행 경비 마련을 이유로 어느 병원의 사무직 외에도
휴일이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아들은 방송통신대를 통해서 경영학을
전공 중이었고 3학년이라고 했다.
간혹 다투긴 했으나 퇴근 무렵이면 밥을 차려 놓고 기다리고 있었고 자신이
힘들다고 어리광부리며 받아주기도 했던 연미와의 생활이 행복할 때도 많았다고
보태기도 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사랑한다고 했다.
친혈육이 그리된 와중에 연미의 아빠와 오빠가 아들이 살던 곳에 들러서 그동안
연미와 함께 모았던 통장과 명품 가방이나 패물같은 돈이 될만한 것을 챙겨왔다는,
이해되지 않는 얘기도 전해 들은 후였다. 아들은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동안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라는 말을 힘겹게 되풀이하기도 했다.
자문인지 내게 답을 구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 말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차라리 악몽이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그 마음은 나 역시 같았다.
”엄마 도착했는데 어디니?“
안으로 들어가면서 아들에게 통화로 말했다.
”형님이랑 얘기 중이에요.“
아들이 힘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무리 되는대로 얼른 와. 엄마 들어간다.“
”네.“
아들이 내가 끊기도 전에 먼저 전화를 끊었다. 벌써 40분 이상 연미의 오빠와
함께 있는 듯했다. 일방적인 갈굼을 당하는 건 아닌지, 혹여 그렇더라도 혈육울
떠나 보낸 가족들의 상처가 클 테니 장례 잘 끝날 때까지 잘 겪고 견디라고 했다.
자신을 몰아세우는 연미의 가족들 속에서 오빠라는 사람이 막아주고 있고 자신을
제일 많이 이해해주고 있다고 했다. 제발 그랬으면 했다.
경찰서 현관에 들어서니 오른쪽으로 대기실 같은 공간이 보였다. 놓인 소파에
몇 사람이 보였다. 젖은 우산을 접고 그쪽으로 다가가니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나이의 여자가 내게 다가왔다.
”아빈이 엄마에요. 혹시...“
”안녕하세요...저는 연미 새언니에요...“
짐작대로 다가온 여자가 말했다. 생각보다 침울해 보이지 않던 그녀가 자신이 있던
쪽으로 나를 인도했다. 정면으로 60대쯤으로 보이는 검은 의상의 여자가 보였다.
그분이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서 나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슬픔보다는 화를 억누른
표정으로 소파 깊이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녀가 고모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 새엄마로
알았다.
”연미 어머니세요?“
그쪽으로 한 발 내디디려니 새언니라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곤
모셔오겠다면서 어딘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소개받지 않았지만 노골적인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던 여자가 고모라는
것쯤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그분이 마주 보이는 곳으로 다가가서 한쪽으로 가방과 우산을 내려놓았다.
초면엔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안녕하세요.’ 그 기본적인 흔한 인사조차
꺼내 놓을 수 없는 상황에서 뭐라고 입을 떼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다.
다행이라는 표현이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사라졌던
연미의 새언니가 어떤 여자를 데려왔다.
”어머니 모셔왔어요.“
나보다 5~6살 많아 보이던 그녀는 과하게 여겨질 정도로 짙은 분홍색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다. 화장할 여유가 있었을까, 잠시들었던 생각이었다.
작은 체구의 여자는 결코 침울해 보이지 않았다.
”상심이 크시죠?“
내가 소개받은 여자의 손을 맞잡고 말했다. 말을 하면서도 이웃집 마실 나온 듯
태연하고 흥미로운 듯한 표정의 사람에게 건네는 것이 맞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연미가 2번째인지 3번째인지 모를 여자에게 맞아서 머리가 찢기고 흉터가 났다고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아빠가 4번째 새엄마와 공주에서 밤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다시 재혼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4번째 엄마가 맞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스치듯 짧게 살았더라도 법적으로는 엄마일 테니 당연하게 여기고 했던 말이었다.
”뭐...안됐죠...“
짙은 분홍색 입술을 통해서 나온 말도 표정만큼이나 결코 침울함이 없었다.
