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나는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하였다.
이번에는 평소와 달리 스스로 동한 마음에서 비롯된 나들이였다.
예전의 나들이는 친구들의 등쌀과 가족의 성화에 마지못해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대충 눈곱만 떼고 집을 나섰었다.
여러 사람들이 몰려다니다 보면 항상 부산하고 번거로워 짜증부터 났고 가는 곳마다
혼잡한 교통으로 정신까지 마비되었다.
그리고 나들이 때마다 한약에 감초 같은 음주문화로 인해 술에 약한 내 몸은 시어버린
파김치가 되었다.
이럴 때마다 나는 어서 빨리 귀가하여 조용한 집에서 편히 쉬고 싶었다.
나는 휴일 전날이면 늦은 시간까지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글을 쓸 수가 있어 항상
마음이 여유롭다.
그래서 자정이 넘도록 무엇을 하던지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며 넉넉한 시간에 감사하고 있다.
아침이 되어 게으름을 피워도, 늦잠을 자도, 포근한 이불과 친구가 되어 뒹굴어도
마냥 행복하다.
하지만 종종 이웃 친구들이나 가족은 아침부터 전화를 하거나, 집을 찾아오거나,
드라이브나 외식을 하자며 나의 행복한 휴일의 아침을 무참스레 짓밟아 버렸다.
이런 상황에 마지못해 집을 나서는 나의 기분은 좋을 리가 없었고 매사가 짜증스럽고
불만족하였다.
여자와 친구들은 나의 행동을 보면서 그냥 넘어 갈 리가 없다.
“젊은 사람이 일직 일어나야지, 날도 좋은데 집에 있으면 답답하지도 않아?”
“휴일이면 가족들 데리고 나들이 한번 한적 있어요! 다른 아빠들 하는 것 보지도
못해요?”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자신을 반성해 보지만 개인의 자유까지 침해한다는
생각이 들어 불만스럽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가족들과의 간격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조금씩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내가 소외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전에 아버지께서는 가족과 다정스럽게 대화를 하거나 나들이 한번 하지 않았다.
일년이면 한두 번 열리는 학교 운동회나 소풍에도 한번도 참석하신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달리 가끔씩이라도 학교를 찾아와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는 친구의
아버지를 보면서 자상한 아버지를 둔 친구들을 나는 몹시 부러워하였다.
아버지는 언제나 침묵하며 말을 아끼셨다.
그리고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혼자서 계획하고 실행하셨다.
매사가 확실하고 부지런한 아버지를 마을 사람들은 존경의 대상이 되었지만 정작
가족들은 엄격한 아버지, 정 없는 아버지로 생각을 하였다.
부전자전이라고 했던가.
어릴 적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리라 수 없이 마음을 먹었지만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나이를 먹어 가면서 내가 생전의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수도 없이 반성을 하면서도 가족들과 다정스런 대화나 즐거운
나들이 한번 해보지 못하고 중년을 맞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며칠 전부터 가족들과 나들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토요일 아침 출근을 하면서 내일 우리 가족끼리 나들이를 가자고 운을 떼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아 일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말을 하였다.
여자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심 싫지 않아 보였고 중학생인 딸아이는 스케줄이
있다며 나들이를 거부했고 초등학생인 아들 녀석은 오리고기를 먹는 다는 말에
마지못해 따라 나섰다.
귀가하는 길에 봄꽃 가득한 꽃가게를 들려볼까 마음을 먹었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나는 꽃들을 좋아한다. 특히 봄에 피어오른 새싹과 꽃들을 좋아한다.
길가에 내 놓은 화분들을 보면 한 개라도 사 들고서 현관문을 열고 싶지만 그런 내
모습이 왠지 쑥스러워 지나쳐 버리고 만다.
돌이켜 보면 그 동안 나는 가족을 꽃처럼 생각하며 살아 왔던 것 같다.
꽃을 좋아하면서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언제나 지나쳐 버린 나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어쩌면 생전의 아버지도 나같은 생각을 하며 생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