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산행구간 : 댓재(810m 8시30분출발) - 큰재 - 고랭지배추밭 - 장암재 - 지각산 - 쉼터 (1079m) - 덕항산 - 예수원 - 하장초등학교 하사미분교(3시20분) 2.산행거리: 18 km 3.산행시간: 6시간 50분 4.참가자 : 35명 5.산행일자 : 2004. 10. 19 6.날씨 : 맑음 사각사각, 바사삭, 푸스스스 발에 밟히는 마른 잎의 아우성이 심금 울리면서 가을 속으로 깊이깊이 빠져 들어간다. 프랑스 시인 구르몽의 '낙엽'이라는 싯귀는 가을이면 어김없이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곤 한다. 환경 미화원들에게 낙엽은 쓸어 담아야 할 일거리에 불과하지만, 병약한 사람들의 눈에 힘없이 매달려 떨어지면 제 명 재촉할세라 불안한 잎새에 불과하지만, 가을을 느끼고 싶어 안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낙엽밟는 기쁨을 한껏 누려야 가을과의 이별 아쉬움없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모르게 감추어지고 말았던 감성이 차츰 되살아나는 계절... 그 계절 속의 낙엽을 원 없이 밟을 수 있는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계절마다 달리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숲속의 주인공들은 촉촉함이 베어 있었다. 방금 목욕 끝낸 물기어린 잎들의 촉촉함아 우리들의 피부에 와 닿는다. 벌써 낙엽만들어 떨구어낸 나무들은 푸른 산죽들을 호령하며 거느리고 있었다. 산안개가 자욱하다. 그윽하면서도 은은한 맛의 수묵담채화 한 장 연출해 내고 있었던 810m의 댓재에서 산행은 시작된다. 안전을 위하여 새로이 단장하려는지 군데군데 밧줄과 말뚝이 준비 되어 있었다. 급경사인 산 초입부터 밟고 올라가는 젖은 잎들이 미끄러워 사고를 막기 위한 방안인가보다. 발 빠른 회원들도 어쩔 수 없는 오름길의 서행이었다. 질서 지키며 오르는 회원들의 입은 잠시도 쉴 줄을 모른다. 매일 만나 집안대소사와 주변 인물들을 끌어내 내뱉어지는 말들은 어찌 그리도 많은지 이날 하루만은 모두 조잘거린다. 사각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와 수다한판 멋지게 씨름하여 결국 수다가 한판승으로 이기는 듯 그침이 없다. 하루하루 다르게 변하는 산... 10월 초순부터 단풍기 들기 시작하는 산은 지역을 달리하며 점점 상의를 벗기 시작한다. 드문드문 선홍빛 드리운 단풍과 옷 벗은 자작나무, 키 큰 진달래가 은빛 고운 색으로 눈길 끌어 모은다. 앙상하게 가지만 남겨 놓았지만 고고하면서 품위 있어 보이는 은색의 아름다움에 나무 껍질들을 가만 들여다 본다. 여성산악회 일곱 번 째 산행에서 처음 준비한 빨간 리본은 다녀감을 알리는 표시이기도 하지만 초행이거나 길을 잃었을 때 꼭 필요한 이정표도 될 수 있기에 선두 지휘해 가며 회원들을 이끌어 나가는 대장님의 리본 매달았다는 힘 있는 목소리가 뒤로 뒤로 바톤이어 전달해진다. 산행을 몇 번 씩 하면서 나뭇가지에 매달려 춤추는 리본들이 지저분해 보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물론 고마울 수도 있지만 이는 꼭 필요한 곳에 매달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그저 중요성은 생각지 않은 채 선전문구용으로만 달아 놓는다면 볼품사납지 않을까. 어떤 것은 나무 밑둥에 못질까지 한 산악회 리본도 보였다. 무지의 소치임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우리가 발 내딛는 백두대간의 한 줄기, 삼척 하장면의 오지산행을 하면서 나뭇가지가 얼굴을 사정없이 때린다. 억새 숲 따라 가는 지금 이 길이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의 길이었기에 리본은 적재적소 잘 달았다는 생각도 해 본다. 눈에 뜨인 문구 하나가 입가에 미소 머금게 한다. '아니온듯 다녀 가소서' 너른 장소의 갈림길에 매달아 놓은 빨간 리본의 글귀가 사뭇 정겨우면서 진정한 산사람의 글귀란 생각에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 지난 8월 잊지 못할 산행은 우리들에게 커다란 깨달음을 주었다. 물의 귀함과 결코 산을 얕보면 안된다는 귀중한 교훈 얻었던 산, 그때 보았던 배추밭을 다른 곳이긴 하지만 경유하면서 산이 아닌 아스팔트를 걸어가면서 그날의 산행이 다시 한번 화두가 되어 길 위에 쏟아내 놓는다. 