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축복이다.\'
음성 꽃동네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가식의 껍질 벗기
욕심의 껍질 벗기를 요구하는 이 글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우연히 사귄 야고보 수녀님과 친구가 되어
\'꽃동네 10만포기 김장하는 날\' 취재를 가던 날....
일 ... 그 이상 의미를 두진 않았습니다.
장애의 정도에따라 ,손과 발이 움직이는 모두와 대기업의 신입사원, 군인들 ..
수많은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각자의 역할만큼 일을 하며
누구도 불평하거나 힘든 기색없이 신나게 오가는 모습이....
멀리서 바라보면 딱 ~ 옛날 잔치집 풍경이었습니다.
하루 4가마니의 쌀을 소비한다는 그곳에서의 김장은
부식이 아닌 한해의 절반을 담당하는 주식이다보니
포장을 두르고 만든 김장창고 가득 가득 채워지는 김치는
겨우내.. 그리고 배추가 흔해질 초여름까지도
이모 저모로 쓰여지며 10만포기도 빠듯한 양이라고 했습니다.
한달전부터 양념을 조달하고 김장 속을 준비한 다음
다시 속을 만들어 김장을 담기 시작하면 또 한달이 훌쩍 지나가버리고
그곳의 하루는 10시간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는 수녀님 말씀처럼
단 한 사람의 손과 시간도 아쉬워 보였습니다.
그날은 국민은행 신입사원들과 군인들의 넘치는 젊음이
힘을 보탠 지 사흘이나 되었다고 했지만, 산처럼 절여져 쌓여 있는 배추는
이쪽 사람이 저쪽 사람의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을 만큼
높디 높았습니다.
배추더미만 보고 이제 시작이라 섣부른 짐작으로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비닐 앞치마에 긴 고무장화를 신고, 멋보르고 덤빈 나는
오후가 되기도 전 ...슬슬 겁이나고 후회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점심시간.... 장애인, 봉사자, 수녀님 할 것 없이 함께 하던 식사....
그 넓은 식당에선 캐캐한 냄새가 비위울렁이게 하고...
아마 그건 분명 선입견이었을 겁니다.
먹으라고 먹으라고 권하는 수녀님이 민망할 만큼
뱃속에서 완강히 거부를 하는 통에 오후에는 거의 빈사상태 였습니다.
누워서 거동하지 못하는 거지를 위해 동냥으로 얻은 먹거리로 거둬먹이며
오늘날 꽃동네의 모태가 된 최귀동 할아버지는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감사\' 하라 했건만
힘이 넘쳐나는 나는 주는 밥도 굶고 나섰으니...
수녀님들에게도 미안해서 더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충청도 산자락의 바람은 매섭게 내 뺨을 할퀴고
긴 물 장화랑 비닐 앞치마는 얼음이 알알이 맺힐 지경이고보니
울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눈치빠른 야고보 수녀님~
얼른 나를 사무실로 데리고 가더니 따끈한 차 한잔과 그곳 장애식구들이 직접 재배한
사과랑 감이랑 싸주면서 자고 갈 거 아니믄 빨리 가라고 재촉했습니다.
손만 있어도 움직이고 발만 있어도 자기의 역할에 따라 바쁘게 움직이는데
손도 발도 ... 거기에 머리까지 멀쩡한 나는...왜그렇게 힘이 들던지...
하긴.... 머리가 멀쩡해서 더 힘든 것 이겠지요.
자기 가진것의 소중함과 감사를 잊고 사는 인간이란 게 그런것 같습니다.
가라고 떠밀면 또 미안해서 얼른 발걸음 떼지 못하고 마음은 약해서...
병동을 둘러보마...... 나섰습니다.
이방 저방 돌아보고... 마지막으로 나를 이끌고 간 방.
\'임종의 방\' ...
방문앞에서 나는 발길이 굳어버렸습니다.
마치 이방을 들어서면 나도 저승문을 들어서 버릴 것 만 같고
귀신이 우글대는 무슨 지옥이라도 들어가는 기분이 들어
멈칫 멈칫 ......
이미 다른병동 다 돌아보고 마지막 병동인데~
병동 거리가 멀어 차에 태워 일부러 안내하러 따라온 이도 있어
무작정 돌아서기도 차마 할 수 가 없었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노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좀 많이 아픈 사람이 좀 덜 아픈사람 시중들어주고
내가 아무렇게 벗어 놓은 신발을 기어가서 바로 놓는 이도 있었고
가슴 뛰는 소리가 옆사람에게도 들릴 만큼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두렵게 한 것일까..
생각해보면....그건....
천둥치는 날 원인모를 두려움에 이불을 쓰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한 발자욱 한 발자욱~ 옮길 때 마다
내 삶에서 잘못한 일들이 발자욱 하나에 10가지 100가지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임종의 방은.......
생각처럼 고통과 아픔과 절망으로 뒤덮인 회색방이 아니라
평화로운 얼굴로 담담하게 나를 바라보는 모습들....
체념에서 오는 평화일까... 하나님 곁이 기다리는 종교적인 안락함이 주는 평온일까?
아니면.... 나처럼 잘못한 일 많지 않아서 두렵지 않은 걸까...
만가지 생각이 가슴을 쿵쾅쿵쾅 치고 있었습니다.
그래... 나도 언젠가 언젠가...
어디선가....
이렇게 평화로운 임종을 맞을 준비를
지금부터 살아가는 동안 하나씩 하나씩 해 두어야 겠다....
누구나 한번은 가야 하는 것....
나도 죽는 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비로소 마음에 평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살아가며 내가 길을 잃을 때마다 이 곳을 생각하리라 ...
소박한 것에 감사하는 법을 배우며 살리라...
죽음 앞에 두렵지 않고 후회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리라...
마음문이 열렸습니다.
비로소 앙상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옷깃도 여며드리고 함께 이야기도 조물조물 해드리며
조심스럽게 일어나 그 병동을 나왔습니다.
지하에는 그날도 세번의 장례미사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추운 겨울이면 장례미사가 끊이지 않는다고
친구 ...... 그녀는 죽음을 삶처럼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무얼 하느라고 바빠서
그날 찍은 사진도 아직 내 서랍에 있습니다.
오늘 그 사진을 챙겼습니다.
17일 부터 10만포기의 김장은 또 축제처럼 시작된다고 합니다.
미안함과 더불어 안부를 물으니 다행히 자리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한번은 내가 먼저 연락했다는 변명을 달 구실을 만들었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아직 이렇게 사람에게 보여지는 것이 더 신경쓰이는 걸 보니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긴 강한가봅니다.
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