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천장을 뚫을 만큼 커 올라간 행운목을 여섯 동가리를 내었다.
집안에 사람 키 보다 더 큰 식물이 있으면 병이 들고 액운이 온다는, 어쩌면 한낱 낭설일지도 모르는 주인 없이 떠도는 말을 귀 담지 않더라도 멀쑥하게 볼품 없이 위로만 커 가는 게 보기 싫었다.
십 여 년 전에 집안에 행운만 가득 하라는 메세지와 함께 덕담을 건네며 큰 오라버님이 주신 이 나무를 내 분신같이 키웠다.
그래서 그런지 그동안 사소한 일은 생겼지만 크게 마음 다칠 일은 생기지 않은 것도 이 행운목이 부적 같은 무형의 힘을 쏟아서 그리 했을지도 모른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굳히며 그렇게 보호수 같이 내 삶 속에 깊히 들어와 앉았다.
손가락 세 개의 굵기로 마디마디에 달려있던 잎들이 나무가 커가면서 낙엽을 드리웠다.
잎이 떨어져 나간 자리는 마치 대나무 같이 선명한 마디를 남긴 채 다음에 또다시 잎은 틔울 여지를 남겨 두었다.
올 봄에 흙을 파러 산에 오른 것도 벌써 다섯 번 째이다.
영양가 없이 누렇게 병색을 띄운 화초들을 보니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나를 산으로 올려 보냈다.
낙엽을 헤치고 거무스럼 한 부엽토를 한 삽 한 삽 떠서 쌕에 담고 있는데 인기척이 났다
마치 남의 밭에서 도둑질 하다가 들킨 것처럼 찔끔거렸다.
산불이 만연한 건조기에 순시 차 나온 산림 순시원 같기도 하고 市에서 나온 공무원 같아서 맘이 놓였다.
"뭐 하시니껴?"
뭐 하고 있는지 뻔히 알면서 묻는 건 내가 하도 놀라는 시늉을 해서 미안스럽고 민망한 맘으로 그냥 던져 보는 소리 같았다.
난 대답대신 모종삽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라이터나 성냥은 안 가지고 오셨쥬?"
그렇게 던져놓은 말이 스스로 생각해도 가당찮았는지 말 끄터머리 뒤에는 하하 웃는다.
내가 담배 피울 것 같지 않았는지 소지품 검사도 안하고 산불조심 하라는 당부를 하고는 지나갔다.
이렇게 바짝 마른 낙엽더미위로 작은 불씨 하나만 떨어져도 무서운 火魔로 돌변하는 재앙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갑자기 몸이 추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쌕 가득히 흙을 담아서 산을 내려오는데 과한 욕심으로 인해서 어깨가 무너지는 것 같이 아팠다.
누가 시켜서 이런 고행을 한다면 원망으로 입이 닷 발은 튀어 나왔겠지만 지가 좋아서 하는 일은 즐겁고 신이 나게 마련이다.
산은 언제 봐도 듬직하다.
이젠 진달래도 수명을 다해서 자취를 감추었고 새로이 돋아난 철쭉이 산을 메꾸었다.
오묘한 자연의 섭리 앞에 그저 몸 낮추고 겸손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임을 산에 오르면서 항상 느끼는 가슴 뛰는 감동이었다.
흙을 만지고, 돌을 밟고, 꽃을 보면은 살아 있음에 대한 고마움을 절실히 느끼기도 했다.
산을 내려오는데 하얀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아.............
내 눈 속에 들어온 건 이 지방 문화원에서 걸어놓은 노천명님의 '어느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라는 시였다.
어느 자그마한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오.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오. ...........
명치에 일격을 받은 것 같은 감동이었다.
타이틀이 준 바늘 끝 같은 따끔거림은 오랜 시간 나를 그 자리에 묶어 두었다.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언제부터인가 목젖이 버석거리며 말라오기 시작했었다.
마셔도 마셔도 축여지지 않을 것 같은 정체 모를 목마름이 또 다른 귀퉁이로 스며들었다.
어느 한적한 곳에서 내 한 몸 옮겨 담을 수 있다면 화려하지 않아도 좋고, 발길 드물어도 가끔씩 찾는 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산을 벗삼고, 나무를 이웃 삼아 도란도란 귓속말 나눌 수 있어도 외롭지 않으리....
해지는 저녁이면 불빛보고 찾아드는 산짐승, 날짐승도 무섭지 않을 것 같다.
자그마한 파도가 일렁이는 마음 추스리며 내려 오다보니 이런 현수막은 군데군데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는데 한용운님의 '님의 침묵'도 보였고 김초혜님의 '사랑굿'도 내 발길을 잡아끌었다.
산에 오르는 이들을 위해서 내건 이 하얀 현수막의 감동은 한 모금 냉수를 목안에 쏟아 부은 것 같은 청량감으로 온몸이 떨려 왔다.
비록 한 폭의 싯귀였지만 전해오는 감동은 어느 유명한 갤러리에서 마주한 이름있는 화가의 작품보다도 더 진한 충격으로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냈다.
한결 가벼워진 어깨의 무게로 콧노래가 새어 나왔다.
'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고...........'
노랫말이 너무 좋아서 팝송보다도 더 어렵게 배운 '가시나무'다.
신문지를 깔고 흙을 쏟아 놓았다.
준비해둔 빈 분 안에 차곡차곡 흙을 집어넣으면서 잘라놓은 행운목 동가리를 곧추세웠다.
조금 큰 건 아직까지 시누이 빽을 앞세우며 말속에 가시를 박고있는 작은 시누이 몫이고,
물 설고 낯 설은 한국 땅에서 열심히 뿌리내리고 있는 필리핀 사촌동서의 것도 하나 마련하고,
앉은자리 풀도 안 나게 검소하게 살림 잘하는 멀리 사는 동서도 하나주고,
화초에 병적인 나에게 가지고 있던 雪蘭을 자진납부 하던 친구 것도 있어야겠고,
나만 보면 하얀 이 드러내며 깎듯이 인사 건네는 이쁜 옆집 새댁도 하나 줘야겠다.
몫을 지우고 나니까 마치 행운을 나누어주는 神이라도 된 듯한 착각을 해 봤다.
그래..
믿든 안 믿든 나무 이름이 '행운목'이기에 난 그냥 행운을 주는 나무를 나누어 준 것뿐이다
각자의 幸은 다들 스스로 만들어 가기 나름이지만 난 그들에게 더 많은 행운을 주고 싶은 맘 하나로 이른 아침에 어깨 아프게 산을 내려 왔는지도 모르겠다.
언제쯤이면 뾰족이 눈을 내밀지 모를 한낱 막대기에 불과한 행운목 동가리 앞에서 금방이라도 씨눈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착각으로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었다.
기다림....
그것은 기다림이 있어야 했다.
기다림 없이는 아무것도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 같지 않았다.
스스로를 가꾸고 만들어 가는 인내심이 곧 행운의 눈을 틔우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