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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시급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오르면 얼마나 오르면 좋을지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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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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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 네일


BY 솔바람소리 2025-07-03

어김없이 새벽 5시가 못 되어 일어나게 되었다. 
해가 길어진 탓인지 닫힌 창 안으로 어슴푸레 제법 빛이 들어오는 7월.
잠들기 전에 쥐어짜듯 방광의 물을 배출시켰지만 2시간 간격으로
화장실을 다녔던 탓에 일어나도 몸이 개운하지가 않았다.
손목 워치가 평소 나의 수면 점수를 40점에서 60점대로 표기했다.
간혹 6시간 이상 잤을 경우 폭죽을 터트리며 8~90점대를 알렸지만 
숙면 정도에서는 경계의 빨간 표시 선을 벗어나지 못했다. 
화장은커녕 대충 씻은 얼굴에 스킨조차 바르지 않는 게으름으로
보내는 요즘, 거울을 들여다보니 두 달 간격으로 들르던 미용실에 갈 때가 
지났음을 항의하듯, 반 이상 뒤덮인 흰머리 뿌리가 푸석하게 제법 올라와 
있었다. 이 머리를 하고서 며칠 전에는 지인들과 만남을 갖기도 했다. 
“편해 보이네? 집에서 노니까 좋지? 부럽다.” 진담과 상투가 뒤섞인 말에
“조금 덜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빼면 좋~지!” 솔직한 마음으로
응대했었다.
 
짧은 커트가 짧은 단발로 변한 탓에 살에 닿는 목 주변이 후끈거려도
참아졌고 제법 올라온 흰머리도 무심히 지나쳤던 나날이었건만 갑자기
여러모로 막연했던 탓이었을까, 나의 몰골이 거슬렸다. 며칠 전부터 켜놓은 
에어컨은 24시간 가동 중이다. 켜 놓은 지 몇 시간이 되지 않았건만 수통의 
물을 반 이상 채운 제습기도 열일 중이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밖을 
나섰다. 하늘에 먼지 묻은 솜사탕 구름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어쩌면 성난 구름이 심통으로 소나기라도 뿌릴지도 모를 날씨에 우산도 챙기지
않았다. 살갗으로 습하고 후덥지근한 공기가 달라붙었다. 머지않아 땀구멍에서
샘물이 솟아나겠지, 뒤늦게 손수건이 생각났지만 뒤돌아가기 귀찮았다.
우선 단골 미용실에 들렀다. 평일에 모습을 보인 적 없던 내가 안으로 들어서니 
어느새 남자 손님의 커트를 마무리 중이던 원장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언니,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백수 됐어요.”
1시간 반가량 수다를 떨다 보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늘 했던 컷트에 그레이 계열의 
에쉬 염색으로 단정해져 있었다. 8만원을 결제했다.
미용실을 나선 후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예전에 자주 다녔던 네일샵으로 발길을
돌렸다. 방문 한지 오래여서 어쩌면 불경기와 수많은 젊은 경쟁자들 속에서 
폐업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향한 곳인데 다행히 열려있었다.
“언니,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반색하던 네일샾 원장에게
“특별해 보이고 싶어서 받았던 건데 요즘은 너도나도 하잖아. 흥미가 없어졌어.
문득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더라. 오늘은 울적한 마음 달래러 들렀어.”
꾸밈없이 대답했다. 
13년 전 우연찮게 들러서 알게 된 곳이 아영이 동창의 엄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이 깊어지는 가을 저녁처럼 스산할 때면 형형색색 화려함으로
물든 손톱이 잠시라도 내게 위안이 됐던 때라 한동안 잘 다녔던 곳이다.
한때는 서로에게 쉽지 않은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던 사이였다.
그곳에서 또 2시간가량을 보냈다.
검은색 젤 위로 흰색 리본과 나비와 진주가 화려하게 수를 놓았다. 
왼쪽 손엔 검지 손톱에, 오른쪽 손에는 약지 손톱에 투명색 섞인 은빛 반짝이 
젤로 포인트를 주었다. 골절 후유증을 앓고 있는 오른손이 멀쩡해 보였다.
열 손가락에 아트가 들어갔기에 7~8만원이상 할 텐데 D,C해서 55,000원을 
받았다. 
 
