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까지 친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키가 많이 크시고 서구적 미인이에다 늘 책을 가까이 하시고 손주들에게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해주시던 분이셨다.
16세에 시집을 오실 때 이미 골초시라 허리춤에 곰방대를 차고 몸종까지 거느리고 거창하게 등장하셨다고 했다.
친정이 어마무시한 부잣집에서
양반에다 전답도 많은 고래등같은 기와집으로 시집을 오셔서 몇년은 손끝에 물 안 묻히시고 사셨단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께서 아버지 어릴 적부터 수수꺼꺼대같은 뻣뻣한 마누라 버리고 기생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딸도 하나 낳는 바람에 집만 남겨놓고 가산을 탕진하고 할아버지께서는 일찌감치 생을 마감하셨다.
그 화를 엄마가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할머니께서는 지독한 이기주의자로 아버지는 군 복무 중이시고 먹을 것이 떨어지면 6살짜리 딸도 저버린 채 친정으로 가셔서는 기약없이 쉬다가 오셨단다.
할머니는 기생이 낳아 버리고 간 큰고모가 아홉살 때 젖먹이 간난쟁이 작은고모도 나몰라라하고 친정에 가시면 큰고모는 쌀을 끓여서 작은고모 입에 넣어서 키우셨단다.
엄마는 그런 시어머니에 동네에 소문난 이간질에 싸움쟁이 작은고모에 사촌시누까지 함께 사시면서 다섯아이를 키우셨으니 오죽 했으랴마는 시어머니의 만행을 최근까지 함구하고 사시다가 슬슬 풀기 시작하셨다.
엄마 당한 건 이루 말을 할 수가 없다.
인간이 인간에게 차마 그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다.
서울에 갓 취직해서 언덕배기 단칸방에서 물 길어먹고 살던 시절 손녀가 태어났는데 아버지도
시골서 잠깐 오신 할머니도 물을 길어오지않아 산모가 새벽에 물길러 다녔단다.
먹을 것도 없이 있는 와중에 딱하게 여긴 동네사람이 닭을 한마리 산모 끓여먹이라고 주셨는데 엄마는 국물 한방울도 못 얻어드셨다고 했다.
우리가 행여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나빠질까봐 그런 일화들을 꾹 참고 사셨단다.
나 또한 엄마 못지않은 시집살이를 하였으나 우리 애들은 할머니 만행을 모른다.
나는 제발 언제 만날지 모르는 두 며느리에게 전철을 밟지않도록 지극히 조심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