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교정에 올라.
동경 신주쿠 부근에 사는 친구의 항공우편은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배어난다. 중학교 동문회에 맞추어 들어온다고 하니 수 십 년이 지나 만난다는 설레임이 잦아들 것 같아 곱게 보낸 편지를 들고 등나무 아래 소담한 평상에 걸터앉았다. 남편이 보낸 군사우편을 받아 쥘 때와는 다르게 추억여행으로 인도하는 초대장처럼 느껴져 모처럼 가슴이 설레발친다.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다시 펼쳐드니 고방에 묵혔던 곡식들을 고샅에 내다 너는 것처럼 여문 기억들이 멍석위로 깔리는 것 같아 마음은 벌써 운동장을 달린다.
해발 400미터의 속리산자락 더기 같은 곳에 자리 잡은 학교는 가는 곳이 아니라 오르는 곳이라 불렀었다. 등산로 같은 길에는 새벽녘에 내린 비로 보얗게 박무가 깔려 있었지만 종아리 굵어진다고 투덜대었던 이야기들이 시나브로 살아나 다리를 한번 내려다본다.
운동장 언저리에 돋아난 잔풀들은 학생수가 적은 것을 말해주듯 당당하게 가늘어진 햇살을 끌어당기고 있다. 풋사과 같은 싱그러움을 지닌 소녀나 여드름이 듬성듬성 난 돌배 같은 소년의 구순한 모습은 간데없지만 둔한 몸짓으로 뜀박질하는 마음에는 세월을 거스른 해맑은 웃음꽃이 피어난다. 누군가의 입에서 2년 뒤 폐교가 된다는 말이 튀어나온 후 몇 순배 술잔이 돌고 침묵으로 안주를 삼는다.
크게만 보였던 건물 뒤 푸른 하늘가로 목화솜 같은 뭉게구름이 둥실 떠간다. 막내둥이만 남기고 도회지로 자식을 다 떠나보낸 늙은 어미의 쓸쓸함 같은 서글픔이 애써 색 고운 페인트칠이 되어있지만 아리고 투명한 기억들은 여기저기 널브러져있다. 교단을 지나서 높다란 계단을 올라 옛 교실로 들어서니 꿰미 풀리듯 금세 초경을 겪던 어린소녀로 돌아간다.
복도 끝으로 불러내어 교내 상을 받고도 대회는 나갈 수 없다고 말해 주시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자근자근 들려오는 듯 하다. 부모가 학교에 자주 드나들던 관광지 아이의 빈자리를 보고 대신 백일장에 나간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복도를 따라 서러움으로 디뎠던 계단으로 내려오면서 아직도 그 사정을 모르는 어머니가 생각났다. 깔끔한 서양식 화장실이 생긴 것도 모르는 듯 밑이 다보이던 변소는 소복한 코스모스가 아직도 호위하고 있다. 아무에게 말도 못하고 퉁퉁 부은 얼굴로 애꿎은 꽃잎만 따내던 손을 잡아주었던 친구가 다가온다. 머리위로 짝짓기 하는 밀잠자리 한 쌍이 정분을 과시하면서 유유히 날아간다.
창포 꽃이 가지런히 심겨져 있던 작은 연못은 더 이상 손길이 귀찮은지 메워져 있지만 지워지지 않는 흉터처럼 흔적만이 남아있다. 누군가 떨리던 손길로 꼬깃꼬깃 접은 편지를 전해주었던 쓰레기 소각장 옆 오솔길은 인적이 끊겼는지 잡목만 무성하다. 도회지에서 새로 오신 선생님이 방학동안 그림 그려 보라는 말에 걸어서 몇 번 오긴 했지만 아이들의 번듯한 도구에 기가 눌릴 수 밖에 없었다. 힘든 농촌 사정을 말하기 부끄러워 그만두었던 일이 아릿하게 떠오른다. 두 마장 쯤 떨어진 집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던 산길은 울음을 삼키며 가기도 한 길이고 미술 도구를 사지 못해 더 이상 밟지 않았던 길이기도 하다.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이 한결 가슴을 풀어주지만 한말짜리 술통의 막걸리는 밑이 빠졌는지 자꾸 줄어든다.
모두의 마음을 읽은 듯 운동장에 조회대형으로 모이라는 안내방송에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인다. 귀에 익은 음률에 맞춰 국민체조를 하면서 바라보는 하늘은 금빛으로 변하더니 홍시 색깔이 되어 구름까지 물들인다. 더 크게 움직이면 펼쳐진 추억이 영영 접힐까봐 작은 몸짓을 해보지만 속으로는 그때의 힘찬 구령에 맞춰본다.
한낮의 잔열이 내려앉은 운동장가에서 잡초를 뽑고 있자니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팔을 걷어 부친다. 삶이 각박해질 때마다 그리웠던 순진한 옛 시절을 만날 수 있도록 풀 뽑은 자리자리 마다 마음을 묻어 놓는다. 발길 드문 고향집 마당에서 한 형제 인 듯 내남없이 앞선 행동에 말끔해지는 땅을 보며 넘치도록 고여 있는 논물을 보는 것 같아 잠시 흐뭇해졌지만 산사보다 고즈넉한 학교는 알맹이가 빠져나간 빈껍데기 같기만 하다.
뒷산에서 소년이 불어대던 하모니카소리 대신 흠씬 솔 향이 묻은 바람에 빛바랜 풍향계 저 혼자만 잉잉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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