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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BY 나목 2013-07-27

내 나이 열 두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죽음은 잔치였다

 

사흘 밤낮을 쉼없이 사람들은 오고 갔으며

먹을 것은 풍족하였다

마을 여자들이 조문객들에게 줄 도시락을 싸고 있는

광문턱을 넘나들며

까스명수와 찐계란을 친구들에게 나눠줄 때면

갑자기 부자라도 된 듯 기쁘기도 하였다

겨울 햇살은 따뜻했고

햇살 아래 상여는 만지면 날아갈 듯

한 마리 새처럼 앉아 있었다

 

겨울 

햇살은 그지없이 따뜻했고

새는 날아서 산으로 갔다

그리고 몇 날을 눈이 내렸다

 

마당을 서성이는

바람의 거친 발걸음

간간히 들리는

개 짖는 소리

허연 창호지 문에 일렁이는

대숲 그림자

나란히 누운 잠든 식구들의

고른 숨소리

 

그 위로 흰 눈이 사정없이 내려 쌓이면

나는 영문도 모르게 가슴이 메어와

뒤안문가로 얼굴을 묻고 소리없이 울기도 하였다

속절없이 날아가버린 고운 새와

어둠속에 홀로 눈을 맞고 있을

그 나라를 생각하며

 

눈은 바람따지에

어른 허리께보다 높이 쌓이자

비로서 그쳤다

그리고 어느덧

잔치는 끝나 있었다