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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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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게 약...


BY 그린미 2003-12-11

'아는것이 힘이다' 라는 말도 있지만
'모르는 게 약이다'-유식한 말로 '識者憂患'이라고 하던가- 라는 말도 있다.

알아서 좋은것도 있지만 몰라서 편한것도 참으로 많다.
알아서 병 될것 같으면 차라리 모르고 넘어가는게 만수무강에 도움이 된다 이거다.

알아서 병이 된 기막힌 사건이 십 수년전에 있었다.

아이들이 한창 고물 거리고 내나이 서른을 갓 넘긴 새악시 시절에......
열어놓은 대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던 중년의 여인이 우리집을 휘~~둘러 보더니..
땅바닥에 가래춤을 '타악' 소리가 나도록 뱉으며 하는 소리가.
"아이구..시상에...귀신이 버글거려~~~"

수돗가에서 설거지를 하던 나는 멀뚱 거리는 시선으로 그 여인네를 올려 다 보았다.
그 여인은 흰자위가 올라가도록 눈알을 굴리더니 나를 보고 혀를 차는 거였다.
"ㅉㅉㅉ...불쌍타...청상이여~~~"

나는 벼락을 맞은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아무 말없이그 여인네를  대문 밖으로 밀어냈다.
원래 신년신수나 占조차도 보지 않고 살기에 그런 허황된 얘기는 아예 귓전에 들이지도 않았는데...
그 여인의 하는 소리가 너무 가당찮기에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다음날 그 여인은 또 찾아와서 전날 하던 얘기를 되풀이 하는 거였다
그 뿐만 아니고 몇해전에 젊은 나이에 운명을 달리한 시누이 얘기를 줄줄이 쏟아 내는 거였다.
죽은 시기와 나이 그리고 성격을 쪽 집게 같이 알아 맞혔다.

슬며시 의심의 꼬리가 슬슬 기어 들어가고 두귀가 쫑긋 서게 되었다.
그 여인은 마루에 슬쩍 걸터 앚으며 한다는 소리가,
"이집 大主가 올 9월에 참상 당할 팔자여~~~"
9월이면 불과 두어달 남짓 남은 6월 중순 경이었다.
난 머리 끝이 곤두 서면서 가슴이 둥당거렸다.
'내가 과부가 된다 말인가....'

긴가민가 하는 판단을 채 세우지도 못한 상태에서
난 입에 침이 마름을 느끼며 그 여인네에게 바싹 다가 앉았다.
무슨 비방이 있으면 가르쳐 달라고 거의 애원에 가까운 부탁을 했더니..
그 여인은 슬쩍 쳐다 보더니 그럼 자기가 외우는 주문을 매일아침에 열번씩 하라는 거였다.
그러면서 주문을 외우면서 따라 하라고 하는데.

이건 주문이 아니고 세계 각국의 말을 뒤 섞어서 마구 지껄이는 소리로 밖에는 안 들렸다.
하다못해 '수리수리 마수리'라는 아주 쉬운 발음 조차도 들려주지 않았다.
중간에 포기하고 그냥 그여인의 입만 쳐다 볼수 밖엔..

거의 10분을 혼자 중얼 거리더니 할수 있냐고 묻는다.
약간 의심 스러워서 다시 한번만 더 들려 달라고 하니까 부정 타는 소리 하지 말라고 자른다.
(내 딴에는 약간 기억해 놓은게 생각나서 시험 해 볼 심산으로..)

못 한다고 하니까,
복채를 좀 주면 매일 아침에 저기가 대신 해 줄거라고 슬슬 본색을 드러 내는 거였다.
난 '아차' 싶어서 일언 지하에 거절을 하고 그냥 돌려 보냈는데..

그 여인은 대문간을 나가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거였다.
"두고 봐라이~~ 이집 대주 올 9월 넘기면 내 손에 장 지진다이~~"
악담인지 예언인지를 그렇게 무책임 하게 던져 놓고 그 여인은 사라졌다.
무시한다고 했지만 왠지 목에 걸린 가시로 남아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난 밤마다 악몽에 시달려야 했고 후회도 뒤따르고...
달력 넘어가는게 무서웠다.
어른들이나 남편에게 얘기 했다가는 귀 얇다는 소리 들을까봐 선뜻 꺼내기도 주저댔다.

남모르는 속앓이를 하다보니 달력은 어느새 9월달에 머물러 있었고
남편 보다는 내가 먼저 돌아가시게 생겼다.
밥이 목구멍을 넘어 가지도 못하고 물만 먹어도 다 토했다.
"이거 내가 죽을 팔자를 남편이라고 거꾸로 그랬나??"
영문 모르는 남편은  병원에 가 보라고 성화를 댔지만 혼자 끙끙 앓기만 했다.

그렇게 9월 한달을 지나는 사이에
조금만 늦은 퇴근을 하는 남편에게 수시로 전화를 해서 안부를 확인해야 했고
감기 몸살을 앓아도 가슴이 덜컥 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려 앉아야 했다.
하다 못해 밥맛이 없다고 하면 '암' 인가 의심을 해야 했다.
필요 이상의 신경을 쓰는 나를 보더니
'자네는 내가 그렇게도 좋은가?.......'

한달을 가시덤불 속에서 허우적 대면서 별일없이 9월 그리고 10월이 지나도록
남편은 건강하고 씩씩하게 술도 먹고 고스톱도 치고 놀러도 다니고 할짓 다했다.

지금까지 그 여인의 예언이 빗나간 채로 잘 살고 있는거 그 여인에게 보여 꼭 주고 싶어진다.

그리고..손가락에 장 지졌는지도 궁금하고.

이래서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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