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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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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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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 7


BY 녹차향기 2000-11-11

바깥에 아주 밝은 보름달이 떠있었는지 문득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던 남편이 오늘이 보름이냐 하고 물었습니다.
음력으로 10월 16일이더군요.
수능시험이 코앞으로 닥쳐오니 과연 날씨가 쌀쌀하기 그지없습니다. 수능날은 또 아주 추울지도 모르지요.
전국의 모든 수험생들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밑에 글을 쓰신 분의 말씀에 진심으로 공감하고요.
특차라는 명목하에 -노래실력이 뛰어나고, 연기실력이 뛰어나서 무조건 학교에 특례입학하는 것은 그간 코피쏟아가며 열심히 노력한 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아닌지...

낮에 운동을 마치고 당산동에 있는 2001아울렛이라는 할인점엘 다녀왔습니다.
무척 비싸서 매번 군침만 흘리던 냄비세트(3개)가 오늘 100세트 한정에 29,900원을 한다는 광고지를 보고 이웃 아줌마 2명과 뛰다시피 그곳을 갔지요. 늦게가면 공연히 지하철비만 버리는 셈이 될테니까요.
과연 대한민국의 살림꾼 아줌마들은 틀리더군요.
몇개 남지않아 다행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좀 무겁지만 기분좋게 귀가했답니다.

귀가했더니, 글쎄 진도에서 며칠전 병원진찰차 상경하신 외숙모님과 조카내외분이 와 계시지 않겠어요?
어머어머.... 넘 늦어서....
1시 30분이 다 되어가고 있었는데...
다들 제가 오지않아 식사도 못하시고 기다리고 계셨어요.
시어머님도 무얼할까 냉장고문을 여닫으셨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으셨던 모양이예요.

어르신들을 모시고 근처 칼국수집을 갔습니다.
모처럼 저희집을 오셨으니 어찌 밀가루음식만을 접대하겠어요?
해서 비싼 (지난번엔 갔을땐 먹구싶어도..참았던..) 보쌈도 大자로 하나 주문하고, 칼국수도 시켜서 먹었습니다.
흐믓해 하시는 시어머님..
당신이 계산을 하시겠다고 하셨지만, 제가 눈치껏 얼른 먼저 계산했습니다. 사실 요즘 생활비가 달랑달랑 했습니다만 카드로 결제...(ㅋㅋㅋ..남편만 빼놓구 먹어서 미안했지요)
맛있게들 드시는 모습을 보니 저두 배가 부르고 흐믓했습니다.

진도에서 농사일을 넘 힘들게 하시고, 평생 굳은살이 못박힐 정도로 고생하신 외숙모님 얼굴은 까맣습니다.
하지만 항상 잘 웃으셔서 눈가에 잔주름이 조글조글하고 금방 무슨 말씀이라도 하실라치면 살짝 입가부터 올라갑니다.
'괜히 내가 와서 니만 고생시켰다.'
하시며 훈훈한 인삿말을 하십니다.

집에 돌아오신 시어머님은(두분은 시누올케사이) 얼른 장농에서 당신한테 잘 안맞지만 그래도 가끔 이용하시던 잠바를 하나 꺼내셨어요.
'성님, 이것 입어봐요.'
'됐네. 나 이눔 잠바 아직도 멀쩡해.'
하지만, 제가 만져 본 그 잠바는 얇았습니다.
그리고 그전에도 입으셔서 제 눈에 익은 그 잠바였지요.
물론 아들며느리들이 다 잘 해주시지만, 우리 시어머님은 그래도 친정식구라 맘이 또 다르신가 봐요.
'내가 하나 좋은 것으로 해드리고 싶지만, 오늘은 일단 이것 입구가요. 성님'
'됐어. 난 하나두 안 춥다.'
그래두 가실때 시어머님께서 입혀드리니 암말 않으시고 입고 가셨어요.
우리집 애들 귀엽다고 용돈도 주시고요.
시골에서 오신 손님이 용돈 주시고가면 오래도록 더 죄송하고 송구스런 맘이 오래가요....

