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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 노인 기준 연령 높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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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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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든 여자.


BY 雪里 2002-03-03


일요일인데 거리가 한산하다.
예식장 봉투 두개 들고 나간 그이는
점심해결은 하고 올테고.

나는 혼자 가게에서 청소를 하겠다고 먼지털이를 들고
이구석 저구석 훑어 보지만 몸이 개운하지 않아서
엄두를 못내고 있다.
어제 앞유리 좀 닦았는데 다리가 땡기고 허리를 편히 펼수 없으니
이몸으로 뭘 하겠다는것 인지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다.

진열장뒤 좁은곳에 쪼그리고 앉아 그래도 해보겠다고
수건을 펴드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한마디의 수화기속 목소리로 상대를 읽고 있는 내게
보고싶단다, 느닷없이.
보고 싶으면 와서 보라고 퉁명을 보내니
차라리 귀신을 속이지 형수는 못 속인다며 심심해서 했단다.
"나 청소 중이야. 자세 불편하니까 끊어!"
나보다 나이가 한두살 많은걸 알면서도
난 일부러 편한말을 쓴다.

그이보단 아래고 편한말은 친근함을 주는것 같기 때문이다.
손님으로 만났던 사람들 이지만 여러해를 만나다 보니
친근감이 느껴져서 며칠 안보이면 궁금해서
전화로 안부를 묻곤 하며 지낸다.
본인들도 한동안 못 들르면 보고 싶다며 농담섞어
전화를 해 오는 것이다.

쪼그려 앉은 다리로 저림이 내려 쏟히며
기어이 몸을 일으켜 세워 버린다.

두손 허리에 받치고 밖을 보니
창밖의 햇살이
청소 같은건 뒤로 미루고 나와 보란다.

어느새 봄이 몰고온 바람이 따뜻한 입김으로 나를 자극하며
함께 밖으로 나가 봄의 행렬을 구경 하자는 것 같다.

앞에 버티고 있는 山城공원에라도 올라가보면
저만치 오고있는 봄을 보고 올 수 있으려나,
가게문을 몇번이나 여닫으며 들락거리지만
동행할 바람마저 놓쳐버린채 열린 문짝을 붙들고
지나가는 아이손에 들려 있는 실묶인 풍선만 본다.

가뭄이 심하댔는데,
그이 아지트의 다라이만한 웅덩이에도
물이 말라가고 있는걸 보면 대단히 심한 가뭄인데
철들날 먼 어린애처럼 가슴에 가득 봄바람 채워넣고
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허리 뒤로 젖혀 또한번 펴보다가
다리로 줄달린 통증때문에 엉거주춤하면서
그냥 들어와 의자에 몸을 얹는다.

고구마도 심고 땅콩도 심어야는데 이런몸이 뭘 허락할지!
하늘만 봐도 마음이 조급한데 맘만 앞서며 난 또, 그이를
봄이 오자마자 얼마나 볶아챌건지!

햇살좋은 일요일.
몸은 안따라줘도
생각은 뇌속을 꽉 채우고 줄줄 밀고 나오는데
혼자 가게에 갇혀 있으면서 나만 이러고 사는성 싶어
월급쟁이 마누라가 이럴땐 제일 부럽다.

그래도 끼니는 거르지 말아야지.
코펠 손잡이 모아 쥐고서 물을 가늠하며 휴대용 렌지에
불을 붙인다.
"내가 제일 자신없는 라면 끓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