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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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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동기부여(2)


BY 솔바람소리 2025-07-01

눈치가 빨랐던 연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식보다 더 상냥하게 대했던 
남자친구의 엄마였지만 둘의 만남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어미의 우려에도 아들이 22살 무렵 미연이와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길 바랬다. 마음 귀퉁이 한켠으로 툭툭 불거졌던 
불안이 기우이길 바랬다. 하지만 이번에도 여지없이 예감은 어긋나지
않았다. 조심한다고 비켜 가지 않았던 고비들, 예지력과 같은 나의 예감은 
저주에 가까웠다.
 
아들의 180cm가 넘는 키에 보기 좋던 체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불규칙한 식사와 술자리 탓인지 체격이 급격히 불어나기 시작했다. 
아들이 손가락을 살짝만 튕겨도 나뒹굴 작고 왜소한 연미, 그 아이에게서 
나의 아들을 지켜내고 싶었다.
어느 날, 어떤 회유에도 흔들리지 않던 제 엄마에게 아들이 물었다.
 
”엄마는 누나가 왜 싫은데요?“
”개인적으로 싫어할 이유는 없지. 착하잖아.“
”그런데 왜 그러세요?“
”너와 연관되는 것이 싫은 거야. 너도 온전한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지만 연미는 너를 뛰어넘었어. 그 상처를 너는 절대 감당하지 못해.“
 
아들 역시 부모의 온전한 사랑 속에서 자라지 못했다.
자신의 욕심 앞에서도 때론 물러설 수 있는 양보와 
가치관과 어긋나는 상황에서도 발휘될 수 있는 이해와 
자신의 상처보다 상대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사랑을 
나조차 지니지 못한 그 마음을 학습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아들의 됨됨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어미는 결코 허락할 수가 없었다.
 
”누나는 제 말에 꼼짝도 못해요. 제 트집에도 화내기 보다 이해를
시키려고 한다구요.“
”눈치 보며 나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지만 움츠림 속에 품은 분노가 보여.“ 
”엄마의 선입견이에요.“
”네가 네 삶을 사는 거니까 알아서 할 일이지만 서른 안에 네가 가정을 
꾸린다면 나는 아들이 없다고 생각할 거야.“
”그런 억지가 어딨어요?!“
 
한동안 우리 모자의 대화는 줄다리기처럼 팽팽했다. 
그렇게 또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누나랑 헤어졌어요...이번엔 진짜에요...고집이 쎄요...엄마 말대로
우린 안 맞는 거 같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힘이 들까요...저 잘한 거죠?’
 
그동안 저희끼리 몇 번의 이별이 있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아들의 힘겨움이
고스란히 전달 되어 나 역시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필요하겠지. 잘 이겨내. 너희는 인연이 될 수 없어. 
서로에게 맞는 인연이 있을 거야.’
 
아들을 위로했지만 ‘이번엔’이라고 했던 말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부디 ‘이번엔’으로 마무리되길 바라는, 순간 나의 간절했던 마음이었다. 
힘겨울 때면 아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연락을 해왔다. 
그간 뜸했던 연락을 만회라도 하듯. 그때도 한동안 그랬다. 
‘엄마 통화 가능하세요?’로 시작했던 말이
카세트의 재생 테이프를 틀어 놓은 듯 같은 대화가 오고 갔었다.
그리곤 또 연락이 끊겼다. 마음에 안정을 찾았나, 다행이다 싶었다.
 
대부분 나 혼자 해결했던 살림이지만 남자의 손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
때마다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했다.
며칠째 변기가 물 내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견뎌 보다가 연락이 없어진 아들에게 전화했다.
 
”일하는데 왜요?!“
첫마디부터 퉁명했다. 
”바쁘지...? 집 변기에 물이 차질 않아. 시간 될 때 잠깐 봐줄래?.“
”사람 불러요. 왜 자꾸만 그런 일로 바쁜데 오라 가라 해요?“
냉랭하고 시큰둥했던 아들의 말투가 여간 섭섭한 것이 아니었다.
”남의 집일이야?! 사람 부르면 나도 좋지. 아영이 학원비랑 집 생활비만도
쉽지 않은 엄마 사정 몰라?!“
”왜 소리를 질러요?!“
 
태생이 목청 컸던 제 어미에게 못지않게 퉁명한 큰소리로 아들이 말했다.
 
