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전까지 은행권 카드사의 텔레마케터 마케팅부서에서
7년가량 있었다.
120명가량씩 4개의 업체가 경쟁하는 구조였다. 부서마다 시간별로 순위가
메신저로 전달됐다. 2개의 모니터로 고객의 기본정보를 확인하면서
주어진 업무의 가입을 시켜야 했다. 업체 순위와 실적 순위로 급여가 정해졌다.
일별로 현금이나 상품권이 주워지는 프로모션도 있었다.
금강원이나 정보 보호법을 준수하면서 실적을 올려야 했다.
한 달을 시작하는 첫날이면 QA라고 해서 지난 달에 규칙을 준수해서 업무를 했는지
개인별로 무차별적 날짜에 녹취록 평가에 대한 점수가 전달됐다.
입사 초기엔 상의권자들의 QA가 낮은 것이 당연시되기도 했었다.
업체 순위를 빌미로 업무시간 20분 초과근무가 비일비재하기도 했다.
나이 어린 팀장이 업무 중에 제 엄마뻘인 팀원에게 큰소리로
면박을 주는 것이 묵인되기도 했다. 모두 뒤에서 투덜거릴 뿐 나서서
뭐라는 사람도 없었다. 용납이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면접을 이유로 또래로 보이는 매니저와 마주했을 때 여러 질문에
막힘 없이 대꾸했다. 면접이 끝날 무렵 매니저에게 말했다.
”저 역시 이곳을 면접 중입니다. 카드사 마케팅은 처음이라 배우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일방적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믿고 따를 수
있는 곳이라면 욕심만큼 타의 모범적으로 일할 자신 있습니다.“
당시 매니저는 놀란 눈을 감추지 못했었다.
입사 이틀 후부터 나의 이름은 상위권에 있었다. 20일쯤 됐을 무렵,
풍문으로 듣던, 동료들이 제일 꺼리고 어려워하던 부서로 옮기라는 팀장의
통보가 있었다. 갑작과 당황이 뒤섞여 화를 부추겼다.
”매니저께 분명 말씀드렸어요. 일방적이지 않길 바란다고. 이제 업무가 익숙해
졌는데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옮기라니, 이런 식 통보면 못 다녀요.“
”협박하세요?“
”협박으로 들려요? 여태 살면서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만!“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되받아치니 팀장이 말을 더듬었다.
”...저야 **님 같은 분이 팀에 있어 주시면 좋죠. 하지만 **부서의
부매니저님이 **님 같은 분이 필요하다고...하셔서...우선은 가서 해보시고
못하겠으면 다시 옮겨 달라고 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결국, 업무 난이도가 높은 곳으로 옮기게 됐다. 결과를 만들어 내고 그만둘지언정
어렵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보름 정도 업무를 파악하기까지
부매니저겸 팀장과 몇 번의 부딪힘이 있었다. 고객 응대에 도입이 길다,
포기가 빠르다, 스크립트 순서 대로 해야 한다, 등등...
두 번은 수긍했지만 결국 참을 수가 없었다.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거에요? 고객 성향과 능력이 전산으로 보이는데
쓸데없이 잡고 있어요? 나도 귀가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지금 스크립트
준수하며 일하고 있는 거 맞아요? 실적 올리라면서 사사건건 트집이고!
여긴 인격도 없어요? 팀장이라는 사람들이 업무 분위기
조성은 못 할망정 고객하고 통화하는데 강압적으로 팀원 잡는 소리 때문에
해드셋 가리면서 일하는 게 맞는 거냐구요!“
팀장과 몇 번의 실랑이가 있었다. 그 후 관리자들은 나를 건들지 않았다.
실적을 이유로 QA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 업무시간을 5분씩 일찍 시작하고
QA를 준수하는 내게 동료들이 탓하기도 했다. 상의권자가 모인 부서라
대부분 성향과 자부심이 강했다. 물론 텃새도 심했다.
쉬는 틈틈이 저들끼리 모여서 수다를 떨었고 간식을 나누기도 했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그들 수다의 대부분은 능력 있는 남편과
학벌 좋은 자녀들이 있었고 몇 채의 건물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들고 다니는 가방과 옷은 몇 달의 급여로도 구입하기 어려운 명품
브랜드라고 했다.
집에 있기가 무료해서, 해외여행 경비나 쇼핑의 충당을 이유로 직장을
다닌다고도 했다.
그들의 허세와 텃새는 생계를 쫓는 나의 멘탈에 1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상위권 중에 QA 만점은 4업체 중에서 나만이 유일했다.
업무 2시간 전에 출근했고 20분 추가 업무를 참여한 적도
없었다. 정확하게 칼퇴를 지켰다.
나의 험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차차 그 말을 전해주면서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히려 경계가 되는 그들에게 말했다.
”나라님도 욕먹는 판에 전들 별수 있나요? 하지만 몰라도 되는 말
전해주는 것이 감사하지는 않아요..“
초반에 더욱 경우에 어긋나는 상황에 있어서 지위, 나이, 성별을 막론하고
앞에서 짚고 넘어갔다.
나는 입사 6개월 만에 우수사원 표창장을 받았다. 이례적이라고 했다.
달에 한번 매니저가 우수사원들에게 밖에서 점심을 제공했다.
나는 때마다 식사가 끝나면 불필요하게 앉아 있기 싫어서
먼저 가겠다며 일어서곤 했다.
시간 틈틈이 정서 안정에 도움이 될만한 독서를 했고 점심과 오후 휴식시간에는
1층부터 15층 건물을 올라다녔다. 나의 루틴에 어긋남이 없었다.
오히려 통화가 길어져서 쉬는 시간을 놓쳤을 경우에는 팀장이
”계단 다녀오셔요~!“ 제의를 했다.
언젠가 매니저가 내게 말했다.
”처음엔 **님이 저를 무시하나 했어요. 하지만 늘 정확하시고 시간을
허투루 쓰시지 않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대단하세요,“
7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타 업체에서도 나의 업무녹취가 교육자료로 쓰였다.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동석으로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점차 추가 업무가 사라졌고 실적을 이유로 무시됐던 상위권자들의
QA가 강화됐다. 관리자의 언행도 신중해졌다. 거르면서 친해진 동료들도
여럿 생겼다.
해마다 카드사에서 하위권 업체를 줄이거나 인원을 감축시켰다.
쳇봇이 도입되면서부터 예상은 했었던 부분이다.
4업쳬가 3업체로 감축되었고 남았던 3곳의 업체마저
인원을 반이나 감원하더니 현재는 한 업체만 마케팅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그것도 20여명 남짓 남았을 뿐이다.
나만의 삶에 대한 틀을 잡았고 어긋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가했던 챗직이 곳곳에 멍을 남긴듯하다. 잘 살아왔다고 자부했던
것들이 결국 자만이었고 아집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 몇 가지
이유가 어쩜 나는 모래 위에 성이 아닐까, 싶다.
아직 꺼내지 못한, 결국은 꺼내 놓게 될 나의 이야기가 버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