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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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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하튼의 태권도사범


BY 부르스리 2003-12-11

뉴욕의 맨하탄에 다녀왔던 얘기 중에서..

 

뉴욕에 도착한지 이틀만에 친구 사무실로 아침일찍  찾아갔다. 다들 바쁜 사무실에 멀뚱히 앉아 있어봐야 그렇고 해서.. 어디 구경 갈곳이 없냐고 했더니 서쪽끝에 바닷가에 가 보면 2차대전에 활약했던 항공모함이 정박하여 관광객에게 써비스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서쪽으로 나섰다.

영어가 별루 받쳐주지 않아서 좀 불안하기는 했지만  누구 만나서 돈내라면 내고, 구경하다가 사진 몇장 찍어오고 갔던길로 되돌아 오면 되지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는데... 몇블럭 가지 않았는데 뉴욕에서의 첫 번째 시련이 닥칠 줄이야...

좌우의 높은 건물들을 구경 하며 바쁜 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왠 노인네가 길가를 청소하는 솔 같은걸 들고 내 앞길을 가로 막는다. 행동으로 봐서는 절대 그냥은 못 지나간다는 단호한 모습이다. 이역만리 뉴욕땅에 와서 비록 주머니에 가진돈은 별루 없지만 노인네의 협박에 의해서 피같은 돈을 줄수는 없다는 자존심이 주먹에 힘이 들어가게 한다.

“왔?” 내가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노인네왈 “@#$%#$^%$#”  먼소린지 잘 모르겠으나 표정으로는 절대 그냥은 못간다는 강한 어조다. 그래서 내가 어디서 주워들은 상식으로 다시 말햇다.
“아이엠 코리아 태권도 티쳐!  유노우?.. 파이팅?” 하고 주먹을 불끈 쥐고 큰소리로 말했다.
노인네왈  “$#@&%$#*#” 청소솔을 아래위로 흔들며 절대 못간단다.

내 비록 여기서 싸움을 하다가 맞아 죽는한이 있더라도 뉴욕까지 가서 노인네 한테 삥 뜯겼다는 얘기는 못 듣는다.. 마누라와 아들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 갔지만 주먹을 불끈쥐고 다시한번 단호하게 소리쳤다. “파이팅?”

노인네가 어이없다는 자세로 나를 쳐다보면서 손가락으로 웬 흑인 한명을 가르킨다. 우람한 덩치를 가진 험상궂음 표정의 그 흑인 녀석이 노인네의 심복인가 하는생각에 바짝 긴장을 하며 이젠 빼도박도 못하는구나 하며 오금이 저려오는데.. 그 덩치큰 녀석이 내 옆으로 빠르게 다가온다.  

옛말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데 일단은 저쪽에서 선방이 들어 올때까지 참자.. 그래야 나중에 경찰에 들어가서 정당방위 얘기를 할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생각과, 먼저 칼로 한번 찔리면 소리소문없이 실려가서 바닷속에 버려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에 선제공격을 하고 경찰이 있는곳까지 무조건 튀고 볼까 하는 생각이 빠르게 교차한다.

평소 바둑두면서 초읽기에 대한 연습이 잘 되어있으면 이런 경우에 아주 효과적인 대처를 할수 있을텐데 하는 후회와, 그러게 혼자 길을 나서지 말걸 하는 낭패감까지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는 찰라에 그 덩치가 빠르게 내 옆을 스쳐간다. 일단 아랫배에 힘을 꽉 주고 여차 하면 반격할 태세로 자세를 낮추고 있는데... 그녀석이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내 옆을 지나쳐서 멀어져 간다.