”엄마가 저한테 해 준게 뭔 대요? 저한테 보여준 게 뭐에요?!
아빠랑 싸우면 죽겠다고 3층에서 뛰어내리고 손목이나 긋는 모습이나
보여 줬잖아요? 저는 엄마가 아빠 험담하는 소리만 들었을 뿐이지,
아빠가 저희에게 나쁘게 한 기억이 없어요!“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아들의 입을 통해서 쏟아져 나왔다. 가슴이 쩌억, 하고
갈라졌다. 표현할 수 없는 통증이 느껴졌다. 순간 입안에서 침이 바싹 말랐고 
삼킬 수조차 없었다.
 
”뭐?!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한 거야?!“
 
겨우 쥐어짜듯 뱉어낸 말이지만 그래도 그때까지는 힘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이 통화 스피커라 직원들이 다 듣고 있는데 왜 화를 내냐구요.“
 
-무엇에 마음이 상했던 것인지 그날의 아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퉁명스러웠다.-
어딘가에서 띵, 하고 고무줄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 몸에 연결됐던 
모든 관절의 힘줄들이 끊겨나간 듯 몸조차 가누기 어려웠다. 아들은 콩가루 
가정에서 살아온 자신의 상처를 그 고통을 온전히 어미의 탓으로 만천하에 
고하고 싶었던 걸까. 그 순간 밀려들던 여의도 한복판에서 벌거벗겨진 듯한 
수치스러움이 나만의 것이었을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 통화가 스피커였다고...? 직원들 있는 회사에서 그런 식으로 말을 했다면 
나를 어미로 여긴 게 아니지. 여태 그런 마음으로...살았다고...나한테 너 같은
아들 없어. 잘 살아라.,,“
 
말할 때마다 마른 입안이 달라붙었다. 겨우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는데 
울음이 터졌다. 앉아 있던 안방 침대의 벽면에 기대어 이불을 품고서 
몇 시간을 울었는지 모르겠다. 울다가 지쳐서 멈췄다가 다시 울분으로 토해 낸 
울음이...몸 안의 모든 피가 눈물 되어 흐르는 듯 눈에서 계속 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마른 입에서 꺼이꺼이 소리가 멈춰지지 않았다.
 
”엄마?! 왜? 무슨 일이에요?!“
 
학원을 마친 고등학생 딸이 들어 왔는지 몰랐다. 그만큼 시간이 깊었는지도 
몰랐다. 좀체 본 적 없는 엄마의 대성통곡 앞에서 당황한 딸이 걱정으로
‘엄마’를 불렀지만 나의 울음은 멈춰지지 않았다. 
 
”내가...어떻게 살아 냈는데...내가 너희를...어떻게 지켜 왔는데...
보이면 안되는 모습...보였지만...그게 니들에게...상처였겠지만....그건 
나도 미안한데...작정하고 준 상처가...아닌데...그래도...난...저희... 때문에...
살아 냈는데...나한테...아빠를 험담.,,했다고...제 아빠를...원망하라고...
한 적은 없지만...어떻게 그런 말을...많은 직원들...있는데서...스피커로...
말을...하니...나는...이제...아들이...없어...내가...여태...뭐하고 산...거니...“
 
손을 잡고 어깨를 어루만지는 어린 딸 앞에서 지켜왔던 자존심을 어쩌고 
부끄러움도 없이 흐느끼며 말을 했다. 그 사이 딸이 엉망이었을 어미의 
몰골을 정리하듯 휴지로 입과 눈과 볼을 닦아 주었다. 진정하라며 물이 담긴
컵을 입에 가져다 대기도 했다.
 
”오빠가요?“
흐느낌과 울분으로 두서없었을 텐데도 딸이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엄마...오빠가 미쳤나봐요...제 정신이 아닐거에요.“
 
대학입학 전까지 딸은 내게 경어를 썼고 살가웠다.
 
”나는...어떻게... 살아야... 하지?...나한테..이제...아들이...없어...외가집에...
뭐라고 하지...? 부끄러워서...어떻게 살지...? 살아야...하는데...난...잘 살아야...하는데...
어떻게...살지?“
흙탕 된 마음이 시간이 흘러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부은 눈으로 출근할 순 없는데 
눈물과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엄마...제가 있잖아요. 오빠가 무슨 일인지 몰라도 잠깐 미쳐서 그랬겠죠.
곧 정신 차릴 거에요.“
딸의 말이 위로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