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가운 햇볕속에서 일순간 창가에서 불어오는 한웅큼의 시원한 바다 바람같이 상큼하고 여유로운 느껴지는 오늘... 아침부터 남편과 딸을 챙기며 부산을 떨며....출근을 하고 어린이집을 가는걸 지켜보곤 오늘 하루도 수고~하라고 손을 흔들며..잔잔한 미소를 보냅니다..
아침해가 길어지는데 아직 자고 있는 우리 막둥이 아들은 지금 17개월입니다!
보면 볼수록 너무 귀여워서..볼을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고 어른들 하시는 말씀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픈게 자식이라는 말이 새삼 이런거구나 하고 느껴지네여...
향긋한 향기에 모닝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겨 봅니다....내 나이 29살에 두아이를 둔 아이 엄마가 된지 5년 차가 되어갑니다...요새 결혼이란 글짜보다는 아가씨들은 능력에 맞게 대우를 받아가며 즐겁게 자기 꿈을 펼쳐가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부러운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남들이 학교갈때 전 직장을 다녔고 다들 직장 다닐때 전 두아이의 엄마가 되어버렸으니깐여...
모닝커피 한모금을 삼키며.....은은한 커피향에 저의 꿈을 펼쳐 봅니다.
나의 꿈을 뭐였을까? 전 늘 중고등 학교시절에 손재주가 많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알록달록 색칠도하고 그림그리는 걸 좋아했고 자르고 붙이며 무언가를 만들는게 재미가 있었습니다. 내 자신도 이쪽으로 소질이 많아 그쪽 분야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적이 많았습니다...나의 꿈은 세월이 가면더 더욱더 부풀어져...자신감으로 가득 차게 되었고 당연히 가야되는길로 생각하며 자라왔습니다. 중학교 2학년 아버지가 돌아가시 전만해도 아버지와 나의 꿈인 디자인너가 되길 바랬던...늘...저의 버팀목이 되어 주셨는데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시고....꿈은 조금씩 조금씩 안개처럼 사라져만...가는듯 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지자 새어머니는 저를 친할머니께 맞기시곤 친정으로 동생과 함께 가버셨습니다.
중학교 2학때 부터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저는 ....꿈이라는 걸 반을 포기 하고 살수 밖에 없었습니다. 늘 밭에서 일하시는 할머니를 거들어 드려야 했기 때문에 그림 그리는 붓대신에 호미를 스케치북 대신 흙이랑 살을 부디치며 살아야 했지 때문입니다.
흙냄새를 맡으며....외롭다는 생각도 힘들다는 생각도 다 잊혀지는듯..느꼈습니다.
고3이 되자..! 대학이란 더 넓은 둥지로 나가고 싶었습니다...그러나 할머니는 중학교만 나와도 잘나왔다 할정도인데 고등학교 까지 나왔으니 대학은 그만 두고...직장이나 다니라는 말씀에...서운하기도 하였지만...저 뒤바라지 하시느라 더 흰머리가 많아지신 할머니의 모습에..대학을 가겠다고 말이 나오지 않더군여..세월이 지나 제가 이만큼 큰만큼 할머니도 많이 늙어버리셨다는걸 깨닫게 되었습니다...이젠 제가 할머니의 버팀목이 되어 드려야 되겠구나....
그래서 고3 졸업반 2학기때 취업을 나가게 되었습니다...첫 직장..사회 초년생이였던 저였지만 회사에 쉽게 적을해 나가며 나의 생활에 만족하게 되었고! 꿈만 잃어버린 기억상실증에 거린사람처럼...저희 삶이 무척이나 무려해 질때 쯤...되었을 22살 겨울....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내가 하고 싶은것 내가 되고 싶은것 내가후회하지 않는 길을 걷고 싶다는 욕망...바로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여... 과연...이제부터 시작할수 있을까? 진짜 내가 하고푼일이 이걸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였고 잠깐 스쳐가는 생각이였는데 저의 뇌리에 따악 꽂혀서는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꼭 하고 말꺼야! 하는 용기가 막 쏫아 올라 주채할수가 없더군여! 처음으로 할머니늘 설득해서 시작된 미용생활 처음엔 12시간을 서있는 직업인지라... 발다리가 부어 오르고 손은
약성분때문에 성할 날이 없었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몸이 힘든건 견딜수 있었고 한단계 한단계 올라 갈때마다 내가 해냈다는 자부심도 느낌수 있었습니다.
첫봉급 탔을때 한달동안 하루에 12간 일하고 고작 2번 휴무로 받은 봉급 20만원 이걸로 차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첫직장에서 번 월급보다 더 귀한 돈이더군여..
이돈으로 10원 한장 쓸수 없어 할머니께 갔다 드렸습니다.
그동안 할머니..저 키워주시느라 고맙구여..오래오래 사세여..제가 꼬옥 호강 시켜 드릴께여..
이 한마디 붙여서여..할머니께선 니 고생해서 번돈..되었다고 한사코 마다 하셨지만....
제가 주머니에 꼬옥 집어 넣어 드렸습니다!
할머니께선 그돈 쓰시지도 못하고 저금통장에 꼬박꼬박 저축 하고 계셨더라구여...
저 시집갔을때 이통장을 내밀면서....남편몰래 뒷주머니 차야된다며...손에 쥐어주셨지요..
그리고 제가 잠잘때 다리이랑 발아파서...낑낑 댈때 할머니 찜질수건을 대주시곤...아이고 우리새끼 하시며..늘 애초로히 바라 보셨었는데...더 힘내며 열심히 배웠고 배운만큼 저의 꿈을 향하고 있었을때였습니다...그때 저희 남편을 만나게 되었지요!
제가 외로움을 타는 성격이라 남편이 참으로 많은 버팀목이 되어 주고 늘 제 옆에서
보살펴 주는 아빠같은 존재 였답니다.
남편과 사귄지 1년 되었는데 속도 위반이란걸 하게 되었습니다! 아뿔사 이게 저희 실수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지금의 첫째 딸이 생기게 되었지요...너무나 이쁜아가...우리 채은이는 토끼같이 너무 귀엽고 여우같이 애교도 떨며 어찌나 귀여운지.. 그때 아직 저희 꿈을 다이루지도 못했었고 그렇다고 중절이란 무서운 수술을 할수도 없었을때 후회 하지 않고 채은이를 낳겠다는 결심! 절대 후회 안합니다.
그리고 남편과 결혼해서 너무 행복했구여...채은이를 낳고 2년후 우리 현서가 태어나
더욱더 단란한 4가족이 되었습니다....두아이들과 매일 씨름을 하며 살아가고 있고..
아이들때문에 자절된 꿈이였지만 원망은 하지 않아여..이게다 하늘의 뜻이겠죠 ..늘 외로워 하는 저에게 늘 따뜻한 마음으로 지내라고 보내주신 천사들인데여...
지금 미용계를 떠난지 4년이 되어 가지만 문뜩문뜩 다시 시작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곤 합니다. 남편은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해보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지만..!
아직 둘째 녀석이 엄마의 치마 자락을 놓아 주지 않네여... 그렇지만! 전 아직 포기 안았습니다. 우리 둘째 조금 크면 다시 처음부터 한발 한발 다시 시작해 보려 합니다... 제나이 29살 아직도 늦지 않았겠죠! 늦은 도전이지만 저를 믿어주는 가족들이 있어 더욱더 용가 생깁니다. 아자! 화이팅!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