고랭지 배추밭의 주인공들은 모두 빠져나가 버리고 군데군데 남아있는 하류인생들만이 썰렁한 배추밭을 지키고 있었다. 그곳에 우후죽순 올라온 잡초들이 푸른초원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배추밭 지나 다시 들어간 숲속에 양탄자처럼 폭신한 숲길이 우리를 반긴다. 쌀쌀했던 설악의 점심과는 달리 엄마 품처럼 포근하고 따뜻했던 장소에서 풀어놓은 먹거리들을 네 것 내 것 없이 함께하는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연녹의 잎 세상밖에 내놓는 봄을 기점으로 숲의 울창함은 모든 자연을 여름이라는 계절에 한층 성숙기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산중의 산 그 화려함을 극에 다르게 하며 가을은 짙푸른 잎들을 퇴색시켜 다시금 태어날 밑거름으로 내려 놓는다. 과감하게 잎 떨궈내는 숲속의 나무는 몸을 가볍게 만들면서 스스로 나목이 되어 보다 풍성하고 알찬 미래를 위해 자신을 거두고 비운다. 황갈색의 마른 나뭇잎들로 깔아놓은 숲길 바사사삭 소리내어 울음운다. 제 스스로 인간들의 희생양되어 내일을 준비하는 고마운 소리음이었다. 붉은 단풍잎과 울긋불긋한 나뭇잎 길은 그 모습 차마 상처날까 옆길 피해가게 되고, 뾰족뾰족 바늘 같은 침엽들이 길 위에 누워 반란을 일으키는 길목 그 폭신함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을 주고 있었다. 이처럼 능선 길 따라 발길 따라가는 곳엔 다양한 감흥을 주게 하는 배경들이 우리 눈을 지루하지 않게 한다. 이제 우리 산악회원들의 대 여섯 시간 정도의 산행은 누워서 떡먹기 정도로 체력이 단련되었고 발빠름이 전문산악인 못지않게 빨라졌다. 선두의 일사분란한 지휘체제가 큰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아침 8시 반에 출발하여 고랭지 배추밭을 지나고 삼척의 오지산이라는 지각산을 거쳐 8월 산행의 갈림길인 덕항산에서 잠시 발 멈춘다. 이제 막 발돋움하는 회원들을 이끌며 장장 10시간을 선두 지휘해 탈진과 물 부족으로 인해 일어난 힘겨움에 예정된 코스를 접고 하산했던 그 지점이었다. 옛날 이야기인냥 지나온 산행에 대해 그때를 생각하며 이야기들을 꺼낸다. 백두대간 한코스를 남겨두고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없었다. 모두가 지친 상태였기에 그만 내려와야 했던 산행, 그때 탈진하지 않은 상태였다면 과연 그 코스를 밟았을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몇 백 회의 산행 중에서도 기억에 남을 산행이었다는 대장은 오늘도 무적의 행군으로 씩씩하게 일사천리 회원들을 이끌고 나아간다. 환선굴 주차장에서 구름 낀 산자락을 망연자실 바라 본 적이 있다. 저 산머리는 얼마쯤 올라가야 할까, 사람들은 왜 힘들여 저곳까지 올라가야 하는걸까 산을 타지 않았던 그때 차안에서 멍하니 덕항산 정상을 바라보던 나는 바뀌어 있었다. 안개에 젖은 산아래 환선굴로 들어오는 길목과 주차장을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몇년 전의 나를 찾아보면서..... 하산말미에 뒤처지는 회원 한명 외에 모두가 발 빠른 행동을 보였던 산행, 6시간 50분 이라는 시간동안 능선을 오르내리며 우리의 체력은 보강된다. 장수의 목적으로 심신을 단련함 보다는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위해 정신도 아울러 닦는다는 생각으로 산을 오르고 또 오른다. 성취감과 뿌듯함이 내안에 가득하다. 회원 모두가 한마음일 것이라 생각하며 황갈색의 가을 산에게 나의 체취와 발자욱 남겨 놓고 다음을 기약했다. 오후 4시가 채 못되어 도착한 우리회원들은 장군바위에 잠시 하차하여 임원진의 정성들여 부쳐 온 부침개와 막걸리 한잔으로 무사산행에 축배 올린다. '언제나 그리움 일렁이게 하는 산' 산행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아름다운 글귀, 그리워 찾아오고 포근히 나를 품안는 산은 이제 벌거벗은 몸으로 나에게 안녕할 것이다. 안녕하는 낙엽 모양은 처량하지만 아름답다. 구르몽은 쓸쓸하다 했지만 내 눈에 보였던 백두대간의 낙엽들은 청량하면서 따뜻했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너는 좋으냐 낙엽밟는 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