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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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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슬픔 좀 가져가소 ...2


BY 파란 눈 2005-11-08

2

고모할머니의 별명은 말대가리였다.

얼굴이 말처럼 생겼다고 해서 예전부터 집안에서

올케들이 부르던 별명이란다.

그때는 2,3월도 무척 추웠다.

내방만 불을 넣어주지 않았다.

콧잔등이 시려운 웃풍에 붙잡히지 않으려고 무거운 솜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도 추워서 떨었다.

하루 이틀도 아닌데 그날따라 너무 한심했다. 

찬물에 머리감고 버스를 기다린지 5분도 되지 않았는데

머리에는 고드름이 열렸다.

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아무 생각없이, 멍한채로 터미널로 향해서 집으로 갔다.

막상 집에가니 부모님께 그런 얘기를  할 수 없었다.

그냥 학교 노는 날이라고,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서 왔다고 하고서는 하룻밤을 보내는데

말대가리 할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부모님을 번갈아가며 온갖 욕을 다 했다.

전화를 받고 있던 엄마 손은 부들 부들 떨렸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생각이 짧았던 자신의 행동이 한 없이 후회스러우면서도

그 할머니를 마음속으로 수없이 원망하고 다짐했다.

'그래! 누가 잘 사나 보자. 언젠가 당신들 눈앞에 내가 부~자가 되어서

당당하게 나타나리라고...'

속상하신 부모님께 내가 식모살이 하듯 살았다고는 말씀 드릴수가 없었다.

방에 불도 넣어주지 않고, 집 밖 담 페인트칠까지 내가 했다고,

방에서 텔레비젼 조금 봤다고 전기세 많이 나온다며 혼나고,

같이 있던 조카와 밥 비벼먹는 데 참기름 쳐서 먹는다고

죽도록 혼났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처음 집 짓고는 집이 팔리지 않아 힘들어 하시고, 돈 까지 떼이셔서

뾰족한 방법이 없으셨던 부모님은 걱정하시면서 나를 그 집으로 그냥 돌려보내셨다.

걱정끼쳐서 죄송하다고 빌라면서...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그 밤...

어느날 집에 갔더니 엄마가 나를 자꾸 피하셨다.

삼촌 결혼식전날 그 집에서 쫓겨날때 그곳에 계셨던 한분에게서

말씀을 전해들으셨던 모양이다.

"애린 이가 쏙 빠진 듯 하다며 온갖 욕을 다 했단다!" 하면서

엄마는 내게서 등을 돌리고 우시고 나는 엄마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숨 죽이며

엄마를 등지며 우리는 한없이 울었다.

정말 세상은 돌고 도는지.

그렇게 돈에 목메어서 지독하게 굴었던 그 집안은 자식들이 사업에 실패하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어렵게 살고 있다고 한다.

***

중학교때 엄마가 부업으로 하시던 하숙집..

"아주머니 안 계십니까?"

"아주머니!"

빼꼼히 문을 연 내 눈 앞에 덩치 좋은 잘 생긴 남자가 서 있었다.

붉어진 내 얼굴을 눈치라도 챌까봐 엄마를 대신 해 불렀던 내 마음속에는

벌써 사랑이 훌쩍 담을 넘어와 버렸다.

7년동안 말 없이 사랑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나이차이가 있어서 내색도 못한 나는 여동생을 다루듯 예뻐하는 대학생 오빠를 동경하며

그 오빠가 애인이라고 데려오는 여인네들을 한없이 저주하며

언젠가는  내 사람이 될 거라며 주문을 외웠다.

나의 타향살이와 ROTC 장교로 군에간 그 오빠와는 편지가 오고갔지만

그에게 나는 언제나 여동생이었다.

내 힘겨운 타향살이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가슴 한 켠에 언제나 파란 잔디밭에

예쁜 집 한채를 그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