귀가해서 시간을 보니 오후 2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늦은 점심을 한술 뜨고 책상에 앉아서 다시 노트북의 전원을 켰다. 
좀체 진전되지 않는 막힌 글의 문장 앞에서 썼다가 지우길 무한 반복
하고 있는데 4시가 넘은 시간에 퇴근하는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뭐해?”
“앉아 있어.”
“글 써?”
“기록문을 옮기는 거 같은데...그조차도 못하고 있어. 밖에 나가서 머리 염색하고
 네일아트 받고 좀 전에 들어왔는데 지금은 그냥 앉아만 있는 꼴이지.”
“네일아트? 내가 시켜 준다고 했잖아. 왜 엄마가 했어?”
 
딸은 지역에서는 제법 유명한 개인 카페에서 매니저를 하고 있다. 그리고 시간을 
조율하면서 바리스타 강의를 나가고 있다. 그런 딸이 간혹가다가 1년에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네일샵에 들리곤 했다. 네일에 있어서 시들해졌다던 엄마가 며칠 전 
자신에게,
“엄마 네일 좀 시켜 줘.” 했더니 얕은 한숨을 쉬던 딸이,
“언제로 예약해줄까?” 물었었다.
“너 받던 네일은 가격이 얼마였어?” 
아트 없이 기본 젤 네일만 받던 딸에게 되물으니
“난 싸지. 기본만 하는거라 6만원.” 덤덤히 말했다.
“6만원이 싸?” 놀랬더니
“돈은 작지 않은데 요즘의 시세가 있잖아. 보통 그렇게 해. 
아트 들어가면 비싸.” 그동안 안 받았다고 그 정도도 모르냐는 듯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나중에 시간 정해지면 말해 줄게.”로 마무리 짓던 대화가 있던 후였다.
그랬던 엄마가 자신에게 말없이 네일은 받았다니 의아해했다.
 
“네가 말한 곳은 너무 비싼 거 같아서 민수 엄마한테 다녀왔어. 아트 잔뜩 받고도 
55,000원에 해주더라.”
나의 답변에 ‘아줌마, 아직 하셔? 섬세함이 아쉽지만 싸게 해 주시는 건 맞아.
그런데 아직도 하고 계신다니 대단하시네’로 일단락 짖더니 이내 말했다.
“엄마 나 5억 쓰러 가는데 같이 갈까?”
“5억 쓸 돈도 있고 능력자일세.”
생뚱맞은 딸의 말에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엄마가 사줬던 9년 사용한 노트북이 맛탱이가 갔어. 내일 수업 가야 하는데, 
자료를 사용할 수가 없어. 더는 안 될 거 같아서 지금 이마트 가는 중. 
가격 알아보니까 먼저 핸드폰 샀던 곳이 싸더라구. 엄마도 올래?”
“아냐, 5억 혼자 써. 5억이면 지구를 샀던 것보다는 싸게 먹히네.”
“그치. 지구를 샀던 것보다는 싸지. 근데, 그때 나는 지구를 사는 엄마 곁에서 지구에 
눌린 기분이었어. 하긴 그래도 지구보다는 5억이 싼 거지 ”
 
