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영어학원 외국인 회화시간에는 대부분이 토론으로 진행된다.
그날의 토론주제를 하루 전에 미리 주는 선생님은 그래도 준비를 꼼꼼히 하는 편이다.
대부분 그날그날 프린트한 논제를 나누어주고 그 자리에서 눈으로 읽어보고 토론한다.
자연히 독해에 오역이 있을 수 있으니 서로의 의사소통이 엇갈리기 일수이다.
아예 그 달치를 책자화해서 월초에 한달 진행할 수업내용을 다 알 수 있도록 하는 선생님은 몇 안 되지만 그들의 철저한 직업의식을 나는 높이 평가한다.
또한 집에서 미리 읽어보고 내용을 충분히 검토해서 토론의 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으니 학생들이 선호한다.
놀(noel), 호주 태생인 짐바브웨 국적의 백인 선생님이다.
우리네와 비슷한 자그마한 몸매에 푸르른 회색 빛의 눈, 유난히 오뚝한 코만 빼놓고 온통 노란 수염으로 덮인 작은 얼굴이 처음에는 몹시도 낯설었다.
그에게 수업을 받을 기회가 생겼다,
미국식 발음에 익숙한 우리에게 약간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손수 만들었다는 그의 교재를 받아든 순간 그에 대한 서먹함은 나의 소심한 편견이었음을 간파했다.
"실수를 많이 하라!" 교재 첫 페이지에 쓰여있는 말이었다.
그 한마디가 나를 얼마나 안도하게 했는가?
알아듣기 어렵게 빠른 말의 속도와 익숙지 않은 발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업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친절하게 곁들여 설명했다,
실수를 두려워 말라, 여러분이 실수로 물에 빠졌을 때 수영을 못한다고 가만히 있으면 금방 빠져 죽을 것이다, 열심히 허우적거리다보면 어느 순간 몸이 물에 뜰 것이다, 자, 이제는 수영을 배운 것이다, 얼마나 잘 하느냐는 얼마나 열심히 연습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여러분이 저지른 실수가 여러분을 어느 곳에서도 살려줄 소중한 경험이 된 것이다!
난 그의 수업 시간에 발표를 많이 한다,
불규칙 동사를 잘 몰라서 시제가 틀린다거나 전치사를 잘못 사용한다던가...하는 내가 취약한 부분에서도 우물거리지 않고 과감히 내 의견을 피력한다.
물론 제한된 시간 안에서 내 의사를 충분히 표명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의 말대로 열심히 허우적거리다 보면 꼭 물위로 뜰 것 같은 자신감으로 쉬지 않고 헤엄친다.
학생들의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말없이 듣고만 있다,
우리가 묻거나 도움을 청하기 전에는 절대로 끼어들거나 중단시키지 않는다.
틀린 표현을 하거나 엉뚱한 곳으로 주제가 빗나가도 모른척한다.
그 대신 열심히 뭔가를 노트에 기록한다.
수업시간 끝나기 십 분전, 그의 꼼꼼한 지적이 시작된다,
"이 부분에서는 과거분사를 써야했어요, 그리고 여기는 뜻이 같은 말이 중복되었고요, 아, 참! 영어 식 표현으로는 그 말을 이렇게 한답니다......등등......"
그러나 누구의 실수인지는 꼬집어 탓하지 않는다, 다만 알려줄 뿐이다.
이제는 누구도 그의 발음이 난해하다고 불평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어짜피 누구의 영어도 알아들어야 하는 것이라면 이 또한 좋은 경험 아니겠는가?
경상도나 전라도 사투리를 못 알아듣는 한국인은 별로 없지 않은가?
자유형만 수영이냐, 평영도 접영도 익혀두면 좋은 것을.......!
나는 오늘도 실수하러 당당히 교실로 향한다,
누구도 나를 틀렸다고 흉보거나 주눅들게 눈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서로의 실수에 너그러울 수 있는 관대함을 키운다,
엎어지는게 무서워 걸음마를 안 배우고 포기할 것인가?
그런데 이상하다?
나의 단발머리 학창시절에는 작은 실수도 벌로 떠 안아야 했었는데.......
답안지에 한 문제 틀릴 때마다 회초리가 한 대였었는데......
어쩌다 발표할때 틀리면 온통 사방에서 큰소리로 웃어 망신을 주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실수가 두려워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망서리지 않았던가?
항상 정답과 완벽을 추구하고 그에 대한 강박관념에 움츠리지 않았던가?
요즈음 우리 애들의 교실에서는 실수를 아름다운 도전으로 칭찬해 줄까?
실수에 대해 진정 위로하고 갈채 해주는 너그러움이 살아 있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