아... 이게 하나의 경고라는 것이구나.. 이제라도 순순히 가진거 다 내 놓으면 목숨은 해치지 않겟다는 미국식 경고 메세지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마음이 약해지려는 찰라  이미 태권도 사범이라고 뻥 까지 친 주제에 지금와서 꼬랑지 내릴수도 없다는 배짱이 가로막고 나선다.. 여우같은 마누라, 토기같은 자식들, 남겨두고온 가족을 생각하면 원통하기 한이 없는 일이지만 대한의 남아답게 이곳에서 뼈를 묻는한이 있더라도... 하며 다시한번 다짐을 해본다.

그 노인네 다시한번 덩치큰 히스페닉계 인간을 가르킨다. 이번에도 안주면 넌 살아서 못간다 라는 표정으로...  어차피 태어나서 한번은 죽는것.. 용감하게 싸우다가 갔다구 누군가 전해주겠지.. 하며 다시 아랫배에 힘을 바짝 주고 긴장 하며 마지막 주문을 미처 다 외우기도 전에 그녀석이 빠르게 내 옆을 스치며 지나간다.

어? 이번에도 그녀석은 아무일도 없는 듯이 날 그냥 스쳐 지나간다. 스쳐 지나쳐서는 노인네와 어떤 싸인을 주고받는 것 같지도 않고 제갈길을 가는것처럼 보이는게 뭔가 수상하다.. 이녀석들이 장기전으로 가서 나를 피를 말리려구 하나? 음.. 내가 지치기를 기다렷다가 항복을 받아내려구? 음...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할겸 심호흡을 하며  그 자리에 꼿꼿이 서서  잠시 노인네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데 웬 백인여자가 또 내옆을 지나가고 백인 남자가 지나가고...

노인네는 여전히 청소솔을 들고 서서 나를 감시하고 있으면서 내가 가만히 서 있으니까 자기도 공격하지는 않겠다, 니가 먼저 손을 쓰지 않으면 나도 손을 쓰지 않겠다는 방어자세로 서 있는다. 잠시 머릿속이 헤깔린다.... 어떻게 해야하나... 그냥 뒷걸음으로 슬금슬금 내빼다가 줄행랑을 치면 따라올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영감님 옆에 작은 플라스틱 물통이 보이고.. 내가 가려고 하는 도로에 뭔가 젖은 물기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혹시? 하며 뒤를 돌아보니 다른사람들은 내옆을 지나서 차도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게 아닌가... 그제서야 내가 뭘 잘못생각했다는 감이 온다.

영감님이 나에게 삥 뜯으려고 협박한게 아니라 바닥에 풀칠 해 놓앗으니 그걸 밟고 가지 말라는 표시의 자세였다는걸 알고난후의 허탈감... 노인네에게 “아엠 쏘리” 하면서 우회해서 그곳을 빠져 나왔다.


한편으로는 우습고, 한편으로는 뉴욕에 홀홀단신으로 와서 대한 남아의 기개(?)를 펼쳤다는 자부심 까지는.... 놀랜 가슴을 쓸어내리며 항공모함에 도착해보니 월요일은 휴관일이란다 이런 된장... 죽을고비를 넘기고 여기까지 왔건만...

 

에구 내 팔자야 하며 터덜터덜  친구 사무실로 돌아오니 거의 점심시간이.. 식사를 주문해 놓고 거기 근무하는 한국여자들(2명은 한국인 한명은 중국인)한테 태권도 사범의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얘기해 줬더니만  한국아줌마들은 카페트에 떨어진 배꼽 찾느라 난리고 중국 아가씨는 뭔얘긴지 몰라서 그냥 미소만..... 

나중에 친구 애기가 밤에 혼자 다니다가 진짜 '깽'을 만나면 그냥 가진거 순순히 다주고 목숨을 건지는게 낫다는 얘기를 하며, 무식하면 용감하다구 좋은 경험 햇다구 한다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어떻게 그 짧은 순간에 연애하던 시절 결혼식장면 첫애 낳던 순간 가족이 같이 여행 갔던 순간, 내 장례식 장면에서 하객들의 모습까지 생생한 영상이 빠르게 머릿속에서 지나갈수 있는지 생각만 해도 실소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