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말도 조렇게 조용조용 조신하고 얌전하게 하냐? 천상 여자다."
내가 나보다 나이든 여자들에게서 가끔 듣는 말이다.
"선생님은 티비에 나오는 요리선생 같아요.'
내가 가르치던 아이들이 한 말이다.
그 때 티비에는 누가 봐도 현모양처형의 여자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요리를 가르치고 있었다.
"당신은 전화 받을 때 목소리에 가식이 섞인 것 같아."
남편이 한 말이다.
내게 조금은 충격이었지만 일리있는 말이었기에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말이기도 하였다.
수화기를 들기 전에 나는 차분하고 느릿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숨을 고르는 사람인 줄 내가 아니까...
"어쩌면 첫인상하고 그렇게 다를 수가 있어요?"
이 말 역시 가끔 듣는 말이다.
지금은 이런 말을 듣는 기회가 줄었지만 젊어서는 정말 많이 들었다.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새침하고 얌전하고 깔끔하다고 생각한단다.
나중에는 속았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로...
우리 엄마의 교육이 만들어 낸 나다.
이조시대 여인상의 전형이라 할 만한 우리 엄마는 누가 봐도 현모양처였다.
친척들 모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여자였고, 효부상을 받기도 한 여자였다.
울 엄마는 딸들도 자신처럼 행동하고 말하도록 가르치려고 애썼다.
목소리가 높아서도 아니되고, 웃을 일이 있을 때는 조용히 미소만 짓고, 어른들이 말하는데 끼어도 아니되고, 절대 말대꾸하면 안되고, 어른이 말하면 무조건 네 하고 대답하고, 말이 빨라서도 아니되고, 다른 사람이 말할 때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아도 아니되고, 남의 집을 방문하면 부엌으로 먼저 가야 되고, 춤이나 노래를 좋아해서 안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서로 언니 동생하면서 희희덕거리는 것은 상스럽고,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고,...
우리 엄마 덕분에 나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나는 교양있는 여자 소리를 듣는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울 엄마 교육이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었다.
여고시절 내 꿈 중의 하나는 거지가 되는 것이었다.
엄마를 통해 본 세상은 구속이 너무 많아 벗어나고 싶었다.
거지가 되면 세상의 모든 예의, 체면, 관습등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게 영어를 가르치던 미국 여선생이 그랬다.
자기는 미국여자지만 나처럼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을 보지 못했노라고...
내가 숙제로 내는 글을 통해 본 나는 미국여자인 자기도 감히 생각하지 못할 자유로운 사고를 하고 있다고...
우리 엄마의 교육이 내 겉 모습은 가르쳤지만 타고난 본성까지 어쩌지는 못한 모양이다.
나는, 품위가 있다, 기품이 있다, 권위가 있다, 이런 말들을 속물 근성이 있다는 말로 이해한다.
누군가 나를 칭찬하면, 알맹이 보다 포장이 지나치게 화려했구나, 두 얼굴을 보여주었구나, 이렇게 이해한다.
부귀나 지식이나 명예를 가진 사람은 죄에 대한 유혹이 많겠구나 이렇게 이해한다.
지금도 나는 사람들과 어울려 노래를 한다거나 춤을 추거나를 못한다.
나이 오십이 넘어도 그런 일들이 부끄러워 차마 못한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도 언니나 동생으로 호칭하지 못한다.
상스러운 말이 아닌 것을 이제 알지만 그런 단어는 마음 속에서만 맴돌지 내 목울대를 넘지 못한다.
재미있는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이 있으면 깔깔대고 웃지 못한다.
그렇게 웃으면 무병장수에 도움이 된다고 지금은 알지만 그저 조용히 미소짓는 것으로 끝난다.
이제 울엄마가 날 가르친 것들 다 잊어버리고 내 생긴 본성대로 깔깔 웃고 살고 싶은데 버려지지 않는 것들이 아직도 많다.
다른 사람들이랑 어울려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즐겁게 살고 싶은데 입도 팔도 다리도 내 의지를 따라 주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듣던 울 엄마가 심혈을 기울여 키운 나는 나이 오십이 되어 엄마의 가르침을 버리고 싶어한다.
엄마의 삶이 존경스럽고 본 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엄마를 '바보'라고 부르고 싶다.
'암'이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가 밉기도 하다.
그렇게 참고 인내만 하니까 그런 병에 걸려 다른 사람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야 한 게 아닌가 싶어서...
그리고 바보같이 그게 뭐 좋은 것이라고 사랑하는 딸에게 그런 삶을 살라고 가르쳤단 말인가?
나는 엄마의 가르침을 버리고 싶다.
그리고 내딸에게는 절대 그렇게 살지 말라고 가르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