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어느새 서른셋, 전남
보성에서 올라와 서울 생활을 한 지도 20년에 접어든다. 내가 처음으로
서울이라는 낯설고 번화한 도시에 와 본 것은 초등학교 5학년 겨울 방학
때였다.
“혜순아, 아부지하고 동생이랑 서울 가는겨. 서울이란 데는 엄청 큰 도시라
길 한 번 잃어버리믄 다신 집에 못 오니께, 아버지 손 꼭 잡고 시키는 대로
말 잘 들어야 한다.”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며 ‘서울이란 곳이 얼마나 크고
신기할까?’ 상상하느라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마침내 서울에 가는 날
아침, 아버지가 새로 사 주신 신발을 신었다.
“이 신발을 신고 기차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 안 된다. 차 안에서는 얌전하게 벗어 놓고 앉아
있어라.”
몇 번이나 주의를 주는 아버지의 당부를 나는 얌전하게
새겨들었다.
서울에 가기 위해선 난생 처음으로 엄청나게 큰 기차를 타야 했다.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요란한 굉음을 내며 달려온 기차의 위력에 나는 압도당했다.
약간은 주눅이 든 상태에서 기차에 오른 나는 아버지 말씀대로 얌전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버지가 사 주시는 계란과 사이다를
먹고 동생과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다가, 차창 밖을 구경하는 것도 슬슬
지겨워질 무렵 아버지께서 내릴 때가 다 되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내 발을 보더니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아, 근디 니 신발은 엇다 벗어
뒀냐?”
좌석 여기저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신발? 그거 토방에다 벗어
뒀는디?”
“뭐? 토방? 여기 토방이 어딨노?”
우리 부녀는 신발의 행방을 찾으며
옥신각신했다.
“있잖아요, 기차 탈 때 계단 오르기 전에 신발을 벗어
뒀는디.”
‘아뿔싸!’
순간 아버지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다. 차
안에서는 자리 밑에 얌전하게 신발을 벗어 두라는 말씀을, 오르기 전에 벗어 두라는
말씀으로 잘못 알아듣고는 그만 새 신을 버리고 탄 것이었다. 서울에 온다며
아버지가 큰맘 먹고 사 주신 신발이었는데…….
그렇게 새 신 때문에 우리
부녀는 기차 안에서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난 다음에야 서울에 있는
작은아버지 댁에 도착했다.
작은아버지 댁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다이얼
전화기도 처음이고 학교에서 오르간만 보다 피아노도 실제로 처음 보고 게다가
침대까지……. 모든 게 내게는 신기하고 새로웠다.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구경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피해 갈 수 없는 문제이자 가장 원초적인 문제,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던 것이다. 큰(?)볼 일이 생겨서 화장실을 찾는데,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집안 어디에도 화장실은 보이지 않았다. 시골처럼 밖에 있나
생각하며 정원 여기저기를 종종거리며 뛰어다니고 창고, 보일러실을 다
뒤졌는데도 화장실은 없었다.
참는 데에도 한계가 있지 않은가? 참다 참다
얼굴색이 변하고 걸음을 제대로 못 걸을 정도가 되었다. 나름대로 자존심을
유지하던 나는 모든 걸 버리고 집안일을 돕는 가정부 언니에게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어, 어……언니, 화장실 좀…….”
힘이 다 빠져서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그 언니가 가리키는 곳은 부엌 옆의 세면실이었다.
아무리 봐도 변기처럼 생긴 건 없었다. 의자처럼 생긴 세면대는 있었지만 말이다.
다급해진 나는 언니에게 기어가다시피 다시 갔다.
“언니, 화장실이
아닌데요.”
그러자 그 가정부 언니는 ‘호호’ 웃으며 나를 세면장으로 다시
데려갔다.
“얘, 여기잖아.”
그 언니는 하얗고 깨끗하게 생긴 의자 모양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아, 난 그만 너무나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어디라도
숨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것도 잠시 난 다시 당황스러웠다.
“근데…… 어떻게 일을 봐야 하는 거지? 으앙~.”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땐 왜 그리 자존심 상하고 부끄러웠던지……. 중학교 다닐 때까지 수세식
좌변기를 책에서나 본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니 모르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을.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초등학교 때 좌변기라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부시맨이 첫 문명을 ‘코카콜라 병’을 통해 알게 되었듯이 나의 첫
서울 상경기는 ‘기차와 화장실 변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함께가는세상12월호에서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