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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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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동기부여(1)


BY 솔바람소리 2025-06-29

21년쯤 3월인지, 아니면 9월쯤이었을지 기억이 확실하지가 않다.
하지만 며칠째 밤낮없이 비가 내렸다.
해가 하늘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기라도 한 듯 낮에도 어둑했고
그렇기에 습하기만 했던 날씨만은 기억에서 뚜렷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고객들의 성향이 평소보다 까칠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긴장과 집중을 필요로 했다.
오후 4시가 넘었을 무렵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 일어서면서 무시했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낯선 부재 번호를 확인하게 되었다.
잘못 온 전화인가? 잠깐 든 의문이었지만 곧 신경을 끊고 업무를
시작했다. 한 시간쯤이나 흘렀을까, 보조 책상 한쪽으로 치워놓았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용건이 있다면 부재중 이후라도 문자가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의식했기에 느낄 수 있던 진동이었다.
 
업무 중에는 보안을 이유로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어서 무시했다.
멈췄던 진동이 다시 울리기에 확인하니 부재중으로 확인됐던 번호였다.
 
”여보세요?“
”엄마...저에요...“
 
6년 동안 연을 끊었던 아들의 목소리였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귀에서 쿵, 울림이 있었다. 순간이 잊혀지질 않는다.-
큰일이 났구나. 불안으로 100미터를 10초에 달린 듯 숨이 차는 듯 뛰었다.
 
”얘기해.“
마감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밖을 나가기 어려웠다.
주변을 향한 의식으로 목소리는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엄마...연미가 죽었어요...저 **경찰서에 있는데...와 주실 수 있으세요?“
”!!!.....“
”엄마?“
”6시10분에 퇴근하니까 이후에 통화하자.“
”네...“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던한 노력이 필요했다. 아찔함으로 현기증이
일기도 했다. 퇴근 후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주머니 안에 있는 핸드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동료들과 지하철역에 도착하기까지 받지 못했던 핸드폰에서
3번이나 더 진동이 있었다. 확인하지 않아도 아들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낯선 사람들만 가득한 지하철에 탑승하고 나서야 4번째 진동에 통화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엄마...죄송해요...“
”뭐가?“
”이런 이유로 전화 드려서요...“
”......“
”엄마...?“
”듣고 있어. 말해.“
”저...연미랑 동거했었어요...싸웠는데 집을 나갔는데...죽었다고...아침에
경찰이 찾아 왔어요...지금 경찰서에 연미 가족들이 잔뜩 와있는데...
저를 죄인 취급하고...연락할 곳이 없어요...무서워요...“
”때렸니?“
”말다툼한 건 맞는데 때리진 않았어요... 자격증 때문에 연미가 공부하는
것이 있었는데 몇 번 떨어졌었거든요. 집중하지 않아서 잔소리했고
말다툼은 했지만... 마무리는 잘했어요...큰 싸움도 아니었는데...
한 시간 후에 테스트하기로 했는데...제가 깜빡 잠이 들었어요.
일어나보니 연미가 없어서...갈 만한 곳을 모두
찾았는데 없었어요...가출을 자주 했지만 평소와 달리 불안해서
어제 112에 상황을 설명하고 신고했었는데... 그런데...아침에 경찰이...
연미가 모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엄마...저 어떡해요...? 무서워요...“
”그럴수록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 연미 가족들에겐 네가 원인
제공자일 테니 힘들겠지만 뭐라고 하든 다 들어주고 때리면 맞아. 그건 성인인
네 몫이야. 누가 뭐라고 하든지 정신 차리고 사실만 말하면 돼. 집에 들렀다가
갈테니까...기다려.“
”엄마...철영이 삼촌한테 전화해봐도 될까요?“
외가에서 저를 괘씸하게 여기고 있을 것쯤은 짐작할 텐데 막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나와 나의 바로 밑 남동생이었나보다.
”그동안 연락 끊었다가 그런 이유로 연락하면 좋은 소리 듣겠어? 그건
네가 알아서 해“
 
울먹였다가 진정하고 다시 울음을 터트리면서 아들이 두서는 없었지만
요점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노력하는 목소리가, 그 단어들이 내게
가슴으로 뇌리로 비수 되어 곳곳으로 꽂혔다. 말하는 녀석이나 듣는 어미는
지옥의 한 가운데 놓인 듯 고통이었고 벼랑 끝에 서 있듯 위태로웠다.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도서부원을 하면서 1년 선배인 연미를 알게 되었다.
당시에 ‘누나’라는 호칭의 아이에게 아들은 자주 무언가를 얻어먹었고
차고 다니는 전자 손목시계를 비롯한 학생으로서는 과한 씀씀이의 선물들을
받기도 했다.
그 누나라는 아이의 오빠는 일찍이 가출을 했고 현재는 아빠와 3번째 새엄마와 살고
있다고 했다. 2번째인지 3번째인지, 새엄마에게 많이 맞았고 머리가 찢겨서
피도 났으며 상처가 있기도 하다는 누나는 일찍부터 아르바이트로 자신의 용돈을 벌고
있다고 했다. 아들은 그 누나가 불쌍하고 예쁘고 책임감 있다고 했다.
당시에 아들에게 말했다. 선배 이상의 감정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언젠가 아들이 연미인 누나와 사귀는 중이라고
했다. 결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내 삶의 바탕이, 경험이 오히려 강한 반대를 한다면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구나.’ 덤덤히 대꾸만 했었다.
아들은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제 엄마가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의 동의하에 연미를 여러 번 집에 데려오기도 했다. 160cm가 훨씬 못
미치는 키의 아이는 목소리만큼이나 몸도 가녀렸다. 어깨 아래로 조금
내려오는 검은 머리의 작은 아이는 내 앞에서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고
천상 여자처럼 조신했다.
연미는 제 아빠가 얼마 전부터 함께하게 됐다던 4번째 새엄마와 공주로 내려가서
밤 농사를 짓게 됐다고 했다. 가출했다던 2~3살 터울의 오빠는 일찍이
가정을 꾸려서 아빠가 됐고 간혹 만나기도 한다고 했다.
현재는 혼자 서울에 남아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제일 의지가
되는 고모에게서 김치와 같은 반찬들을 얻어먹고 있다고 했다.
차차 연미의 방문이 있을 때마다 만들어 놨던 반찬들을 챙겨주게 되었다.
내 아이들의 옷을 살 때 간혹 연미의 옷을 구매해서 입히기도 했다.
하지만 직장 내 숙소에서 기거하는 아들이 한 달에 몇 번 들르는, 거의
분가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연미와 들를 때마다 둘에게 했던
당부를 일깨우듯 나는 냉정함을 유지했다.
 
”성인이지만 니들 아직 어려. 서로에게 책임질 행동은 하지 말고
예쁘게 만났으면 좋겠어. 엄마는 아빈이 네가 서른이 될 때까지 누구와의
결혼도 허락할 수 없어. 각자 열심히 살면서 경제력을 키워. 그때까지
너희 사이가 변함없다면 결혼도 허락해. 하지만 그 안에 아이가 생긴다거나
하는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진다면 엄마는 너를 보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