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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릴 때까지


BY 김명숙 2006-09-04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릴 때까지


나의 작은 수첩 맨 앞장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앞으로 7년 뒤 2013년 생일에는 나의 이름으로 된 책 한권을 꼭 만든다. 시집이나 수필집으로…….”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는  작가라는 꿈이 있어 나는 모든 어려운 현실을 견딜 수가 있다.

너무나 얼토당토않은 꿈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나는 아주 천천히 지치는 법이 없이 이 길을 가기 위한 여러 가지 공부와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기위해 노력하리라 다짐을 한다.

책도 가능한 한 많이 보려 노력하고 있고, 신문도 차근히 읽어보고, 사람들의 다양하게 살아가는 모습도 관찰하면서 삶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까지도 기록하면서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으며 틈틈이  글쓰기도 한다.

지금 마음속과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작가가 되는 꿈은 어려서부터 꿈으로 간직되었던 것이 아니었다.

수없이 많이 변했던 꿈들 중에서 이제는 확고하게 네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게 하는 것뿐 꼭 된다는 보장이 없다하여도 나는 마지막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변함없이 지켜 가리라 다짐을 한다.

수없이 변했던 꿈 중 어려서는 배불리 먹는 꿈이 최고의 꿈으로 자리했다가, 조금 커가면서 제발 엄마 없다는 소리를 안 듣는 것이 가장 큰 꿈이었으며, 자장면 통을 들고 배달을 다닐 때는 그래도 열심히 공부해서 유능한 직장인이 되는 것이 가장 큰 꿈으로 자리 잡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갈 수 없었던 관계로 나는 여군이 되는 꿈도 잠깐 꾸었었다.

그러나 신체적인 조건 때문에 그 길도 나의 길이 아님을 알고 미련을 버렸었다.

수많은 꿈중에서  그래도 끝까지 마음을 아프게 했던 꿈은 대학생이 되는 꿈으로 한동안 방황을 하면서 까지 꿈을 포기하는 아픔을 맞이해야 했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대학을 가기 위해 노력을 했었는지 모른다.

대학을 가겠다는 꿈을 가슴에 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까지 했는데, 대학생이 되지는 못했다.

학교를 졸업하던 해 신랑을 만나 결혼을 먼저 했기 때문이었다.

결혼하고서도 얼마든지 학교에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 착각이었다.

아이가 생기게 되었고, 아이들 키우면서 대학에 가야한다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아야 했었다.

큰 딸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또다시 아이 앞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형경아, 네가 대학교 입학할 때 엄마도 대학에 갈 거야”

“그래 엄마 나랑 함께 대학에 가면 되겠다. 며 웃어주는 아이의 해맑은 웃음은 차라리 기쁨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어디 마음대로 꿈꾸듯이 살아지는 것이 어디 있는가!

큰딸아이가 11살이 되던 해에  늦둥이 초롱공주가 태어나게 되었고,

아이들이 얼마간 크면 나도 공부해서 대학에 가리라던 꿈은 물거품이 되어 흘러가 버렸다.

아마 모든 것은 핑계에 불과하겠지만 현실은 너무나 힘겹게 흘러가게 된다.

정말, 너무나 예쁜 우리 늦둥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공부고 뭐고, 꿈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필요가 없어지는 것 같지만 아이들과 뒤섞여 소리 지르고 웃고, 떠들고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다가도 마음이 울적하거나 너무나 힘이 들어 지쳐 쓰러져 침대에 누워 나의 미래를 생각하면 암담해지고 초라해지고 이렇게 있으면 안 되는데 도대체 내 인생은 어디에 있는 거야 마음속으로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찔끔거리게 된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 글쓰기.

방송국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사연으로 보냈는데 방송도 되고, 선물도 타게 되었었다.

항상,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바빴던 내게 이일은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좀더 다듬어진 글을 쓰기 위해선 책도 봐야하고, 글쓰기도 여러 번 해봐야 했지만 삶의 활력소를 찾고 밝은 성격으로 차츰 돌아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되었고, 신랑과 아이들에게 내던 짜증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가족들은 알아차렸다.

이때부터 나의 꿈은 작가라는 거창한 꿈을 꾸게 되었다.

평생을 두고 천천히 걸어가도 좋을 길이고, 남들처럼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내 이름 석자가 활자화 되어 책으로 만들어질 꿈을 꾸면서 오늘도 나는 책을 본다.

이제는 누구라도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작가라고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자신이 있다.

어느 책에선가 자신의 꿈을 물을 때 3초안에 대답하지 못하면 꿈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큰소리로 대답할 것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나만의 꿈을.......작가라고.......,

남에게는 이루지 못할 꿈처럼 느껴지겠지만 그래도 나는 해 내리라. 지금은 이처럼 다듬어지지 않은 글을 쓰고 있지만 나의 목표 300권의 책을 모두 읽고 난 뒤 작지만 소박한 나의 이름으로 된 책자를 손에 든 나의 모습을 꿈꾸며  오늘도 현실 속에서 짬짬이 책읽기에 매진하고 있는 중이다.

창작교실을 찾아다니며 공부도 하면서 2013년 생일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내 자신이 되기 위해 아이들 셋과 시어머님의 병 수발과 신랑의 뒷바라지를 하면서도 나는 쓰러지지 않는다. 왜! 곁에 책이 있고, 마음속에 변하지 않는 소중한 꿈이 자리 잡고 있기에 희망이 있을 뿐이다.

사랑하는 명숙!

너는 잘하고 있지?

그래, 착한 마음과 더불어 내마음속의 보석 상자에 고귀하게 보관되어 있는 작가라는 꿈이 있잖니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만 가자.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도마

천천히 꿈을 향해 가다보면 거센 비바람을 만나도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른 사람은 말하겠지. “헛된 꿈이야”

그러나 듣지 않기로 하자 네스스로 선택한 길이고 꿈이잖니

설사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작가가 안 된다고 하더라도 괜찮을 거야

그때까지 넌, 책도 많이 보고, 문학공부도 열심히 할 거잖아 지금처럼…….

그럼, 널 감싸고 있는 영혼은 아름답지 않겠니. 머릿속에 가득 담아둔 지식과 수많은 책 속의 주인공들이 친구가 되어 주겠지. 외롭지 않게.

가정살림을 하면서 꿈을 위해 공부한다는 것,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알고서 시작한 일이잖아 숙아!

마지막 한 가지만 부탁하자 하다말다 해서 되는 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지 생활에지치고, 포기하고 싶어도 온전한 삶 속에서 포기는 없다는 것 끝까지 무리하지 말고 꾸준하기 만을 빈다.

사랑한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네가 잘 알고 있잖아, 잘 하고 있다는 것을…….

7년 후 너의 생일에 활짝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나 건배를 하자

“50대 아줌마 드디어 작가되다”라는 타이틀 앞에서.......

오늘도 가슴속에 고이고이 간직한 작가라는 꿈을 향해 꾸준한 책읽기에 빠져있는 자신이 나는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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