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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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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의 영혼으로 남은 어머니


BY 최지인 2005-04-06

 

 

작가 : 최지인
 

식목일,

가족끼리 나들이 삼아 시부모님이 누워 계시는 선산에 다녀왔다.
 

양쪽으로 완만한 산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앞으로는 작은 시냇물이 찰찰찰 흐르는,

하루종일 따뜻한 볕이 드는 양지 쪽 당신들만의 보금자리.
 

생전의 어머님은 유난히 꽃을 좋아하셨다.

덕분에 사계절 내내 집안 곳곳에선 꽃향기가 진동을 했다.

하루의 시작을 화분에게 물을 주시며 말을 건네는 것으로 시작하셨던 어머니는

봄꽃 흐드러진 사월이면 젖먹이 손녀딸을 들쳐업고 이리저리 다니시며 자연을 호흡하셨다.

힘드신 줄도 모르고 손녀딸에게 조곤조곤 계절의 꽃향기를 일러 주셨던 분이다.
 

그래서일까.

말없이 자식들을 굽어보는 당신의 묘소 주위엔

이름 모를 예쁜 들꽃들이 아득할 정도로 무더기로 둘러싸듯이 피어 있었다.

 

들꽃들도 영혼이 있어

진정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알아주는 어머님 주위에

유달리 옹기종기 모여 있었던 건 아닐까.

불현듯 깨달음처럼 일어서는 생각에 오래도록 쪼그리고 앉아

처음으로 그 들꽃들에게 고맙고 감사하다고 진지한 마음을 건네어 보았다.
 

우리 시대의 어머님들이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늘 자신은 희생만 하시고도 자식들에게는 끝없이 주고만 싶어하셨던 분.

그 신산스러운 삶의 이력에 찌그러지고 탈색되었을 속을

꽃들을 어루만지며 당신의 모든 속앓이를 가만가만 풀어내시는 것으로 다스렸음을

이젠 나도 두 아이의 엄마라는 길을 가면서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 생전에 늘 입버릇처럼

" 난 죽어서 공동묘지 갈 거여. 친구가 많아서 심심하지도 않고 좋을 것 같구나".

하셨던 어머님. 내 땅 두고 다른 곳에 보내고 싶지 않다는 아버님 뜻에 따라

선산에 모신 것이 늘 자식들 마음에 걸렸었는데 탐스럽게도 무리 지어 피어서

소곤소곤 당신의 말벗이 되어 주는 들꽃들 덕분에 조금은 마음의 짐이 덜어진 듯하다.

 

이젠 아버님도 나란히 곁에 누우셨으니

생전에 늘 무덤덤 소원해 보이던 두 분 사이의 못다 한 속정이

따신 강물처럼 오가겠거니 위안도 삼아 보았다.
 

어디 좀 데리고 가려면 빌다가 윽박지르다가 해야 발을 떼는 딸애는

할머니께 가자는 소리만은 속이야 어떻든 아무 소리 없이 샐쭉하니 따라나선다.

17개월 때까지의 할머니 등에서 익혔던 그 따사로운 기억이

아직까지 온통 정신을 지배하는 정서로 남아있을 수 있음을

늘 신비스럽게 확인시켜 주는 아이다.

 

아무 거짓 없는 순수함만이 강하게 흡수되었을 어린 가슴에

할딱이며 받아들였던 예민한 감성의 촉.

그 아름다운 교감의 잔상들이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보이지 않는 줄이 되어 딸아이와 어머님을 연결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할머니, 저 매일매일 할머니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거 아시죠?

제가 이만큼 컷다고 저 못 알아보시는 것 아니시죠?

이젠 할아버지도 계시니까 외로워하기 없기예요".

생전에 눈에 넣고 다니던 손녀딸이 벌써 중학교 3학년의 어엿한 숙녀가 되어

들꽃으로 꽃다발을 만들어 당신 앞에 놓아 드리며 했던 말을 들으셨을까.

아직도 할.머.니.라는 단어 앞에선 턱없이 울먹울먹

파란 그리움 덩이를 쏟아내는 저 아이의 속울음을.

할머니의 봉분 위에 돋은 작은 풀도 꼼꼼하게 뽑아 내는 딸애를

눈치채지 못하게 슬쩍슬쩍 훔쳐보며 가슴속이 저릿했다.
 

건강하시던 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신 건 평소 지병으로 달고 계시던 고혈압을

손녀딸의 재롱에 그만 소홀히 했던 게 화근이었는지도 모른다.

늘 챙겨 드셔야 할 약을 손녀 딸 업고

매일매일 찾아가야 할 곳에 정신을 쏟으시다 깜빡 며칠 잊으신 후에 얻은 뇌졸중으로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신 어머님이이시니 말이다.

 

오늘은 뒷산 벚꽃, 내일은 하얄리야 부대 앞 벚꽃,

그 다음 날은 온천천 둔치 벚꽃...달력에 표시까지 해 두시며

손녀딸에게 그렇게도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았던 어머니.

당신의 가실 날을 미리 알기라도 하셨는지 바쁘게 일상을 스스로 조여 가시던 분.

"함니, 어부바 안 하끄야. 언능 내여(내려)와. 여기 밑에 내여 와"

안 방 화장대 위, 한 장 사진으로 남은 할머니를 쳐다보며

두 돌도 안 된 어린것은 먹지도않고 계속 울어댔다.

 

문상을 왔던 동네 사람이
 

"혈압도 높은 사람이 손녀딸 업고 그렇게 하루종일 돌아다닐 때

내 저러다 저 사람 무슨 일 나지 싶었다. 원 아무리 손녀가 좋아도 그렇제.

어찌 제 몸 간수는 그리 뒷전이었던고"

라는 말이 어린 아이에게 가 박힐 거라고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자신을 너무 많이 업어서 할머니가 돌아가신 거라고

지금까지도 자신 안에 스스로 만든 죄목을 하나 덧입혀 살고 있는 딸 애.

 

사람에게 정해진 하늘의 이치를 이해하기에는

딸애에게 만들어진 고정된 틀은 턱없이 견고한 것이기에

살면서 조금씩 터득해 갈 삶의 지혜로 남겨두어야 하리라.
 

처음엔 어머님이 혹여 외로우실까 일부러 일을 만들어서라도

가족들이 자주 찾아오곤 했었는데 아버님까지 같이 모셔놓고서는

'이젠 두 분이 함께 계시니까' '살아 생전에 효도이지 가시고 난 뒤까지야..

내 사는 게 바쁜데..' 란 변을 삼아 자식들의 정성을 다소 소홀히 했었던 게 사실이다.

아니, 어쩌면 일 년에 두 세 번 찾아뵙는 일을 의례적인 행사쯤으로 여겼거나

다분히 나들이의 개념이 더 강했었다는 게 솔직한 표현이다.
 

하지만 이번 식목일,

묘소 주변 잔잔한 들꽃 무더기들과 딸애의 행동을 바라보면서

모두의 가슴속에 남은 여운은 부모님에 대한 새로운 마음가짐과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햇살 가득한 산자락에서 준비해 간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내려오다 밭 두렁에서 통통하게 살이 오른 쑥도 제법 캐었다.

떡 두어 되는 실히 해먹을 양이다. 조만간 이웃이랑 떡 파티 한 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