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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하는 미생물


BY 이루나 2025-08-13



  2025년 4월 15일은 춘천 수필문학회에서 춘천시 하수종말 처리장을 견학하기로 한 날이었다. 인간은 평생을 살면서 엄청나게 많은 양의 오수를 하천으로 흘려보낸다. 지난여름 딸이 출산하고 신생아를 20일가량 돌보았다. 신생아는 2시간마다 먹고, 먹으면 30분 후에 소변을 보고 하루에 3~5회 정도 대변을 본다. 평생을 살면서 그렇게 내 몸을 거쳐 배출되는 엄청난 양의 오염물질이 모두 어디로 흘려보내지고 있는지 한 번도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었다. 날마다 씻고 먹고 마시면서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모두가 하는 당연한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우리가 내보낸 모든 하수는 종말 처리장으로 보내진다. 1차로 침전 과정을 거치고 이 과정에서 무거운 침전물은 아래로 가라앉아 다시 걸러진다. 여과된 물은 자연 청소부인 미생물이 탄소와 질소, 인 등의 세균을 먹어 치우면서 오수가 정화되는 것인데 농도가 짙으면 이 과정에 미생물이 폐사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이후 2차 침전을 거치면서 오염된 세균을 먹어 치운 미생물들은 몸집을 불려 슬러지로 쌓이고, 슬러지를 걸러내어 정화된 맑은 물은 다시 자연 방류한다. 이것을 가만히 살펴보니 사람의 인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입으로 음식을 먹는다. 1차로 하수가 유입되는 과정이다. 제대로 씹지 않고 삼킨 음식물은 가라앉아서 소화불량을 일으킨다. 하수 처리장이 모래, 자갈, 물티슈, 생리대 등의 침전물들을 한 번 더 처리해야 하는 것과 같다. 이후 생물학적 처리에서 농도가 짙으면 미생물이 폐사하듯 우리 몸속으로 들어간 음식도 소장에서 영양이 과부화가 되면 문제가 생긴다. 다시 대장으로 흘러간 음식은 미생물을 만나 영양을 분리하고 쓸모없는 것들을 대소변으로 내보낸다.

 

  나는 하루에 최소한 2번 이상 밥을 차리는 사람이다 보니 내가 먹는 것도 문제지만 조리 중 만들어진 오염물질도 무척 신경 쓰인다. 예를 들면 제육을 볶아먹은 프라이팬을 닦을 때 양념이 범벅된 팬을 그냥 흐르는 물에 씻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휴지로 한번 닦아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씻는 게 맞는 건지 늘 헛갈린다. 모든 오염수가 정화되는 과정이 복잡할 것이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이곳에서 과정을 자세히 설명을 듣고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아주 오래전 1970년대에 우리는 다릿발 집에 살았었다. 하천에 튼튼한 다릿발을 세워두고 그쪽으로 화장실을 만들어서 대소변이 하천으로 흘러내려 가는 구조였다. 조금씩 모여있던 오물은 비가 와서 큰물이 생기면 깨끗이 씻겨 내려가 없어졌고 그때는 그게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다. 그냥 재래식보다는 냄새와 위생에 한결 자유로웠다. 태백에서는 하천을 따라 지어진 많은 집들이 모두 그런 구조였고 아래쪽에 유일하게 오뎅 공장이 있었다. 당시에는 오뎅이 갓 튀겨져 나오면 세상에 그처럼 맛있는 음식은 없었다. 묵호나 삼척에서 어부들이 포획한 어류 중 상품 가치가 없는 잔챙이는 모두 오뎅 공장으로 도착했고 정부미 포대에 담긴 어류들은 모두 오뎅으로 만들어졌다. 어느 날 오뎅 공장의 인부들이 개울에서 포대를 헹구는 것을 보고 나는 경악했었다. 그 더러운 똥물이 흘러가는 하천에서 씻어진 포대들은 다시 항구로 보내지고 거기에 다시 생선이 담겨 도착한다. 이후 한동안 오뎅을 보면 그 광경이 떠올라 먹기가 불편했다.

 

  18세기 베르사유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었다고 한다. 중세 유럽에는 집안에 화장실이 없어서 밖에서 용변을 보거나 2층 이상인 집들은 창밖으로 배설물을 던져버렸다고 전해진다. 여성들이 굽이 높은 하이힐을 신고 다니는 것은 길거리 오물을 밟지 않기 위함이고 챙이 넓은 모자는 위에서 쏟아지는 배설물을 맞지 않기 위한 도구였다고 한다. 길거리에 진동하는 악취를 막기 위해 향수가 발달했다지만 이 모든 것은 미봉책에 불과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악취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법률이 제정되었고 보통의 사람들은 공원이나 골목길, 강가 등을 이용해 용변을 보았다. 부유한 사람들은 ‘이동 변소꾼’의 도움으로 용변을 보았는데 “뚜일(toile)”이라고 외치면 어디선가 커다란 망토를 두른 변소꾼이 바람처럼 나타났다고 한다. toile은 커다란 망토를 의미하고 오늘날 화장실을 뜻하는 toilet의 어원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쓰레기와 오물로 뒤덮인 중세 유럽은 쥐와 벼룩이 옮긴 흑사병으로 인구의 절반이 죽어갔다고 전해진다. 1858년 정화시설이 갖춰지지 않았고 각 가정에서 흘려보낸 하수가 런던의 템스강으로 흘러들었다. 악취가 나면서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에는 의원들이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석회 표백제를 적신 커튼으로 창을 가렸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 때 도처에 널린 분뇨를 본 미군이 경악했었다고 한다. 우리의 재래식 화장실을 보고 ‘한양 거리는 곳곳이 인분에 잠겨있는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도시’로 기록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처럼 맑은 물을 누리고 있는 선진국이다. 아직도 저개발 국가에서는 물과 전기가 없어서 수질오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고, 많은 사람이 장티푸스와 콜레라로 사망한다고 하니 안타깝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인간의 편리를 위해 개발하고 만들어진 온갖 산업 물질들이 환경을 오염시킨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생존하기 위해 내 몸에서 만들어지는 생리현상으로 하천이 오염되고 병에 걸린다는 걸 알았다. 우리가 평생 먹고 마시고 배출하는 오수를 맑고 깨끗하게 되돌려주는 하수 종말 처리 시스템에 감사함을 느꼈다.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쓰고 버리는 모든 것에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수고와 노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도시의 깊은 곳에 혈관처럼 깔려 오수를 빨아들이고 정화시켜주는 덕분에 맑게 되살아난 물이 우리를 건강하게 만든다. 미생물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