”연미 아버님은요?“
”안에서 경찰과 얘기 중이에요.“
내 질문에 새엄마라는 사람이 경박스럽게 말했다.
이웃의 죽음 앞에서도 저리 태연할 수 있을까, 새엄마와 새언니는 이웃집
불구경하듯 흥미로운 방관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말을 마치고 자리에 앉을 때까지 고모로 보이는 여자가 꼼짝도 하지 않고
처음 그대로 시선을 거두지 않고 노려보고 있었다.
”고모님이시죠? 예전에 연미 통해서 얘기 들었어요. 잘 챙겨주시는 고모님
계시다고...연락받고 놀라셨죠? 상심이 클 텐데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 상황에서 그나마 어울리는 표정으로 있던 마주 앉은 고모를 향해서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하지만 소파에 눌러 붙기라도 한 듯 앉아 있는 모습으로
대꾸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노골적인 경멸 찬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나 역시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아들과 함께 살다가 떠난 아이가 안타까운 건
사실이지만 아들의 삶에 있어서 주홍글씨로 남을 그 아이를 나는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내 말에 상투적이라도 무슨 대꾸를 하지 않을까, 몇 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다. 하지만 답이 없었다.
곧 온다던 아들은 10분이상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그 자리에 앉아서 핸드폰을
꺼내 들고 아들의 번호를 눌렸다. 신호음이 한참 울린 뒤에 아들이 전화를 받았다.
”엄마 기다리는데 왜 안 들어오니?“
”아직 얘기 중이에요...들어 갈게요.“
잔뜩 지친 목소리로 아들이 대답했다. 하지만 아들은 그 뒤로도 30분 이상 지나도록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 조카 반대 했다면서요?“
불편한 침묵이 오래 이어졌다. 연미의 고모와 나는 한동안 눈싸움을 하듯 서로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고 있었다. 어색하고 잔뜩 불편한 침묵의 시간이 제법 흐르고 난 뒤에 연미의
고모가 내게 말했다. 눈빛만큼이나 냉랭한 말투였다. 과묵해 보였던 연미가 가깝게
지냈다던 제 고모에게 나에 대해서 어떻게 말했는지 그 말투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환영하지는 않았어요.“
”내 조카가 어때서요?“
간결하게 물었지만 심문하는 듯 예의가 없었다.
”제 아들이 화목하게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상대만은 상처 없이 자란 집에 아이이길
바랬요. 탐탁하게 여기진 않았지만 서른이 되도록 만남이 유지된다면 허락한다고
말했어요. 6년 전 아들과 마지막 통화를 했을 때 헤어졌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같이 살고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어요. 제 반대를 무릅쓰고 살았다면 잘 살기라고
했어야죠. 어떻게 그렇게 떠나요?“
동생의 충고가 있었지만 나는 죄인처럼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는 안될 것 같은 분위기가
내 마음에서 비상등을 깜빡거렸다. 만만히 보여서는 안 됐다.
내 말에 실눈으로 바라만 보던 그분의 눈이 분노인지 당황인지 모를 이유로 커졌었다.
”아들이 그룹 채팅에서 쓰리썸을 계획한 거 알아요? 그 애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으면!“
”!!!...쓰리썸이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반나절이 지나서 벌어졌던 상황은 내 주변에서 결코 일어날 수
없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뉴스에서나 봄 직한 흉흉한 사건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격은
충분했다. 하지만 입에 담기도 수치스러운 말을 이를 갈던 연미고모가 하고 있었다.
그 말은 내게 더 현실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놀랄 일이 얼마나 더 남은 걸까. 너 도대체 여태 어찌 살아왔다는 거냐...6년 동안
보지 못했던 좀체 나타나지 않는 아들에게 묻고 싶었다.
측면에서 상황을 구경하고 있던 새언니라는 사람에게 고개 돌려서 말했다.
”아빈이 오빠랑 얘기 중이라고 했는데 너무 길어지네요. 내가 전화해봐야 소용없는 거
같은데... 새언니가 남편에게 전화해서 아들 좀 빨리 들여 보내 달라고 해줘요.“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물러날 곳이 없었다. 약해 보여서도 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