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뭐 먹을까?
때가 되어 주방에 들어서면 내 머릿속은 강한 집중력을 발휘한다. 오직 한가지 생각에 몰입하는데 내가 하루를 보내면서 이토록 강한 집중력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순간 뿐아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오늘 저녁은 뭐 해 먹을까? 씽크까지 걸어 가면서 1,2분남짓한 그 짧은 시간에 나는 오늘의 메뉴를 결정해야한다. 시금치 국을 끓일까? 참치 찌개를 할까? 집에 있는 재료나 그 순간의 의욕으로 볼 때 매우 저조한 성적을 보이면 짜장면을 시켜 먹을까? 해버리는 적도 많다.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항상 먹을 것을 구비하고 사는 집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저렇게 꽉 채우고 저걸 언제 다 먹을까 생각하면 부담스럽지 않을까? 혹시 남아서 버리게 되면 아깝지 않을까?
하지만 가족에게 필요한 것을 잘 준비해 두는 정성은 칭찬해주고 싶다. 나는 한꺼번에 많은 양을 구입하는 시장보기를 매우 부담스러워한다. 조금씩 그날그날 먹을 것만 사도 어떤 때는 파 서너뿌리, 양파 두어 개는 짓물러서 버려야한다. 베란다에 두었던 감자는 싹이 길게 자라서 유리컵에 올려놓아야 하는 상황이 되고 보면 다 활용도 못하고 버리는 것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함께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며칠간 먹을 먹거리를 장만하다보면 한순간 나가는 돈이 10만원을 후딱 넘기고 마는데 내 손에서 흘러내려가는 그 목돈도 내 마음을 쓰리게 한다. 그래서 나는 한번 시장을 보면 5만원을 넘기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우리집 냉장고는 항상 빈약하다. 갑자기 손님이라도 오면 가게로 냅다 뛰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불시에 방문하는 친척이나 이웃의 친구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때고 와서 내가 없으면 그만이고 있으면 놀다 가겠다는 생각으로 우리집을 찾는다. 그러나 당하는 사람은 당장 내 놓을 게 없어 계속 미안해 하며 앉아 있어야 하니 내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나는 음식솜씨도 좋지않다.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야지 하는 의욕도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갖은 양념을 다 갖추고 있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음식을 할 때 한두 가지의 양념은 넣지 못하는 때가 종종 있다. 양념 중에서 가장 다루기 싫은 재료는 마늘이다 마늘은 껍질을 까서 칼자루로 다져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어서 있어도 안 넣고 요리할 때도 있다. 파를 많이 넣었으니 마늘은 안넣어도 된다 하거나, 마늘을 넣었으니 파는 안넣어도 된다하는 식의 요리를 한다. 요즘은 깐마늘을 슈퍼에서 팔기에 그것을 사서 쓰는 편리함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사장보기와 음식에 대한 이러한 나의 생각들이 우리집 식탁을 빈약하게 만든다. 주방에 들어섰을 때 나는 종종 오늘 저녁은 굶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한 끼니를 굶는다고 어떻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까지 한다. 그러다 아이들이 배고프다며 밥달라고 성화를 하거나 오늘은 뭐줄거냐고 물으면 곧바로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고 씽크대에 가서 손부터 씻는다. 엄마에게서 아이들의 의미는 크다 그들이 손을 내밀면 본능적으로 잡아 주어야하고, 배 고프다면 얼른 입에다 넣어줄 것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 엄마의 본능이 아닌가. 나는 아이들의 배고픈 사정을 해결해 주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나는 손을 씻고 난 다음 나의 헐렁한 냉장고 현실과 나의 시원찮은 음식솜씨를 가지고 훌륭한 식탁을 만들어 보고자 결심을 한다. 남편을 위해서는 옛날에MT 가서 해먹었음직한 잡탕 찌개를 마련하고, 아이들에게는 다진고기와 야채를 다져서 동그렇게 빚어 만든 동그랑때 수준의 햄스테이크를 엉성하게 내 놓는다.
나는 우리집에서 주부의 부재를 염려한다. 주부는 가족 구성원의 건강과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어 줄수 있는 위치에 선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 만약 나처럼 별 소신없이 주부생활을 한다면 우리 가족은 그다지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음식에 대한 마인드가 자신없음과 하고 싶지않음으로 굳어져 전혀 노력이 없다면 우리 가족의 건강은 누가 책임져 줄 것인가? 주부가 있어도 주부의 부재를 느껴야하는 지금의 내 상황은 확실히 손실이다. 우리 가족이 나에게 거는 기대, 나의 위치를 고려할 때 내가 하여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손실, 나는 빨리 그 손실은 극복하여야한다. 나와 같이 미적지근한 태도로 주부생활를 하는 어중간한 신세대 주부들 역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주부의 자리를 확실시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