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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먹던 자연식품(가을)


BY 들꽃편지 2000-11-24

꽃먹는 계절이 봄이니
열매 여무는 계절이 가을이다.
애벌레 먹던 계절이 여름이니
네 날개 달린 곤충의 계절이 가을이다.

가을엔 열매가 화잘딱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밤이 그렇고 도토리가 그렇고 대추도 한몫을 한다.
논엔 벼가 누렇게 고개를 조아리고
밭엔 수수가 자주빛으로 일렁인다.

가을의 산골짜기는 아침이든 한낮이든 노을빛이 머문다.
산골짜기의 가을은 아침부터 밤까지 일손이 모자른다.
우리들도 이리뛰고 저리뛰고
메뚜기도 덩달아 이리저리 뛴다.
메뚜기 잡아들봤나?
사랑을 나누고 있는 메뚜기도 잡아봤나?
소주병에 가득 잡아오면 외할머니가 볶아 주신다.
간장 기름 넣고 후다닥 복으면 짭짜름 고스름하니
밥에 얹어 잘도 먹었다.
방아깨비아나? 잡아들 봤나? 먹어들 봤나?
얼굴 길고, 다리 길고 메뚜기랑 같은 족속이다.
두 발목을 잡고 있으면 방아찧는것 같다해서 방아깨비다.
이것도 구워서 잘도 먹었었다.
나 징그럽다고라고라...
내가 생각해도 내가 징그럽다.
그런데 지금은 못먹는다. 정말이다.
번데기도 못먹으니까. 믿어줘이~~~
누에를 키워봤기 때문에 못먹는다.
번데기는 누에가 되기 직전의 탈바꿈이기 때문.
누에는 어른 손가락만한게, 허여멀건게,
발이 디게 많은게, 엄청 징그럽다.

이젠 맛있는 얘기하겠다.
풋밤 먹어봤나? 그 풋밤 날로 까먹으면 아주 맛나다.
야간 달고 고습고 물이 많아 연하다.
도토리도 먹어봤나?
호기심으로 먹었지 쓰고 떫어서 못먹는다.
깨금 먹어봤나? 혹부리 영감 전래동화 알지?
그 영감이 딱 깨문게 깨금이다.
깨금은 강원도 사투린것 같고...아! 개암이다. 개암.

참! 머루도 있다.
어느날 또랑가에 있는 머루 나무 발견.
여럿이 달려들어 정신없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친정 엄마네 눈과 코가 까만 강아지가 있었는데..
이름이 머루 였다.
고놈하도 산만하게 짖어대서 아파트에서 ?겨났다.
좋은 주인 만나서 잘 있다는 소식만 들었다.
그리고 우리동네 어느집 화단에
머루나무가 몇년동안 잘 자라고 있었는데
올해. 감쪽같이 없어졌다.
다른데 심었나 아무리 둘러봐도 없어서 서운하고 섭섭했다.
설마? 시골로 옮겨 심었겠지.
긍정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섭섭함을 달랬다.

고향 가을은 먹을게 풍성했다.
어른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바빴지만
우리들은 들로 산으로 헤집고 다니면서 열매들을 따 먹었다.
콩서리해 콩구워 먹고,
고구마 덩쿨 뽑아 고구마 캐먹고,
과수원 사과 훔쳐먹다가 들키기도 했다.

추수가 시작되면
윙윙윙 돌아가는 탈곡기소리.
탁탁탁 하늘한번 찔렀다 내리치던 도리깽이 소리.
쿵쿵쿵 디딜 방아소리.
누런 곡식 먼지가 봉당을 거쳐,마루를 지나,방을 넘어,
장독대까지 풍성하게 앉았었다.

가을은 이렇게 바쁘게 익어갔다.
아무리 고운 단풍이라도 고향산천만하랴.
아무리 기름진 음식이라도 고향맛만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