저희 시어머님은 남에게 베푸는 것을 참 좋아하세요.
새로 만든 반찬 한가지가 있어도 이웃에 사는 현신엄마를 챙기시고, 비오는 날 부침개라도 부치면 경비아저씨 한 접시 갖다주라고 하세요.
시골에서 올라온 색다른 음식이 있으면 이모,이모부까지 들먹이시고, 김장때 김치를 하면 한통 가득히 담으셔서 저희 친정부모님 갖다 드리라고 하세요.
'사돈이 흉보시면 어쩌지? 그래두 이거 전라도 식이라고 하시고 드시라고 해라.'

텔레비젼에서 심장병어린이 돕기나 사랑의 리퀘스트같은 프로그램에서 전화 한 통 누르면 돈이 천원씩 올라가고, 그 돈이 성금으로 씌여지는 것을 아시고, 그 프로그램을 보실 때마다 눈물을 뚝뚝 흘리시며 가슴아파 하시고 전화기를 당겨 성금을 보내세요.
'워쩔꺼나... 워매워매...'
아파 본 사람만이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듯이,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던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시련과 어려움에 따뜻한 마음이 우러나올 수 있는거라 생각해요.
그렇지 않고도 따뜻한 마음이 있어 돕는다면 더 다행이고요.

외숙모님은 척추뼈를 정밀하게 찍으시는 특수촬영까지 해 보셨는데, 이미 뼈에 골다공증이 너무 심하고 무리를 하셔서 뼈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 시일이 오래 걸린다고 하세요.
사실, 농사 지으시는 분들의 노고가 얼마나 큰 지는 우리가 다시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분들의 노동과 수고에 비해 우리는 너무나 안일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남은 음식을 너무 쉽게 버리고, 필요없는 식료품들을 많이 사다 냉장고에 채워놓았다가는 그만 먹을 시기를 놓쳐서 버린 것도 있고....

우리나라 오랜 역사가 바로 농사에서 비롯되었고 우린 모두 농부의 아들,딸인데 말이죠.
특히 요즘 아이들 너무 쉽게 음식을 버려서 큰일이에요.
피캬츄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빵을 사서는 쓰레기통에 버린 아이들이 그렇게 많았다면서요?

저희 시어머님은 음식을 무척 아끼세요.
함부로 버리시지 않아요.
대신 다른 사람에게 아주 잘 베푸시죠.
경비아저씨도 저희 어머님을 아주 좋아하시죠.
제 생일이나 심지어는 결혼기념일에도 작은 선물을 주세요.
추석날이나 설날에도 명절이란 명목으로 촌지를 주시지요.
얼마나 기분이 좋은데요.
차례지내느랴 고생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도 해주시고요. 마땅히 할일을 했는데도, 그렇게 칭찬을 받으면 왠지 제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고, 뿌듯한 느낌..
(저 외며느리라 혼자 명절 준비하거든요. 시어머님은 장사일에 바쁘셨기 때문에 잘 못도와 주셨어요.)

저녁으론 된장찌개와 생선구이, 낙지볶음, 과일샐러드..
를 드시고 외숙모님과 조카내외분은 다시 조카분댁으로 가셨어요.
여비를 못 보태주었다며 시어머님은 안타까워 하셨지만,
나중에 맘껏 여비 보태줄 수 있을 때가 또 오겠지요.
그날을 기약하죠.

변변찮은 반찬을 맛있게 들고가신 외숙모님께서 더 건강해지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남편이 태어날 때 받아주신 외숙모님이시기에. 더욱)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까요?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날은 얼마나 될까요?
지금 원수처럼 보이는 그 누군가가 있다면 내가 그 사람을 원수로 볼 수 있는 날은 또 얼마일까요?
기껏해야 우리에게 남아있는 날이 30년 혹은 그 이하,
혹은 막연한 어떤 가까운 날...

많이 베풀면서 사세요.
저두 그럴게요.
맘이 푸근해지지요.
돌아갈 때 암것두 가져가지 않을텐데요.

낼은 무얼하실건가요?
좋은 주말 되시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