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임시공휴일 어느 날이 낫다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10

습작노트에서 <꿈>


BY 영롱 2006-09-04

 15년을 산 서울에서 안산으로 이사 온지 석 달째, 이사와 함께 나의 일에도 공백이 생겼다.

바쁘게 살다가 갑자기 생긴 공백을 메꾸기 위해, 오랫만에 아컴에 들어 오니, 꿈 이야기가 많다.

 나의 꿈은 \'시인\'이었다. 정말 오랫만에 먼지 쌓인 습작 노트들을 꺼내 읽는다. 초등학교 때부터 꾸어온 이 꿈은 습작노트에 일기장처럼 빼곡히 적힌 날짜 순으로 기록되어있다. 중, 고등학교 때 선생님의 첨삭을 받으며, 시화전, 백일장 등에 출품했던 시들을 읽노라면, 한숨이 나온다. 지금 쓰라면, 이렇게 절대 못 쓴다. 어설픈 대로 풍부한 상상력과 순수한 시어들이 가슴을 울린다.

\'내가 이랬었지.\'

 스물 셋에 결혼을 했고, 서른 둘에 전업 주부의 딱지를 미련없이 떼어냈고, 서른 아홉에 나는 달콤한 휴식 중이다.

 습작 노트를 뒤적거리노라면, 전업 주부일 때, 가장 많은 시를 썼다. 소재는 주로 주부의 가사일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두 아이에 대한 이야기인데, 정체성을 찾지못해 힘들던 젊은 나의 모습이 너무 적나라하다.

 이걸 시라고 할까? 일기라고 할까? \'행주\', \'걸레\', \'이불\', \'풋고추\', 고들빼기\', \'뜨게질\', \'콩나물\' 등... 독신주의가 꿈이기도 했던 나는 직장 생활도 못해보고 결혼해서, 어려운 셋방살이에 골치 아픈 시집 가족사에, 스물 넷에 엄마가 되어 겪었던 시행착오까지,  무수한 절망과 희망들을 이런 사물들에 토해내며, 신세 한탄 같은 시를 썼었다.

 그 시절 시는 우울한 내게 유일한 화풀이 대상이었고, 친구였고, 희망이었다. 그래서 투박하지만, 나를 또 울린다.

 일을 하면서, 나는 비로소 편안해 졌다. 일이  너무 좋아 잠시 시를 잊었다. 아주 가끔 한 번씩 시를 썼다. 그리고 내 시는 조금씩 햇살을 담아 내며 웃고 있었다.

 요즘 나는 시인이 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한다. 너무 세상속에 깊이 들어갔다. 이젠 발을 빼낼 수 없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이러다가 동생처럼 미치는가 싶어 두려워 악착같이 현실을 택했는데, 시는 약간 미쳐야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 미친 동생을 보면서 나는 미치지 말자고 얼마나 다짐했던가? 그래서 시는 내게서 멀어져 갔다.

 그러나 어제 문득, 시집을 읽으면서 , 시인들의 그 투명한 감성이 나를 울린다. 나는 이제 이렇게 쓸 수 없을거라는 절망감이 엄습해 온다. 그들은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영혼을 가졌을까?

 살아있으므로 나는 꿈을 꾼다.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

20층 아파트에서도 나는 시를 쓸 것이다. 노천명의 시처럼 이름없는 여인이되어 여우나오는 산골에서 살 수는 없지만, 시인이 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살아있는 한 꿈을 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