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임시공휴일 어느 날이 낫다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29

▒ 저녁 스케치


BY 올리비아 2002-10-25

저녁 무렵..
막내딸 아이가 자꾸만 바깥을 나가자고 조른다.

마지못해 하던일 뒤로 미루고 딸아이와 단둘이 
집을 나서며 말그대로 동네 한바퀴를 돈다.

"엄마 우리 학교에 가자~"

가끔 학교 운동장에 와서 달리기를 하였던지라
딸아이는 그렇게 내게 길을 나서자 학교를 가자고 한다.

"그래.."

그렇게 둘이 학교에 들어서자  딸아이가 
나를 급히 잡아 끄는 곳이 있어 따라가보니
그 곳엔 닭들과 토끼 그리고 강아지가 있었다.

언제나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어서 안달난 딸은
아마도 그 곳이 딸아이에겐 제2의 놀이터였던가 보다.

그러며 닭과 토끼에 대해서 내게 자세히 설명을 해준다.
닭들의 가족관계며 토끼들의 가족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흰토끼가 왜 눈밑에 빨간 상처가 났는지에 대해서도...

그리곤 딸아이는 다시 강아지에게 다가가서는 
아주 친숙한 목소리로 한쪽 구석에 앉아있는 강아지를 부른다.

"진순아~"
"진숙이?"
"아니~진순이~"

강아지 이름이 진순이라는 소리에 황당한 난 
소리없이 웃으며 나도 딸아이와 함께 이름을 불렀다.

"진순아~~"
"진순아~~"

강아지가 시큰둥하게 앉아서는 우리를 바라보지도 
않는거보니 아무래도 진순이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자꾸만 친숙하게 불러대는 딸아이..

"진순아~진순아~"
"음..다희야.."
"응?"
"그 강아지 이름 누가 지워준거야?"
"응~ 교감 선생님이..."

순간 강아지 이름을 진순이라고 지워준 
그 교감선생님도 아마 아이들만큼이나 장난스러울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소리없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학교내를 천천히 구경하곤 다시 아파트 
주변의 산밑 도로를 걸으며 나뭇잎 냄새에 취해 걸었다.

그러며 잠시 뭔가에 생각에 잠겨 걷는 내뒤를
졸랑거리며 따라오던 딸아이가 달려오며 부른다.

"엄마~"
"응~"
"머리 좀 숙여봐~"

그러며 신이난 표정으로 내 귓가에 꽃을 꽂아 주려다 
힘없는 꽃이 그만 땅에 떨어지자 금새 아쉬워한다.

"됐어~ 엄마 그런거 안해도 돼~"
"아!~~맞다~ 엄마 얼굴이 꽃이지?"

녀석..나의 세뇌교육에 철저하게 물들었군...

늘 나의 농담을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는게
재밌어서 자주 즐겨 하던 농담을 그 순간 딸이 대뜸
그렇게 말을 하자 난 너무 어이없어서 또 웃고 말았다. 

"다희야~ 엄마는 꽃이 아냐~ 꽃은 바로 너야~"
"그럼... 엄마는?"
"음..엄마는 이쁜 꽃을 받쳐주는 꽃잎이지~"
"에이~ 엄마도 그냥 꽃 해라~응?"
"그래!! 알았어~ 그럼 엄마도 그냥 꽃할께.."

그렇게 우리 두 꽃은 수다스럽게 
종알거리며 천천히 큰 도로를 향해서 걸었다.

넓은 도로가 옆에서 바베큐 닭을 파는 트럭이 보인다.

저녁 전이었기에 아이들에게 먹일려고 만원에 
두마리 한다는 바베큐 닭을 사자 기분 좋은 딸아이는 
자기가 들고 가겠다며 낼름 닭이 든 봉지를 뺏아 받는다.

해가 서서히 지자 몫좋은 도로가에는 과일 파는 
트럭이 색색 바구니에 과일들을 담아 팔고 있었고,

그 한 옆에서는 할머니께서 쪼그리고 앉아서 
야채들을 다듬어서 파시고 계셨다.

종류도 별로 눈에 띄이지 않는 너무나 단촐한 야채들을..

까만 봉지에 넣어져 있는 호박잎이 눈에 띄자
난 딸아이와 함께 서서히 할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할머니께 가격을 물어 보았다.
작은 비닐봉지에 담은 호박잎이 천원이라고 하신다.

그렇게 두봉지 남은 호박잎을 사며 지갑을 여니
마침 천원짜리가 한장도 없어 만원짜리을 건네 주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눈이 어두우셨는지 아니면
계산이 어두우셨는지 한참을 생각하시며 천천히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하게 접혀져 있는 천원짜리를 꺼내고 또 꺼내신다.

막내딸은 옆에서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내 지갑에 천원짜리가 
있었더라면 할머니의 수고스러움이 좀 덜 했을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천천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세고 또 세어서 팔천원을 내게 건네 주신다.

우린 다시 집으로 향해 걸으면서 신호등 앞에 서 있는데 
갑자기 딸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내 귓가에다 속삭인다.

"엄마~"
"응?"
"할머니가 불쌍해~"
"왜?"
"돈이 하나밖에 없어"
"무슨 소리야?"
"천원짜리 엄마한테 다 줘서 이젠 할머니는 엄마가 준돈 하나밖에 없어"
"그건 천원짜리 열장하고 같은거야~좀 전보다 더 많아진거지~"
"그래도 할머니 불쌍하다~ 돈도 하나 밖에 없구.."

그래서 딸아이는 좀전에 할머니의 돈계산하는 모습을 
그렇게 말없이 한참을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며 나도 문득 할머니의 하루 매상이 단돈 
만원이었나 하는 생각에 왠지 마음이 무겁게 내려 앉았다.

딸아이는 그렇게 나와 걸으면서도 계속 할머니를 
뒤돌아보며 자꾸만 불쌍하다는 말만 되뇌이고 있었다.

"엄마도 할머니돼서 돈없으면 저렇게 장사할지도 몰라~"
"안돼~!하지마~~"
"왜 안돼..돈 없으면 벌어야지"
"엄마 내가 저금통에 돈 많거든? 그거 엄마 다 줄께"

지폐보다 동전이 많은 저금통이 딸아이는 엄청 많은 돈이라 
생각을 했던지 나보고 나중에 돈 더 많이 모아서 줄테니까 
불쌍하다며 할머니처럼 장사하지 말란다.

나는 키작은 딸아이의 머리를 웃으면서
말없이 한번 거칠게 쓰다듬어 줬다.

그리곤 길을 건너기위해 맞은편에 있는 
빨간 신호등을 바라보며 잠시 서 있는데,

여전히 딸아이는 뒤돌아서서 할머니만 
그렇게 자꾸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딸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어! 엄마"
"응 왜?"
"손님왔다!"

무슨 말인가 싶어서 뒤돌아보니 
산보를 나온듯 해보이는 한 가족이
할머니 앞에서 무엇인가를 사려는지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딸아이는 몹시 흥분하며 좋아했다.

"엄마~ 저 사람들도 할머니한테 뭐 샀으면 좋겠다~"

그러며 딸아이는 그 사람들이 할머니한테 
야채를 사는지 안 사는지를 확인 하려는 듯 
계속 그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마침 건넌편에 빨간 신호등이 푸른 신호등으로 
바뀌자 난 딸아이의 손을 꼭잡고 길을 다시 걸었다.

그렇게 나와 함께 길을 건너고 있는데도 
자꾸만 딸아이는 뒤돌아보며 주문외 듯, 

계속 혼자서 중얼 거리고 있었다.

"사라..사라..사라..제발.. 사라.."




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