딸이 19살에 대학교에 입학해서 현재 27살이 됐으니 내 계산이 맞다면
9년이 아닌 8년이 흐른 것으로 안다. 
새내기 대학생 딸에게 당장 노트북이 필요했는데 당시 여윳돈이 얼마
없었다. 그 이유로 막연할 때마다 찾던 엄마에게 부탁했다. 웬일인지 돈이 
없다고 하셨다. 아빠에게 말해보라시기에 군말 없이 주지 않을 것을 각오하고 
말씀드렸다. 벌써 손녀의 입학금 일부를 보태 주신 뒤였기에 염치없는 심정으로
입 떼기가 쉽지 않았다. 50만원을 말씀드리니 역시나 언제까지 그럴 거냐며 
더는 없다고 하셨다. ‘그 새끼’는 뭐하고 혼자 애새끼 끌어안고 고생이냐며 
귀에 딱지 앉는 애들 아빠 욕을 하셨다. 알았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동냥하는 심정으로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남동생 둘에게 전화했다. 
먼저 VIP 블랙카드를 사용하는 사업가 작은동생에게 말했다. 
‘50만원만 빌려줘.’ 나의 말에 이런저런 이유를 대더니 없다고 했다. 끊고서 
당시에는 경위였던 경찰인 큰동생에게 말했다. ‘알겠어.’ 쉽게 수긍하기에 
계좌를 알려줬더니 이내 ‘나는 식구한테 전화가 오면 무서워. 뭔 일 있어야 
전화하잖아. 나라고 돈을 싸놓고 사는 거 아닌 데...’라는 시큰둥한 소리를 했다. 
어쩌다가 내가 가족에게마저 이런 대우를 받게 됐지? 고아처럼 슬펐다.
‘미안하다. 없던 거로 하자, 돈 보내지 마.’ 전화를 끊었다. 노트북을 
며칠째 언급하던 딸이 컴퓨터로 할 수 없는 동아리 과제가 있다며 어느 날 
제 방에서 훌쩍거렸다. 없으면 안 쓴다는 신념으로 신용카드는 만들지조차 않았다. 
나라의 지원을 받을 자격이 안 된다기에 도움을 받아 본 적도 없었다. 
아영이가 알바로 제 용돈 벌이는 하고 있었지만 대학 입학 전부터 입학 후까지 
관련된 학원비와 부수적인 지출이 많을 때라서 노트북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내 쪽팔림보다 딸의 불우한 심정이 헤아려지기에 다시
대학 입학하는  자신의 딸을 위해서 친정이나 시댁에서
너도나도 노트북을 사준다고 난리였기에 제비뽑기까지 했다는 근처에 사는 친구에게
마지 못해 전화했다. 차마 아영이 노트북을 사려는데 돈이 부족하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처음인 부탁에 고맙게도 바로 입금을 해주었다. 
이어서 돈이 없다던 아빠에게 백만 원, 큰동생에게 50만원이 들어왔다. 
아빠와 동생의 돈을 다시 돌려보냈더니 이윽고 재입금이 되었다. 곧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한풀 꺾인 목소리로 준거니까 그냥 쓰라고 하셨다. 
동생에게는 문자가 왔다. -노트북 사는데 그냥 보태. 아영이 선물이야.-
 
시렸던 손보다 마음이 극지방이었던 그날 노트북을 사서 딸에게 건네주면서 
그 감정을 고스란이 들어내고 말았다.
“이 노트북 사는데 지구를 산 것처럼 힘들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보란 듯이 잘살아야 해!”
그날 아영이는 통곡을 했다. 노트북 필요 없다고 울고불고 건넨 노트북을
한쪽으로 밀어내기도 했다. 그날 딸의 방문을 닫고 나오면서 내가 아빠와 
남동생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후회됐다. 퇴근 후 딸의 방문을 열어보니 
노트북이 없었다. -그날 딸은 지구에 억눌린 심정으로 그 얇고 가벼운 최신의 
사양 좋은 노트북을 들고 나갔나 보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아빠와 동생에게 받은 돈을 돌려줬다. 그날 이후 친정에 
돈을 얘기한 적이 없었다. 
 
두 달 전쯤 딸이 내게 노트북이 이상하다고 했던 후부터 줄곤 기분 좋은 
마음으로 장만해줄까, 갈등하기도 했다. 하지만 독립을 꿈꾸며 4월에 
분가한 딸의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함도 있지만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앞으로 나밖에 없다는 현실을 직시했기에 모른 척하고 있었다.
하얗게 예쁜 내 손에서 젤네일이 화려하게 빛났다... 슬프게도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